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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의 이야기

극장, 씨네큐브, 그리고 시네마테크 언젠가 소쿠로프의 영화를 보면서 옆 자리의 애인 몰래 숨죽여 눈물을 흘리던 때가 있었다. 막 추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나는데, 그때 극장에서 보았던 그의 영화들에 너무 빠져버려 순간순간 눈물을 도저히 참아낼 방법을 몰랐다. 그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소쿠로프의 영화들을 시네마테크에서 보면서 나도 모르게 탄성을 냈던 것은 정확히 세 번이었다. 하나는 , 다른 하나는 ,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었다. 의 첫 장면은 서로를 강하게 보듬어 안는 아버지와 아들의 클로즈업으로 시작된다. 얼핏보면 아픈 아들을 끌어안는, 혹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묘한 감정들을 나열한 듯 읽혀지는 이 장면은, 영화가 중반을 지날 때즈음 그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크린 속의 두 인물, '아버지.. 더보기
요즈음, 낙원상가 바깥의 세상 지난 1년 간 경찰차, 전경차를 보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피해야겠다'라는 생각이었다. 민중의 지팡이, 포돌이와 포순이가 친근하게 다가온 것은 이미 머나먼 옛날의 일이다. 작년 5월, 집회에 연달아 참여하며 모여있는 군중들에게 '제법 정확하게' 최루가스를 발사하던 한 경찰의 손짓을 잊을 수 없다. 그 앞에서, 벌벌 떨며 나즈막히 욕을 해대던 진압봉을 든 경찰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분향소가 설치되었던 날,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3사의 카메라가 들이닥치기 직전 무장하고 있던 경찰들 앞으로 평복을 입은 경찰들이 자리를 바꿈했던 것 또한 잊을 수 없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보고 있던 것은 '평복을 한 위선적인 경찰들'이었다. 만일 이 날, 무장경찰들이 카메라에 비친 모습.. 더보기
5월 10일 서울아트시네마 콰이강의 다리 상영 후 씨네토크 (일주일 만에 정리하느라 기억에서 많이 희미해져서, 메모를 해뒀다고는 해도 빼먹은 내용도 많고 엉망이다. 빼먹은 내용 중에서는 데이비드 린은 인간에 대한 정의를 함부로 하지 않은 감독이라는 말을 적어두고 싶고, 정리한 내용 중에서는 영화는 이미지가 아니라는 말을 특별히 기억해 두고 싶다) 5월 10일 오후에 상영 후 오승욱 감독과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진행하는 씨네토크가 있었다. 오승욱 감독은 먼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영화적인 체험들을 이야기하는데, 처음은 지금은 없어진 장승백이의 강남극장에서 봤다는 라는 영화 예고편이다. 두 명의 사나이가 달밤에 결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오고 인왕산 호랑이라는 타이틀이 소용돌이치듯 빙글빙글 돌아서 스크린 가운데에 박히는 것을 보고 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그때는 오승욱 감독.. 더보기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 8주년을 축하합니다 오늘 [콰이강의 다리] 상영 후 있었던 시네토크 후, 서울아트시네마가 5월 10일자로 개관 8주년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감사원에서 감사받는 중이라 정신없는 상황이고 그래서 큰 행사 없이 관객들에게 추첨을 통해 선물을 증정하는 것으로 넘어갔습니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크고 성대하게 10주년 파티를 할 수 있으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진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오늘 찍어둔 사진이 없습니다. 그래서 올해 초 [히스 걸 프라이데이] 상영 후 시네토크에 참석한 하정우 씨의 사진으로 갈음합니다. 옆자리 전계수 감독님인데 사진이 잘 안 나왔죠. 더보기
5월 9일 아라비아의 로렌스 상영 후 강연 5월 9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시 30분에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상영한 후에 김영진 평론가의 강의가 있었다. 영화 상영 전에는 영화를 보러 온 이명세 감독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간략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명세 감독은 [아라비아의 로렌스] 다큐멘터리에서 스필버그가 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스필버그는 로렌스가 성냥불을 끄고 바로 어두운 새벽에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으로 전환되는 것, 그 장면을 가리켜 '이것이 영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영화에서밖에는 볼 수 없는 장면, 영화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이명세 감독은 그것을 스크린으로 보기 위해 왔다고 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이명세 감독을 소개하기 전에 시설 때문에 아쉽게도 70mm로 상영할 수는 없지만, 35mm로도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 더보기
고다르와 시네마테크 * 3/14에 있었던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의 후기입니다. 'JLG/JLG: 고다르의 자화상'은 고다르가 스스로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비춰보고 있다. 그는 자신을 비춰보고 있는 그를 스크린에 재차 투영하고 있다. 그의 어린시절 사진이 보인다. 그는 죽음이전에 미리 상복을 입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에는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애도로 가득하다. 상영되지 못한 영화들, 역사와 함께 만들어질 수 없었던 영화들에 대한 애도는 동시에 미래에 만들어질 영화들이 필연적으로 안고 있을 결핍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고다르의 아뜰리에는 하나의 극장이고 박물관이며 그 속의 고다르는 이야기의 화자이자 감독이자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자신의 몸과 자신의 세계를 박물관 속에 전시하고 있는 것처럼 .. 더보기
시네마테크의 소환-나에게 아트시네마란 나는 시네필이 뭔지 모르겠다. 이제 생각해 보니 영화가 뭔지도 모르겠다. 몇년동안 극장에 안간 적도 있었다. 다시 극장에 다니기 시작한게 아트선재센터, 그러니까 서울아트시네마의 전신이었던 그곳이 있을 때다. 거기에 드나들다 아트시네마의 개관도 함께하게 되었다. 나는 시간이 허락할 때면 아트시네마에 간다. 무척 보고 싶던 영화도 시간이 안 맞으면 못보고 별로 보고 싶지 않던 영화도 시간이 맞으면 그냥 본다. 나는 반찬투정을 모르는 아이처럼 아무영화나 주워먹는다, 주는대로. 거기서 내가 한게 대체 무엇일까. 나는 어딘가 갈 곳이 필요했고 아트시네마에 갔다. 아트시네마가 이사를 했을때는 나도 따라갔다. 아트시네마는 나의 집이고 나의 밥이다. 거기서 나는 잠시나마 내가 된다. 거기서 나는 잠시나마 나를 잊는다... 더보기
2008년, 언젠가의 서울아트시네마 (화선지/먹 2008) 내가 미대를 다니고 있다고 말하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슬쩍 놀라는 눈치를 보여주신다. 졸업을 했거나 영화와 관련된 학과를 다니거나 할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그림'이라는 걸 그린다는 것 자체에 놀라시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나를 '미대생'이라고 강조한다. 얼마 전 개강 후 한 교수님이 장래희망을 물어보시길래 나는 서슴치 않고 이렇게 답했다. "그림도 그리는 영화감독" 그러니까 나는, 미대생의 탈을 뒤집어 쓴 관객 중 하나다. 미대생은 졸업시즌이 다가오면 논문대신 졸업작품을 제출해 졸업 여부를 평가받아야하므로, 보통은 3학년 2학기부터 졸업작품에 대한 압박을 느끼곤 한다. 나는 이제 3학년 1학기. 물론 조바심 낼 필요는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생각해두지 않으면 분명 .. 더보기
서울아트시네마가 위기에 처해 있다 1. 서울아트시네마와의 만남 리뷰를 쓰면서 영화형식미에 대한 나의 지식이 참으로 일천하기 그지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래서 영화의 역사와 고전형식을 되짚어 보기 위해 를 방문하기 시작했고, 그리고는 이내 영화의 풍성한 형식미의 바다에 퐁당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느 한 분야의 예술영역, 특히 영화는 쉽게 가늠하기 힘든 형식과 내용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2. 시네마떼끄의 힘 내가 영화예술의 진한 맛에 빠르게 중독된 데에는 뭐니뭐니해도 극장이라는 목적의식적인 대중적(정치적) 공간에서 만나는 필름(원본재현)상영이 존재했기에, 즉 고전 영화의 역사적 재현 공간에, 그 순간 내가 위치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네마떼끄는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현재의 대중과 공유하.. 더보기
러프컷을 다시 읽다가 든 단상 김영진의 러프 컷: 시네마테크 생각 2006.12.08 김영진 편집위원 이제 극장은 더 이상 영화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에 따라 관객도 물론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시간을 벌어주는 현재로선 거의 유일한 공간이 시네마테크지만 그에 대한 영화계의 관심은 너무 모자란다. 지난 일주일간 두 차례 지방의 시네마테크에 다녀왔다. 한 번은 부산 시네마테크의 요청으로, 박찬욱 감독이 추천한 루키노 비스콘티의 란 영화를 관객과 함께 보고 대화하는 자리의 사회를 맡게 되었다. 수요 시네클럽이란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그날 밤 자리는 무척 좋았다. 관객들은 집중력이 있었으며 박찬욱 감독의 달변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를 다 같이 즐긴 포만감이 모든 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귀족 출신 비스콘티 감독의 데카당스 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