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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시네마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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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를 지키기 위해서...
by cinequanon

'관객들의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09.08.13
    극장, 씨네큐브, 그리고 시네마테크 (1)
  2. 2009.06.03
    요즈음, 낙원상가 바깥의 세상
  3. 2009.05.17
    5월 10일 서울아트시네마 콰이강의 다리 상영 후 씨네토크
  4. 2009.05.11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 8주년을 축하합니다
  5. 2009.05.11
    5월 9일 아라비아의 로렌스 상영 후 강연 (1)
  6. 2009.03.16
    고다르와 시네마테크
  7. 2009.03.10
    시네마테크의 소환-나에게 아트시네마란
  8. 2009.03.10
    2008년, 언젠가의 서울아트시네마 (1)
  9. 2009.03.07
    서울아트시네마가 위기에 처해 있다
  10. 2009.03.05
    러프컷을 다시 읽다가 든 단상

언젠가 소쿠로프의 영화를 보면서 옆 자리의 애인 몰래 숨죽여 눈물을 흘리던 때가 있었다. 막 추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나는데, 그때 극장에서 보았던 그의 영화들에 너무 빠져버려 순간순간 눈물을 도저히 참아낼 방법을 몰랐다. 그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소쿠로프의 영화들을 시네마테크에서 보면서 나도 모르게 탄성을 냈던 것은 정확히 세 번이었다. 하나는 <러시아 방주>, 다른 하나는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첫 장면은 서로를 강하게 보듬어 안는 아버지와 아들의 클로즈업으로 시작된다. 얼핏보면 아픈 아들을 끌어안는, 혹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묘한 감정들을 나열한 듯 읽혀지는 이 장면은, 영화가 중반을 지날 때즈음 그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크린 속의 두 인물,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살짝 끌어안는 그 장면에서 감정을 이기지 못한 어떤 무언가가 가슴 속에 치밀어 올랐던 순간. 그때 반사적으로 생각했던 단어는 '상처'였다. 지금은 내가 왜 그랬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두 인물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너무 힘이 들었다. 서로를 보듬는 손길, 그 손길 하나하나에 아픔이 서려있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 이후의 일은,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내게 <아버지와 아들>은 그 단 한 순간만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영화를 다 보고나니 코끝이 시렸다.

언젠가부터 극장에 가는 간격이 뜸해지거나 엄청 바쁜 일이 생겨 한 달 동안 시네마테크를 찾지 못하는 시간이 생기면 이유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뻔질나게 극장을 들락거리고 기웃거리던 때 막 생긴 그 감정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네마테크를 향한 죄책감은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지만, 극장을 찾지 못하거나 다른 일을 우선으로 두어야 할 때 나에겐 여전히 그것이 '길티'로 작용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고 아무런 연고도 없었지만, 나는 그냥 그걸 '죄책감'이라는 단어로 치부했다. 내가 유일하고 홀가분하게 극장을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은 긴 여행을 떠나는 시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별로 쉽지는 않았다. 여행을 떠나있는 동안 시네마테크를 생각하고, 미친듯이 그 지역 주변의 극장을 찾아다니며 기어코 무언가를 보고나서야 성질을 죽이곤 했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그랬던 것 같다. 예전에는 그런 것을 느끼는 자체를 소중하고 우월한 감정이라 생각했다. 그냥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사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더라. 덕분에 작은 모니터로 영화들을 찾아보는 것이 조금은 불편해졌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 주, 상영관이 별로 남지 않은 <차우>를 보기 위해 처음으로 신림역 앞에 있는 '롯데시네마 신림'지점을 찾았을 때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그곳은 지금의 강북권이나 강남역, 코엑스를 포함한 강남권보다는 조금 극장소식이 늦은 지역이기 때문에 메가박스 코엑스와 같이 다양한 상업영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단지 <차우>를 이용하기 위해 그곳을 찾았던 것이다. <차우>는 재미있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정작 <차우>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앉아있는 불특정다수의 관객들이 이용하고 있는 바로 '그' 극장 자체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엄마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 조조를 보기 위해, 조금이라도 돈을 더 아끼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선 청소년들, 그들에게 그 극장은 어떤 의미였을까. 소비적. 소비적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강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은 그 극장이 없어진다면 다른 곳을 찾아, 그것도 아니면 그냥 집안에서 텔레비젼을 통해 영화를 볼 것 같았다. 만일 그 공간의 그 극장이 없어진다면, 그들은 별로 동요할 것 같지 않았다. 물론, 그때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은 아주 크나 큰 아집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솔직히 말하면,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극장의 관객은 유동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왠지모르게 침울한 생각마저 들었다. 아침 일찍부터 <차우>를 보고 온 그 날은 하루종일 우울했다.

그리고 얼마 후, 씨네큐브의 운영이 중단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네마테크는 크게 위기를 느꼈던 곳이지만 씨네큐브는 조금 달랐다. 어느 순간부터 상류층 엘리트들의 소유가 되어버린 듯한 극장의 주변 건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상영되는 극장은 예외였다. 광화문 벨트를 만든 장본인은 씨네큐브였기 때문에, 나는 늘 그곳을 통해 미로스페이스로 걸어나갔고 그곳을 통해 교보문고로 사라졌다. 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볼 수 있다는 어떤 자신감, 그런 이유없는 자신감이 씨네큐브 앞 조형물을 지날 때마다 가슴을 두드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극장이 없어진단다. 손을 쓸 수도 없게 되었다. 무언가 내가 할 일따위는 없었다. 운영을 그냥 그렇게 정해버렸으니 관객은 어쩔 수 없었다. 참 답답한 것이더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오늘 우연히 들른 씨네큐브 홈페이지에 쓰여있는 글들도 그런 느낌이었다. 건조함, 건조한 느낌. 더이상 그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그런데......... 그런데 씨네큐브와 반사적으로 연상된 극장은 시네마테크였다. 시네마테크의 위기는 늘 있었지만, 지난 2월의 타격은 예상보다 지나치게 크게 다가왔다.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어야 할 공간을 빼앗긴다는 자체가 목을 죄어왔다. 의자가 불편해도, 극장이 춥고 좁아도, 그래도 그곳은 견딜 수 있었다. 그곳은 '시네마테크'였으니까. 다른 어떤 이유도 필요하지 않았던 곳이다. 메가박스를 찾을 때 나는 늘 디지털 상영, 혹은 M관이나 1,2관과 같은 크고 안락한 상영관을 찾아 다닌다. 그리고 그곳에서 애인과 시시덕거리며 팝콘을 통째로 없애버리는 것을 좋아하고, 상영 전 광고를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시네마테크의 의미는 그런 극장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그곳은 유일하게 영화라는 매체에 온전히 정신을 놓을 수 있는 것이 가능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덜컥 겁이 났다. 만약 시네마테크가 한국에서 사라진다면, 극장의 운영이 더이상 불가하다면, 나는 어디에 어떻게 다시 정을 붙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한국에 다양성 상영관은 많지만, 그곳만큼 애정을 쏟고 정을 주었던 곳은 없었다. 그곳을 가지 않는 날은 나에게 '길티'였으니까.

나는 극장을 옹호하지 않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지금의 영화학도들, 그리고 이십대의 우리 또래들, 몇몇 다수의 그들이 찬양하는 '방 구석 모니터'의 전설을 믿지 않는다.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보다 개개인의 집구석에서 밝혀질 때, 그 가치가 살아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으니 굳이 극장을 택할 이유가 없다는 말, 그건 그냥 개소리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쏟아진다는 자체를 혐오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를 욕해도 상관없다. 영화는 극장에서 탄생했고 앞으로도 극장에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 어떤 부잣집에서 돌비 채널을 갖추고 초대형 스크린을 걸어 홈씨어터를 구비한다고 해도, 나는 그 장비들이 허름한 극장의 발 끝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싶다. 어느 날 극장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그건 생각도 하기 싫다. 그곳은 '진짜' 영화가 있는 곳이 아니던가. 시네마테크 시간표를 스윽 한 번 훑는다. 저 곳이 없어진다면 더이상 무얼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을 처음으로 극장에서 보았던 날.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를 모니터로만, 텔레비젼으로만 훔쳐보다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만났던 날. 차이밍량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면서 등 뒤로 서늘한 물줄기가 흐르는 경험을 해본 일이 있는지. 벨라 타르의 <사탄 탱고>를 스크린으로 보며 러닝타임 세 시간 반이 넘어가는 바로 그 시점에서 희열을 느꼈다. 집에서, 강의실에서는 절대 하지 못할 그 무수한 경험들. 그런 모두의 경험들이 서려있는 곳이 극장이고, 그러한 경험의 역사가 이어지는 곳이 시네마테크다. 나는 이러한 감정들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의 존속과 존재를 믿는다. 설령 그것이 과거의 유물이라고 해도 말이다.

 

극장은 소비의 공간이 아니라 필수불가결의 공간이다. 극장은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아야만 하며, 세기말 후 육지에 생존한 바퀴벌레처럼 관객을 사로잡아야 할 의무를 가진 공간이다. 그곳은 영화와 나, 그리고 영화와 당신, 단 둘이서만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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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eziac 2009.08.21 08:0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녕, 용문객잔] 저도 극장... 시네마테크, 씨네큐브에 추억이 많아 요즘 들리는 소식들에 안타까움을 많이 느끼네요. <칠레전투> 시리즈를 연이어 만났던 아트큐브에서의 어느 일요일, 잊을 수 없습니다.





지난 1년 간 경찰차, 전경차를 보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피해야겠다'라는 생각이었다. 민중의 지팡이, 포돌이와 포순이가 친근하게 다가온 것은 이미 머나먼 옛날의 일이다. 작년 5월, 집회에 연달아 참여하며 모여있는 군중들에게 '제법 정확하게' 최루가스를 발사하던 한 경찰의 손짓을 잊을 수 없다. 그 앞에서, 벌벌 떨며 나즈막히 욕을 해대던 진압봉을 든 경찰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분향소가 설치되었던 날,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3사의 카메라가 들이닥치기 직전 무장하고 있던 경찰들 앞으로 평복을 입은 경찰들이 자리를 바꿈했던 것 또한 잊을 수 없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보고 있던 것은 '평복을 한 위선적인 경찰들'이었다. 만일 이 날, 무장경찰들이 카메라에 비친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아마 나와 함께 당시 덕수궁에 있던 사람들은 충분히 공감하셨으리라. 지난 5월 초, 명동에서 술자리 2차를 가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가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는 친구의 말, 그리고 이미 일본 언론에 보도된 공공연한 사실들까지, 이런 것들은 모이고 모여 나에게 전경차- 닭장차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불신과 공포를 심어주었다.  

권력의 '개'가 경찰이라지만, 사실 그에 대한 전경들의 위압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심하다. 주변에 전의경을 지원해 일찍부터 군대에 가게 된 동생들이 여럿 있는데, 그들은 요즈음 정말 전경생활을 계속 할 힘이 생기지 않는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낸다. 작년 이맘 때 입대한 한 동생녀석은 틈만 나면 전화로 여러가지 상황을 전달해주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보면, 그리고 집회라는 단어 아래 경찰과 '대치'하게 되는 그들의 모습에 참 맥이 빠진다. 자신이 하지 않으면 위에서 갈굼당할 것을 뻔히 아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누르는 무서운 죄책감은 결국 '권력의 개'라는 호칭마저 낳았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지만, 시청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전경들을 볼 때마다 괜시리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현재, 시청 일대는 아직도 '닭장차'가 대기 중이다.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출퇴근을 반복해서 하는 그들이 참 고달프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정부에서 고집하고, 그들보다 높은 곳에서 그런 터무니 없는 행동들을 지시했다는 생각을 하면 슬그머니 등이라도 다독여줘야겠지만, 현재 서울시민에게는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이런 뭐같은 놈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욕설을 고스란히 받는 사람들은 장관 자리 차고 앉아 그들에게 지시하는 고위 관료들이 아니라, 현장에 나와 개 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는 경찰들이다. 개 중에 개념상실한 전경들이 '스타덤'에 오르기도 하고, 개 중에 개념상실한 과격시민들이 '스타덤'에 올라 '폭력시위'라는 딱지를 붙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편이 되었건간에 이런 무서움과 공포와 논쟁을 심어준 것은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과 선배에 복종해 하는 수 없이 단봉과 장봉을 들어야 하는 그들이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진압 앞에,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서울시민들이 모두 광장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경찰들의 모습밖에는 없다. 그렇게 보여져야 하고, 그렇게 보여지지 않으면 정상이 아닐 정도로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있다.  

 팩트를 팩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 나는 아직도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집회가 있는 날, 집회에 한 번이라도 참가해보라고 권하곤 한다. 이명박 정권이 원천봉쇄한 서울광장, 그 광장 대로변에서 꼿꼿이 서 있을 수 있는 날은 그 때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때문에 멀리서라도, 아주 먼 발치에서라도 서울 광장을 내다볼 수 있는 시간을 조금 가지고 살아간다. 이럴 때, 학교가 시청 일대에서 멀지 않다는 사실은 진심 반 농담 반 나를 위로한다.

 가만히 자리에 서서 촛불을 들어도 잡혀가지 않기 위해, 사진 찍히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하는 세상. 사진이라도 한 방 찍히게 된다면, 그 날로 어머니와 애인과 친구들은 '조사 받고 온' 친구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참, 무서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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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만에 정리하느라 기억에서 많이 희미해져서, 메모를 해뒀다고는 해도 빼먹은 내용도 많고 엉망이다. 빼먹은 내용 중에서는 데이비드 린은 인간에 대한 정의를 함부로 하지 않은 감독이라는 말을 적어두고 싶고, 정리한 내용 중에서는 영화는 이미지가 아니라는 말을 특별히 기억해 두고 싶다)

5월 10일 오후에 <콰이강의 다리> 상영 후 오승욱 감독과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진행하는 씨네토크가 있었다. 오승욱 감독은 먼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영화적인 체험들을 이야기하는데, 처음은 지금은 없어진 장승백이의 강남극장에서 봤다는 <인왕산 호랑이>라는 영화 예고편이다. 두 명의 사나이가 달밤에 결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오고 인왕산 호랑이라는 타이틀이 소용돌이치듯 빙글빙글 돌아서 스크린 가운데에 박히는 것을 보고 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그때는 오승욱 감독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두 번째는 금성극장에서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본 것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고 오승욱 감독이 놀란 것은 두 가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다 풀숲에 처박히는 장면과 칼에 사람 머리가 반토막 나는 장면이었다. 오승욱 감독은 <임꺽정>이라는 입체영화를 보고 놀란 이야기도 하는데, 마치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를 처음 보고 놀란 사람들 같았다고 한다. 그러자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데이비드 린 영화에 기차가 많이 나오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한다.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로렌스가 성냥을 켜는 장면이 매혹적이었다고 하더라면서 오승욱 감독은 웃는데, 자신과는 싹수가 다르지 않느냐는 것이다. 자신은 죽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반해...

데이비드 린의 영화에서 사람들이 매혹되는 지점 중 하나는, 로저 에버트의 '데이비드 린의 영화는 눈으로 경험하는 영화'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이미지다. 그는 이미지와 이미지를 결합시켜 서사를 만들어낸다. 물론 그렇게 한 사람은 데이비드 린 뿐만이 아니지만 데이비드 린은 그것을 가장 대중적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물론 거기에는 함정이 있다. 보여준다는 것에 대한 욕망에 집착하면 그 어떤 가느다란 끈을 넘는 순간 미치광이가 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린의 영화에서도 그런 강박이 심해지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오승욱 감독은 <라이언의 딸>에서 주민들이 폭풍우가 치는 바다로 무기를 건지러 가는 시퀀스를 예로 든다. 저 장면을 얻기 위해 감독은 과연 무슨 짓을 한 걸까? 저 장면을 찍기 위해 배우들은 자칫하면 생명이 위험한 상황까지 내몰려야 했을 것이다. 저렇게 위험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 감독은 폭군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데이비드 린은 영화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든 감독이라고 오승욱 감독은 이야기한다. 감독은 어디까지 보여줘야 하는가? 이미지에 대한 탐욕을 가진 감독들 중에는 말년이 좋지 않은 감독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구로자와 아키라가 그렇다고 한다. 구로자와 아키라와는 달리 데이비드 린은 마지막 영화인 <인도로 가는 길>까지 가면서도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았다고 오승욱 감독은 이야기한다. 데이비드 린이 구로자와 아키라의 길로 가지 않은 것은 관용에 대한 정신 때문이라는 것이다. 데이비드 린은 시나 소설에서는 절대 보여줄 수 없는 것을 영화를 통해 보여준 감독인데, 그 와중에 그는 끊임없이 관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것이 사실은 그의 이미지보다 더 중요하게 눈여겨 보아야 될 지점이라고 오승욱 감독은 설명한다. <밀회>를 보면 놀라운 것은 영화가 시작하면서 보여준 시간과 영화가 끝나면서 보여준 시간이 같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이 한 말은 사실은 데이비드 린 감독이 하고 싶은 말 아니었을까? 남편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아내를 받아들이고 용서하는데, 그것은 단순하지만 소중한 관용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데이비드 린이 항상 하는 이야기가 관용인데, 그것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은 평론가들에게 박살난 <라이언의 딸>이라고 오승욱 감독은 말한다. <라이언의 딸> 마지막 시퀀스는 보석같은 시퀀스라고 오승욱 감독은 말하는데, 영국군 장교와 바람을 피운 아내, 그런 아내와 함께 만신창이가 되어 마을에서 쫓겨나면서 남편은 아내에게 당당하게 걸으라고, 기운을 내라고 말한다. 대단히 소중하고 다른 어떤 것들보다 가장 많이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이 관용 아닌가,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사수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오승욱 감독은 말한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거대함 안의 진짜 사소한 이야기를 거대하게 한 감독인데, 10주 동안 촬영이 중지된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주위 사람들을 거의 미치게 만들었을 것이다. 데이비드 린 감독에게는 악마같은 일화가 하나 있는데, 바로 안소니 퀸에 관한 것이다. 안소니 퀸이 어느 날 감독에게 자신이 영화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지 자랑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막의 모래언덕 부근에 세트를 짓는데 그가 데이비드 린에게 세트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더 낫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자 데이비드 린은 그 말을 선선히 들어줬는데 세트를 옮기는데 2주가 걸렸다. 그런데 세트를 옮긴 얼마 뒤 바람 때문에 모래언덕이 완전히 이동해버린 것이다. 안소니 퀸은 그 뒤로 데이비드 린에게 완전히 꽉 잡혀 버렸는데, 그는 자기 자서전에서 데이비드 린에 대해서는 이 사실 하나밖에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 감독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면서도 배우를 길들이기 위해서 한 일이고 해서는 안될 짓이었다. 세트를 옮기는데 쏟아부은 수많은 돈과 시간을 생각해보라.

(김성욱 프로그래머인가 오승욱 감독인가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어린 시절에 봤을 때는 어떤 쾌감 같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콰이강의 다리>를 보면 일본군이 장악한 수용소에서 영국군과 미군이 하는 짓에는 낭만적인 면이 있는데, 따져보면 찌질한 것이다. 영화의 구성을 보면 앞의 한시간 동안에는 포로로 잡힌 영국군 장교들이 일을 하는가 마는가를 놓고 영국군 장교 니콜슨(알렉 기네스)과 일본군 포로수용소 소장 사이토(하야카와 셋슈)가 실갱이를 벌이고 40분 동안에는 다리를 지으며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미군 파괴공작원들이 다리를 부수러 온다. 인간들의 사소하고 찌질한 행동들이 거대한 규모의 영화 안에서 보여지는데 지금 같으면 사람들이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그건 <인도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 정도의 규모와 스케일이 필요할까? 그런데 그것이 주는 묘한 매력과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족장들이 회의하는 장면이 의미하는 것은 소통의 불가능성 하나 뿐이다. 오승욱 감독은 자신은 전쟁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포로수용소 영화라는 것이다. 믿지 않겠지만 포로수용소 영화에서는 사람을 죽이지 않아서 좋다는 것이다. 어차피 서부영화나 전쟁영화나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자신은 전쟁영화에서 사람을 죽일 때는 이상하게 견디기 힘들다는 것.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대단한 것은 대규모 전투씬을 중공군과 싸우는 것으로 하고 동족과 싸우는 것을 보는 관객들의 죄책감을 덜어준 것이다. 

<콰이강의 다리>에서 재미있는 것은 일본군과 미군, 영국군이 생각하는 포로의 개념이 틀리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포로의 개념이 전혀 다른 상대끼리 싸운 전쟁이었다. 영국과 미국에서 포로가 된다는 것은 전투에서 진 것이지 전쟁에서 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임무는 탈출해서 적에게 적대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포로가 된다는 게 전투에서 진 것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도 진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들은 포로가 되면 할복을 하거나, 아니면 부대의 일급 기밀까지도 거침없이 적에게 털어놓곤 하는 것이다. <콰이강의 다리>에서는 사이토가 생각하는 포로의 개념과 니콜슨이 생각하는 포로의 개념이 충돌한다. 그래서 사이토는 포로가 되고 나서도 포로의 권리를 찾고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는 니콜슨을 이해하지 못한다. 니콜슨은 사이토와의 싸움에 이김으로써 다리 건설의 주도권을 갖게 되는데, 그가 다리를 짓는 행동에는 인종주의적인 함의가 있다. 제국주의 영국의 우수함을 미개한 원주민과 일본인들에게 과시하려는 것이니까. 사이토가 니콜슨의 요구를 들어준 뒤에 방 한구석에서 우는 장면이 있는데, 그는 니콜슨에게 정신적으로 패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명예에 대한 싸움으로 보이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것을 살짝 바꾸면 허세가 된다는 점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영국군 포로들이 대오를 지어 행군하면서 휘파람을 불며 오는데, 카메라는 그들이 신고 있는 너덜너덜해져서 다 떨어진 군화를 비춘다. <콰이강의 다리>는 전쟁을 하고 있는 남성들의 허세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가련한 것인지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허세를 보여주는데 이 정도 규모가 필요하다고 데이비드 린은 계산한 것 아닐까.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도 <콰이강의 다리>를 염두에 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군이 동남아시아를 점령할 당시, 일본군 장교들은 미군과 영국군 포로들이 떳떳한 것을 보고 그들이 수치심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들은 사무라이 정신을 배우라고 포로들을 다그쳤지만 그런 반면 그들의 당당한 모습에 매혹되었다. 일본인들의 서구에 대한 태도는 동전과도 같이 양면을 지니고 있다. 일본인들은 서양 포로들을 사무라이 정신으로 채우려 했지만 반대 상황이 되자 그들은 적극적으로 친미적이고 친서구적인 길을 걸었다.
존 스터지스의 <대탈주>를 보면 포로로서의 미군과 영국군의 차이도 드러나는데, <대탈주>의 스티브 맥퀸과 <콰이강의 다리>의 윌리엄 홀덴 캐릭터가 겹치는 부분이 있다. 18세기 경부터 전투시 영국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전진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군복은 빨간색이었는데 그 이유는 옷이 빨간색이면 전투 도중에 튀긴 동료의 피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관총이 발명된 뒤에는 빨간색 군복은 좋은 표적이 되었기 때문에 군복의 색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대탈주>와 <콰이강의 다리>의 영국군들은 계획을 세우고 뭔가 성취하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미군들은 즉홍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포로로 살아가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콰이강의 다리>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은, 영국군이 갖고 있는 영국 신사라는 허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허세가 허세인 것은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니콜슨과 영국군이 자신들의 허세를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은 결국 이적행위이며 니콜슨이 걱정하는 것은 부하들의 군기 뿐이다. 그런 것을 중시한 나머지 니콜슨과 그의 부하들은 이적행위를 하게 된다. <콰이강의 다리>는 허세라는 것을 끝까지 밀고 갔을 때 생기는 이상한 딜레마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린의 영화를 보면 사람이 광기에 빠질 때 망령이 다가오는 것 같은 현현현상이 있는 것 같다. 죽은 줄 알았던 윌리엄 홀덴 캐릭터가 튀어나오는 것도 그렇고. 이 사람이 생각하는 영국성이란 무엇인가? 영국은 식민지를 가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는데, 어디를 가든 그런 것들과 만나게 된다는 것 아닐까. <인도로 가는 길>의 동굴 에코도 그렇고. <콰이강의 다리>는 기찻길 옆의 무덤과 독수리 등 죽음의 이미지로 시작해서 그렇게 끝날 것이라는 점이 너무나 명백하다. 그리고 그의 영화를 본 관객들은 굉장히 모호한 느낌을 갖게 되는데 데이비드 린은 그런 모호함을 즐겼을 것 같다.

<콰이강의 다리>을 보면 데이비드 린이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시각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가령 미군 파괴공작원들이 정글에서 일본군을 죽이는 장면에서 큰 박쥐들이 우수수 날아가는 장면, 그런 장면을 도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집념으로 찍었을 것이다. 아마 미얀마에서 영화를 찍었을 텐데, 그런 정글로 들어가려면 영화에서 하는 것과 똑같이 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보여주는 데 대한 데이비드 린의 집념이 드러난 것이다. <콰이강의 다리> 이후부터 데이비드 린의 영화에는 자연이 하나의 캐릭터처럼 등장하기 시작한다. 자본도 넉넉해져서 데이비드 린의 영화를 보고 나면 이미지가 각인되는게 많다. 오승욱 감독은 <라이언의 딸>을 보고 나서 집에 가서 존 포드 감독의 <아일랜드의 연풍 The Quiet Man>을 볼 것을 권한다. 퀘이커 교도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죄의식에 시달렸던 영국인 감독 데이비드 린과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사나이 존 포드가 아일랜드 사람을 묘사하는 것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거라는 말이다. <콰이강의 다리> 프로젝트는 여러 감독들을 거쳐서 데이비드 린에게 갔는데, 심지어 오손 웰즈도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존 포드와 하워드 혹스에게도 갔는데, 그들은 자기들에게(혹은 자기 나라에게) 식민지를 경영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한다.

이집트 사람들이 피라미드를 지을 때도 그런 고민을 했을 것 같은데, 남들에게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 보여주려면 무엇을 얼마만큼의 크기로 지을지 계산을 해야 한다. 그것이 스케일의 개념이다. 데이비드 린 역시 어떤 것을 필름 위에 표현하려면 그것을 어느 정도 크기로 만들어야 할지 대단히 고심했던 것 같다. 데이비드 린은 평론가들에게는 시시한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 거대한 돈을 쏟아부어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영화 속에 스케일의 개념을 가져왔고, 거기에 대해 굉장히 고민했다. 사랑 하나를 표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데이비드 린은 <밀회>에서 이별하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장면을 하나 툭 보여주고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에 그것을 다시 보여준다. 처음에 여자의 손 위에 살짝 얹히는 남자의 손의 의미와 나중에 다시 보여주는 그 장면의 의미는 전혀 틀리게 다가온다. 60분 동안의 내용을 보여줌으로써 그 사랑의 크기를 오롯이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는 이미지가 아니다. 아름다운 이미지만 보고 싶으면 사진을 보면 된다. 그런 일은 사진 작가들이 오히려 더 잘할 것이라고 오승욱 감독은 말한다. 데이비드 린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압도저인 이미지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시키면서 놀라운 이야기와 시간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영화가 여기까지 온 데에는 데이비드 린이 기여한 바가 크지만 그는 너무 많은 비판을 받았고 과소평가된 감독이다. 오승욱 감독은 기존의 평가에 얽매이지 말고 편안하게 영화를 볼 것을 주문한다. 오승욱 감독, 김영진 평론가, 김성욱 프로그래머 등이 공히 언급하고 추천하는 데이비드 린의 영화는 <밀회>이고, 거기에다 <위대한 유산>의 첫번째 시퀀스는 꼭 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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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콰이강의 다리] 상영 후 있었던 시네토크 후, 서울아트시네마가 5월 10일자로 개관 8주년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감사원에서 감사받는 중이라 정신없는 상황이고 그래서 큰 행사 없이 관객들에게 추첨을 통해 선물을 증정하는 것으로 넘어갔습니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크고 성대하게 10주년 파티를 할 수 있으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진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오늘 찍어둔 사진이 없습니다. 그래서 올해 초 [히스 걸 프라이데이] 상영 후 시네토크에 참석한 하정우 씨의 사진으로 갈음합니다. 옆자리 전계수 감독님인데 사진이 잘 안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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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시 30분에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상영한 후에 김영진 평론가의 강의가 있었다. 영화 상영 전에는 영화를 보러 온 이명세 감독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간략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명세 감독은 [아라비아의 로렌스] 다큐멘터리에서 스필버그가 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스필버그는 로렌스가 성냥불을 끄고 바로 어두운 새벽에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으로 전환되는 것, 그 장면을 가리켜 '이것이 영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영화에서밖에는 볼 수 없는 장면, 영화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이명세 감독은 그것을 스크린으로 보기 위해 왔다고 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이명세 감독을 소개하기 전에 시설 때문에 아쉽게도 70mm로 상영할 수는 없지만, 35mm로도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210분으로 인터미션이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강연이 시작되었다. 김영진 평론가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진정 스크린으로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운을 뗀다. 그는 대한극장이 헐리기 전,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상영되었던 이 영화를 봤던 일을 이야기한다. 그때는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70mm로 상영했다. 후배들이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해서 자신이 가겠다고 이야기했는데, 막상 혼자가기 싫어서 밥 사주겠다며 후배들 두 명을 끌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온 후배들은 충격을 받았다. 이런 영화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김영진 평론가도 마찬가지였다.
김영진 평론가는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8시간짜리 필리핀 영화를 봤다는 이야기를 한다. 프로그래머가 부탁해서 GV를 맡았는데, 너무 피곤해서 한 시간 보다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보니 러닝타임이 다섯 시간쯤 남아있더라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아주 편안히 영화를 봤다고. 그 두어시간 동안 스토리가 별로 진행된 게 없어서 영화 내용 이해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대여섯시간 지나니까 사람들이 피곤해서 다 나가고 스물다섯명쯤 남아서 끝까지 영화를 보는데, 남아서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들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별다른 액션도 없는 영화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정의 깊이가 엄청나더라는 것. 이 영화가 자신의 대작에 대한 통념을 바꿨다고 김영진 평론가는 이야기한다.

지금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스펙터클 같은 건 만들어질 수 없는 시대다. 오마 샤리프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만약 당신이 스타도 없고, 여자도 없고, 여자가 없으니까 당연히 로맨스도 없고, 액션도 없는 영화를 만드는데 사막에 가서 찍어야 되고 러닝타임이 네 시간짜리다. 이런 영화를 누가 만들고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그런데 그걸 해낸 게 데이비드 린이다. 데이비드 린은 완벽주의자로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수많은 야사를 남겼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낙타들조차 일일이 캐스팅했다고 한다. 당시 아우다 아부 타이 족장 역으로 출연한 안소니 퀸은 주급으로 10만 달러를 받았고, 데이비드 린은 우아한 영국 신사여서 촬영하다 문제가 생기면 컷을 외치는 대신 일어서서 스탭들에게 미안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말하는 걸로 대신했다고 한다. 어느 날 촬영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러 온 제작자 샘 스피겔과 안소니 퀸 부부, 데이비드 린 등이 저녁식사를 한 일이 있었다. 데이비드 린은 그 자리에서 샘 스피겔에게 후반부의 각본에 문제가 있어서 수정을 해야 하는데, 각본을 쓴 로버트 볼트에게 물어보니 고치는데 10주가 걸린다고, 그 동안 촬영을 중단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안소니 퀸은 10주 동안 놀면서 돈 받을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좋아했지만 데이비드 린의 말을 들은 샘 스피겔은 스프 접시에 얼굴을 박고 기절해버렸다. 데이비드 린은 우아하게 냅킨으로 입을 닦은 뒤 안소니 퀸의 부인에게 샘 스피겔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고는 돌아갔다고 한다. 데이비드 린은 이런 에피소드를 남겼는데 어느 날 샘 스피겔이 촬영 중인 데이비드 린을 다시 찾아갔는데 데이비드 린이 사막 한 가운데서 혼자 울고 있더라는 것이다. 촬영도 엉망이고, 연기도 엉망이고, 연출은 더더욱 엉망이라서 이 영화는 실패라면서(우린 안 될 거야 아마?) 울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걸작이 나왔다. 러닝타임이 너무 긴 탓에 오리지널로 할 것인지, 일부 장면을 삭제하고 개봉할 것인지 설왕설래가 오간 끝에 10분을 삭제하고 전세계적으로 개봉을 할 수 있었다.

T.E. 로렌스의 자서전은 [지혜의 일곱 기둥]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발간이 되었다고 한다. 자서전을 읽어보면 T.E. 로렌스는 돈키호테적인 인간이며 엄청난 자뻑의 소유자인데 그러면서도 동시에 굉장한 필력을 보여주고 있다. 데이비드 린과 로버트 볼트는 그걸 참조만 하고 자신들 나름대로 영화를 만들었다. 만약 요즘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만든다면 이 영화는 아랍 군대가 다마스쿠스로 진격하는 부분에서 끝나지 않을까? 이 영화는 로렌스가 배제되는 정치적인 정황이나 실패한 영웅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T.E. 로렌스를 비판하면서 실은 그는 제국주의의 하수인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 적 있는데, 생각해 보면 스펙터클한 영화 중에서 이렇게 복잡한 영화가 있었나 의문스럽다고 김영진 평론가는 이야기한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주인공은 시련을 겪으면서 강해지는 게 아니라 분열되고 망가져간다.
당시의 데이비드 린은 전세계적인 흥행 감독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반면 평론가들의 지지를 차차 잃어가고 있었다. 데이비드 린은 16편의 영화를 남긴 과작의 감독인데 그가 영화를 많이 만들지 못한 데에는 시대의 변화 탓도 있었다(이 부분은 제대로 메모하지 못했다). 데이비드 린은 국제적인 합작 영화를 계속 성공시켰다. [라이언의 딸] 같은 작품은 심지어 1년 동안 극장에 걸려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평론가들은 그가 영국에서 만든 [밀회] 같은 소품에 가까운 영화들을 더 좋아했다. 어느 자리에선가 데이비드 린은 유명한 평론가 폴린 카엘을 만났는데, 혀가 매서웠던 폴린 카엘은 데이비드 린을 계속 물고 늘어졌다. 마침내 화가 난 데이비드 린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제가 40년대풍의 레터박스 흑백영화만 찍으면 좋겠느냐고 묻자 폴린 카엘은 컬러까지는 봐드리겠다고 대꾸한다. 이에 데이비드 린은 자신에게 반성할 점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이후 14년 동안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김영진 평론가는 폴린 카엘이 훌륭한 평론가이기는 하지만 그런 비난은 부당한 것 아니었느냐고 이야기한다.

데이비드 린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잡역부로 시작해서 10년 동안 스튜디오에서 편집하는 일을 했다. 한때는 그 스튜디오에서 나오는 모든 영화를 데이비드 린이 편집하던 때도 있었으며 산책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으로는 편집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경력을 가진 데이비드 린은 고전적 편집 스타일의 대가로 일컬어진다. 대표적인 예로 [위대한 유산]의 첫번째 시퀀스 같은 경우로,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완벽하게 함축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관객들을 정말 들었다놨다 했다. 첫 번째 시퀀스에서 주인공은 무서운 나무를 보고 움츠러들고, 거기서 탈옥수를 만나는데 그 장면에서 관객들이 놀라는 것을 객석에서 본 데이비드 린은 됐다, 이 영화는 성공이다,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위대한 점은 대사가 없는 씬에 있는 것 같다고 김영진 평론가는 이야기한다. 로렌스가 사막으로 나가서 혼자 생각하고 그걸 두 아랍 소년이 쳐다보는 장면, 그 장면을 보면 꼭 사막이 영화의 주인공인 것처럼 보인다. 로렌스는 왜 사막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깨끗하니까, 라고 대답하는데 그것은 다른 세계에 있지만 자신이 지금 있는 이 세계에 매혹된 나머지 이 세계에 속하고 싶은 로렌스의 내면과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 매혹을 사막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영화에는 영화사상 가장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가 있는데, 무명의 오마 샤리프를 스타로 만든 장면이다. 주변에서는 자르자고, 디졸브로 하자고 했지만 데이비드 린은 완고하게 고집을 지켰다. 이 장면을 위해 촬영감독 프레디 영은 750mm 장초점 렌즈를 제작했다. 그 장면은 바로, 영화 초반부에서 사막에 있는 오마 샤리프가 하나의 점처럼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는 흐릿한 점처럼 들어와서 로렌스와 마음을 주고받는 고귀한 야만인이 된다.
1950년대, 60년대는 다국적 스펙터클의 전성시대였고, 데이비드 린의 성공과 대비되는 대표적인 실패의 사례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클레오파트라]가 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돈이 들어갔고, 실패함으로써 영화사를 휘청거리게 한 작품이다. 그런데 지금 이 영화를 보면, 이 영화는 실패작은 아니다. 클레오파트라가 로마로 들어오는 장면 같은 경우, 지금에야 CG로 모든 것을 처리했겠지만 그때는 그 로마 거리를 실제로 지었다. 그 수많은 엑스트라들도 실제로 동원했고. 그 장면을 찍는 순간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진짜 클레오파트라가 되지 않았을까. 데이비드 린의 [닥터 지바고]는 스페인에서 찍었는데, 도중에 러시아 혁명과 관련된 몹씬이 하나 나온다. 그런데 이 장면을 촬영할 때 엑스트라들 중에는 스페인 내전 참전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그 장면을 찍으면서 몹시 울었고, 자신들이 체험한 혁명적인 상황에서의 고양된 분위기를 그대로 그 장면에 전달했다. 실제 시위가 일어난 것으로 오해한 경찰이 출동했었고, 경찰에 포위된 상태에서 밤새도록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닥터 지바고]를 보면 그런 아우라가 그대로 스크린에 전염된 느낌을 주는데 [아라비아의 로렌스]도 마찬가지다. 아우다 아부 타이 족장의 마을이 펼쳐지는 장면도 요새는 다 CG로 그려내지 않겠는가. 아카바 점령 시퀀스도, 변변한 전투 장면이 없다. 그냥 아랍 군대가 말을 타고 한번 쭉 밀고 들어가면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변변한 전투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교하고 스펙터클하다. 대작으로 보기에 불만이 없는 것이다. 이런 아날로그적인 질감, 스크린에 담겨있는 정서는 오늘날 재현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고 김영진 평론가는 이야기한다.

데이비드 린은 매체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난 감독이었다(무성영화를 찍던 감독들의 활동기를 김영진 평론가는 마지막 거장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 같다). 가령 존 포드 같은 감독은 의외로 와이드스크린에 잘 적응하지 못했는데 데이비드 린은 스탠더드에서 와이드스크린으로 넘어오면서 안소니 만과 더불어 랜드스케이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막 가서 찍은 모 영화(아는 사람들은 다 알만한 그 영화, 감독은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생각하고 갔겠지만)가 있는데 보면 사막에 왜 갔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김영진 평론가는 말한다. 실제로 사막에서 영화를 찍기란 어렵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면 그 사막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지만, 실제 사막은 거대한 모래사장이다. 아무리 구도를 잡아도 그림이 안 나오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등장인물의 얼굴에 집중하게 되는데 와이드스크린은 인물을 센터로 놓는 데 적합하지 않다.

데이비드 린은 자기 연출이 형편없다고 울었지만 장교클럽 시퀀스는 그의 연출력을 잘 보여준다. 실제 그 안에 담겨 있는 얘기는 사소하고 내용도 별 게 없지만 데이비드 린 감독은 그 몇 분 사이에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복잡한 감정과 로렌스가 처한 상황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데이비드 린은 터키 장교에게 겁탈당하는(김영진 평론가는 아마 그렇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한다) 장면 같은 것을 대단히 미묘하게 표현하는데,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대한 김영진 평론가의 결론은 이 영화는 인간에 대한 정의를 굉장히 신중하고 겸손하게 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아우다 아부 타이 족장 조차 나름대로의 지혜를 가진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요새 영화들을 보면 어떤 영화 제목대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인간을 함부로 정의하는 영화들이 많고, 최근의 인터넷 문화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판관인 것처럼 남들을 단죄(그러다 작년에 최모 배우가 죽지 않았느냐고 김영진 평론가는 이야기한다)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비판하고 있다. 김영진 평론가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한 인간의 여백과 매력, 결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고 그것은 한 인간의 삶에서 몇 개의 레이어를 추려내어 보여주는 느낌이 든다는 말을 한다. 여전히 진행중인 에픽이며, 이 영화에서 소개된 것은 각각 인간들의 일면일 뿐이다. 이어서 그는 데이비드 린의 [밀회]를 관객들에게 추천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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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de 2009.06.24 14:26 address edit/delete reply

    후기가 너무 재밌네요, 꼭 보고싶어졌어요, 쓰지않던 마음과 뇌뒤쪽을 건드려주는것이 영화와예술의 역할이지요,




* 3/14에 있었던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시네마테크 연속포럼1- 고다르와 시네마테크>의 후기입니다.


'JLG/JLG: 고다르의 자화상'은 고다르가 스스로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비춰보고 있다. 그는 자신을 비춰보고 있는 그를 스크린에 재차 투영하고 있다. 그의 어린시절 사진이 보인다. 그는 죽음이전에 미리 상복을 입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에는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애도로 가득하다. 상영되지 못한 영화들, 역사와 함께 만들어질 수 없었던 영화들에 대한 애도는 동시에 미래에 만들어질 영화들이 필연적으로 안고 있을 결핍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고다르의 아뜰리에는 하나의 극장이고 박물관이며 그 속의 고다르는 이야기의 화자이자 감독이자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자신의 몸과 자신의 세계를 박물관 속에 전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존재자체가 하나의 영화의 역사와도 같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영화적이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한국 영화계의 굴곡들을 통과해 지금껏 대중과 영화적으로 소통하려는 최전선의 자리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책과 글을 통해 그들을 만나고 또 관객과의 만남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든다. 우리는 영화를 이야기 속으로만 국한하여 만나지 않는다. 영화는 그 존재자체로 영화를 둘러싼 환경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가 선택해서 본다고 여기는 영화 한 편, 그리고 우리. 그 사이엔 과연 무엇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마치 아무런 것(장애물과 그 장애물위에 건넌다리를 설치한 존재들)도 없는 것처럼 생각할 때 우리는 영화란 것에서 과연 무엇을 발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을 염두하지 않은 발견은 어떤 진정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좋은 영화를 듬뿍 취하고 나서 그 다음에 우리는 그 영화를 뮈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성일 평론가는 다수의 글에서 영화를 만난 방식과 그 연대기적 순서가 무척 중요하다는 언급을 했다. 영화가 결과론적인 사건이 아님을, 상영과 관람속에서 새로운 시간성을 부여받는 움직이는 예술임을, 그리고 그 선택의 방식에서 영화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지들을 안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의 시작에서부터 수혜를 입고 살아간다. 부모님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식에 대해 사회는 싸늘한 시선을 보낸다. 어쩌면 이 세상에 산업과 자본의 논리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은 혈연공동체일지 모르겠다. 비록 영화와 나는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나는 그보다 더 끈끈한 무형물을 투척했고 그도 반응했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건 누구나 소유하고 있는 것이니까, 나는 이것을 영혼이라고 말한다. 내가 영화에서 영혼의 울림을 발견한 날은 2008년 이맘때의 고다르전이었다. 자화상, 사랑의 찬가, 아워뮤직을 보던 그 주말의 밤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너무 어렵고 난해했다. 그런데 거꾸로 영화를 보는 눈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구체적인 경험을 언어로 설명하긴 어렵다. 우리가 함께 보지 않고서는 말이다. 나는 그의 근래의 작들에 그가 자신의 영혼의 눈을 투영하고 있다고 느꼈다. 카메라 자체에 무언가 강력한 무형물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자화상에서의 고다르는 꼬장꼬장한 노인의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진다. 그의 삶은 여전히 엉뚱한 유쾌함들을 잃지 않고 있다. 그만의 몽타주식 이해구조는 우리를 흥미롭게 이끌어간다. 액션과 리액션을 반복하는 소리들, 그만의 방식으로 병치되는 영상들의 독특한 정서들. 공포 분위기를 자아내는듯한 히치콕식 벨소리와 새소리들. 영화와 역사라는 대과제를 앞에 두고 멜랑꼴리하다가도 털모자를 쓰고 잠옷을 입은 모습을 보여준다던가 늘씬한 하녀가 중요한 이야기를 중얼대는 순간 닥쳐-라고 호통치다가 갑자기 우는 아이에게 상어가족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하하하 웃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를 지배하는 이미지는 눈 먼 상태와 침묵이다. 눈 먼상태의 편집자, 그리고 중요한 순간 우리를 방해하는 소리들 이후 이어지는 침묵의 시간들. 그는 들려주고 말을 건내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눈을 감고 하는 사색을 권한다. 고다르는 책 속의 인용구를 나직이 읊으며 사색에 잠긴 산책을 한다. 그는 박물관을 우리에게 안내하고 또 스스로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것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살아 움직이는 것은 그의 방에서 돌아가는 비디오필름안의 영화들이다. 사실은 그것이 죽은 것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인데 거꾸로 그는 그것들이 살아있는 것이고 우리들이 죽어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과거는 아직 지나가지조차 않았다고 말하며 끊임없이 역사속에서 영화가 소외받아온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그는 국가가 지키지 못했던 영화예술의 예외성과 문화적 규칙에 대해 언급한다.

얼마전 스폰지에서 2년여간의 긴 투쟁끝에 '숏버스'를 개봉시키는데 성공했다. 씨네21에서 그 수훈인 변호사를 취재한 글을 보았다. 존 카메론 미첼감독도 한국의 개봉날짜에 맞추어 편지를 보내왔다. 스폰지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감동적이다. 사장될 수 있었던, 혹은 사장되었던 것을 살려내는 것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세르지오 레오네가 서부를 그런 식으로 살려냈고 멜빌이 레지스탕스들을 그런 식으로 살려내어 제대로 묻히지 못한 떠도는 영혼들을 장사치뤄주었다. 우리는 감동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들을 살려낼 수 있었던 과정, 기꺼이 그 보이지 않는 영역을 감당하려 한 사람들에 대해 그다지 감동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시네마테크에서 레오네를 만난 사람들이었다면, 그의 영화를 떠올릴 때 그 극장의 거대한 환영이 솟아날 것임은 분명하다. 신화처럼 자리잡아 있던 수많은 짝퉁의 형식이나 서브텍스트(비디오,DVD)로 존재했던 것들을 원형그대로 복원해낸, 그들을 감옥에서부터 살려낸 공간이 시네마테크이다. 왜 그런 구원행위에 대한 감탄과 감사는 단발적으로 그치고 마는 것일까? 왜 그것에 적절한 보상행위는 어디서도 이루어지려는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멜빌과 레오네의 열혈팬들, 온갖 어둠의 경로를 거쳐가는 수많은 B무비, 좀비영화들에 대한 예찬은 시대를 막론하고 강력하게 이어지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들의 영화적 방식에 찬성한다면 우리는 시네마테크의 방식(규칙)에도 동참해야 함은 당연지사가 아닐까. 

우리는 신비주의적인 신화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시네마테크는 신화를 쓰는 곳이 아닌 그것을 파괴하는 곳이 될 것이다. 누벨바그리언들이 시네마테크에서 고전을 만난 것은 생경한 것을 만난 사건이었다. 그러나 다양한 경로와 형태로 그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요즘의 시대에 시네마테크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전들을 만나온 방식을 수정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었다. 30년대를 4-50년대를, 그리고 6-70년대를 동일하게 체험하는 것이다. 그 당시의 그 극장이 되는 것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체험보다 유용하다. 현대적 공간을 인지시킨채 박제되어있는 미술품을 보는 것이 아닌, 그 당시의 작업현장을 그대로 재연해내는 것이다. 영화란 시간예술이자, 그 시간의 개념을 지우는 예술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시네마테크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위대한 영화가 없었다면 시네마테크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네마테크가 없었다면 위대한 영화는 보존될 수 없었다. 앙리 랑글루아는 상영이 곧 보존이라고 말했다. 환영성으로만 존재하는 영화를 휘발시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해서 상영하고 말해지고 씌어지는 것이다.

존재할 수 있었던, 만날 수 있었던 건 희망이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쥘이 열차를 타고 서부로 도착할 때의 그 시퀀스를 기억하는가. 그 아무것도 모른채 들뜬 장엄한 클래식의 희망찬 기운들을 말이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러나 뒤이어 우리는 그녀가 서부의 거칠고 무정한  사내들의 세계에 발디디게 되는 것을 본다. 음악은 금새 귀를 쨀듯이 우리를 자극시킨다. 백치의 상태로 도착한 서부는 생존과 직접적으로 맞물려있는 그런 모래바람의 공간이었다. 옛날 옛적에 서부가 있었다. 그 옛날에 신화처럼 영화가 있었다. 우리는 친구들 영화제에서 그 전설적인 영화 탐욕을 엄청난 편집본으로 경험했다. 그 상태는 옛날 옛적에 그런 영화가 있었다는 어렴풋한 흔적만을 남기고 있다. 이 영화는 전설이라기보다는 에피소드에 가까워 보였다. 그것이 완전한 복원상태이든, 비가 내리는 필름이든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세월을 통과하여 무언가 손상을 입은 영화들의 몽타주를 만나고 있다. 고다르는 시네마테크에서 손실의 영화들을 만났다. 그는 위대한 영화를 만든 무르나우와 장비고를 결코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누벨바그리언들은 그런 손실들과 싸워가며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미조구치의 영화를 자막도 없이 보며 화면의 움직임에 대해서 글을 썼다고 한다. 우리들의 시네마테크는 고다르식의 몽타주 박물관은 아닐지 모른다. 랑글루아가 운영했던 프로그램의 방식(영화사적 시대구분을 넘나드는)보다는 국가(지역)과 작가 위주의 프로그램이다. 각국의 언어들이 많은 이들의 수작업을 통해 번역되어 보여지고, 영화에 대한 무료강좌가 진행된다. 영화선진국에 못지 않은 엄청난 프로그램들이 기획되고 연 400편의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그렇지 않은 조건에서 탄생한 영화들을 꽤 좋은 조건으로 만나고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6000원이란 영화가격에 나는 수긍하기 어렵다. 이런 자본시장에서 영화는 예술품과는 정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손 때가 묻고 유효시간이 지난 것은 가격이 내려간다. 고다르는 영화의 역사들에서 영화가 예술도 기술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회화도 아니고 시네마토그라프도 아니다. 그것은 움직이는 환영이다. 그것은 이미 생명의 시한을 다할 운명을 가진 절망속의 시도이다. 마을에서 쫓겨난 꽃 파는 행상이다. 눈먼 장님이다. 그런 대우를 견딜 운명을 가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나서, 그런 죽음으로 이르는 운명을 가진 영화만이, 그런 치명성이 바로 영화였다고 말한다. 히치콕에 대한 오마주를 그렇게 바치고 있다.

매일 영화를 보면서 감사하고 그 영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다르에 따르자면 누군가는 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영화들은 그런 방식으로 전수되었기 때문에 지금껏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 이런 영화가 있었다더라고 추측으로만 영화를 만나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것을 복원해낸 손은 영화를 찍은 감독의 눈과 어쩌면 동일한 것이다. 우리는 손을 눈으로 보고 있다. 손의 물리적 존재감은 눈을 통한 인지로 가능한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전후의 '나'는 다른 '나'이다. 전자는 정신의 영역이고 후자는 물리의 영역이다. 이 두 명제는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연결될 수 없다. 존재하는 물리성을 인지하는 것은 또다른 물리성으로만 가능하다. 영화는 그렇게 구원되어져 왔다. 전 세계 시네마테크 관계자들의 수혜행위로 말이다. 시네마테크에서 상영된 영화들은 새롭게 씌여져야만 할 것이다. 안방에서 만난 전설의 영화들이 이곳에서 필름으로 상영될 때 우리는 전율을 느꼈다. 고다르는 이미 오래전부터 필름으로 경험한 영화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비디오물을 조합하는 것이다. 그는 필름으로 고전을 경험한 세대이기에 이것이 가능한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TV와 비디오를 통해 고전을 접한 세대이다. 그런 우리가 고다르의 비디오물을 본다. 그것을 필름으로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조명하는 것은 고다르적 사고를 다 따라갈 수 없다는 결핌감을 준다. 고다르가 극장에서 학교로 정치적 현장으로 그리고 자신의 안방으로 온 경로를 본다면 우리는 정 반대이다. 안방에서 시작하여 학교를 가고 극장을 간다. 브라운관의 세대, 컴퓨터의 세대인 우리가 영화의 스승 고다르로부터 내려온 영화적 정신을 이어가는 길은, 지금 다시 시네마테크를 향하는 길이다. 대사관의 문화원과 복제 비디오물에 의존해서 씌여질 수 밖에 없었던 시네필의 역사는 이렇게 시네마테크의 순수 민간운동으로 자국의 역사로 씌여질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 영화선진국은 우리들로서만, 그렇게만 가능하다.

자국의 영화산업에 대한 문제의식은 시네마테크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제 이 영화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10년여간 이끌어온 이들의 업적에 감사를 표하며 그 사명감을 공유해야 한다. 우리가 영화에서 얻어간 것 만큼 무엇을 보상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할 때 영화가 바른 존재감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것은 사회속의 중요한 윤리적인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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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네필이 뭔지 모르겠다.
이제 생각해 보니 영화가 뭔지도 모르겠다.
몇년동안 극장에 안간 적도 있었다.
다시 극장에 다니기 시작한게 아트선재센터, 그러니까 서울아트시네마의 전신이었던 그곳이 있을 때다.
거기에 드나들다 아트시네마의 개관도 함께하게 되었다.
나는 시간이 허락할 때면 아트시네마에 간다.
무척 보고 싶던 영화도 시간이 안 맞으면 못보고 별로 보고 싶지 않던 영화도 시간이 맞으면 그냥 본다.
나는 반찬투정을 모르는 아이처럼 아무영화나 주워먹는다, 주는대로. 
거기서 내가 한게 대체 무엇일까.
나는 어딘가 갈 곳이 필요했고
아트시네마에 갔다.
아트시네마가 이사를 했을때는 나도 따라갔다.
아트시네마는 나의 집이고 나의 밥이다.
거기서 나는 잠시나마 내가 된다.
거기서 나는 잠시나마 나를 잊는다.

by 언톨드 님(카페 서울아트시네마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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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선지/먹  2008)

내가 미대를 다니고 있다고 말하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슬쩍 놀라는 눈치를 보여주신다. 졸업을 했거나 영화와 관련된 학과를 다니거나 할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그림'이라는 걸 그린다는 것 자체에 놀라시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나를 '미대생'이라고 강조한다. 얼마 전 개강 후 한 교수님이 장래희망을 물어보시길래 나는 서슴치 않고 이렇게 답했다. "그림도 그리는 영화감독" 그러니까 나는, 미대생의 탈을 뒤집어 쓴 관객 중 하나다. 

미대생은 졸업시즌이 다가오면 논문대신 졸업작품을 제출해 졸업 여부를 평가받아야하므로, 보통은 3학년 2학기부터 졸업작품에 대한 압박을 느끼곤 한다. 나는 이제 3학년 1학기. 물론 조바심 낼 필요는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생각해두지 않으면 분명 1년 후 교수님들과 싸울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러다가 문득,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조금 오래 전에 생각났던 주제가 있었다. 그것은 '극장'.
 
영화를 좋아한다고 느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가장 후회되는 일은 소격동에 대한 사진이나 스케치를 한 장도 남겨두지 못했던 것이다. 그곳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반 이상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에게는 그곳에 대한 기록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그때는 당연한 공간이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 희귀성을 몰랐던 것일까. 그래서 가끔 웹서핑을 하다가 소격동 시절의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사진들이라도 나올라치면, 한참을 들여다보고 생각에 빠진다. 그때, 그곳을 스케치해두었으면 좋았을걸. 때문에 소격동의 아트시네마가 낙원동으로 옮기고 나서부터는 자연스레 조바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 공간은 또 어딘가로 이사가버릴지 몰라.' 소격동의 소중한 추억에 대한 기록을 고스란히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었던 나는,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상가 4층에서 새 둥지를 튼 후부터 극장의 모습을 조금씩 담는 것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작가로 활동하기보다 영화일을 본격적으로 하고싶어하는 나는, 학기 중엔 늘 그림과 영화 사이에서 갈등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다니는 대학은 비교적 보수적이어서, 우리 학교의 교수님들은 대체로 학과-그러니까 그림 그리는 것-이외에 하는 활동 자체를 그렇게 달가워하는 편이 아니셨다. 영화잡지를 만드는 일과 영화 웹진에 참여하고 있다는 일 등의 활동을 알려드려도 썩 내켜하지 않는 분들이셨다. 교수님들에게 나는 늘 영화로만 도배되어있는, 이른바 '날라리 미대생'이라고 여겨졌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교수님들이 유일하게 찬성하는 것은 '극장'을 '그리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극장은 내게 그림과 영화에 관한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주며 학과에도 충실히 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해 준 곳이다. 극장을 떠올리며 스케치를 하고, 극장을 떠올리며 채색을 입힐 때, 나는 학교를 벗어나 영화라는 판타지의 공간으로 잠시나마 여행을 할 수 있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나에게는 2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그 시간동안, 아마도 내가 극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선물은 계속해서 극장이라는 공간을 그림에 담아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게 극장은 힘겹게 찾아낸 보물과 같은 공간이고, 달콤한 연애를 꿈꾸게 해 준 곳인 동시에 수많은 영화들을 떠올리며 밤을 지새우게 해준 공간이다. 그런 극장을 위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아마도 '극장 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닐까. 그렇게해서라도 극장이 내게 주었던 '영화'라는 보물에 대한 보답이 된다면 참 좋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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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이퍼프 2009.03.10 18:0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멋집니다. 정말 시네마테크가 아니라면 그 속의 이키리아가 아니라면 그 누가 극장을 그린단 말입니까.




1. 서울아트시네마와의 만남

 

리뷰를 쓰면서 영화형식미에 대한 나의 지식이 참으로 일천하기 그지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래서 영화의 역사와 고전형식을 되짚어 보기 위해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하기 시작했고, 그리고는 이내 영화의 풍성한 형식미의 바다에 퐁당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느 한 분야의 예술영역, 특히 영화는 쉽게 가늠하기 힘든 형식과 내용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2. 시네마떼끄의 힘

 

내가 영화예술의 진한 맛에 빠르게 중독된 데에는 뭐니뭐니해도 극장이라는 목적의식적인 대중적(정치적) 공간에서 만나는 필름(원본재현)상영이 존재했기에, 즉 고전 영화의 역사적 재현 공간에, 그 순간 내가 위치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네마떼끄는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현재의 대중과 공유하는 재현과 소통의 시대적 공간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떼끄를 지키고 사수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것이며, DVD나 TV로 개인적 공간에서 해결 불가능한 것이다.

 

3. 공모제의 본질

 

그런데 불행히도 그 공간이 사라질지도 모를 위험에 처해있다(이런... 역시 어느 곳, 어느 때이건 예술은 정치와 딴 몸일 수 없으며 항상 생존을 위해 싸움이 필요하다는 역사적 교훈을 또 일깨워준다. 의회민주주의의 역사는 항상 이런 상시적 불안감을 동반한다).

 

마침내 "공모제"라는 이름을 내걸고 시네마떼끄의 주체와 운영, 즉 헤게모니를 손아귀에 쥐겠다는 영진위의 끔찍한 도발이 시작된 것이다.(공모제란 마치 정부의 하청사업 경쟁입찰 공모 하듯이 다수의 떼끄 운영자를 공모 신청 받아서 그 중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자로 골라서 운영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시민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이십 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시네마떼끄 운동에 대해 정부가 그동안 고작 몇 년 간 약 30%의 예산지원을 해왔다는 이유로 운영권을 뺐아가겠다니, 도대체 이런 해괴망측한 날강도적 발상의 전환이 어찌 가능한지 김곡 감독의 "뇌절개술"로 그들의 사유방식을 한 번 해부해 보고 싶다.

 

사실 공모제 추진에는 정치경제적인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있다. MB정권의 신자유주의의 극대화, 이윤과 효율 극대화의 논리, 선택집중의 허울 속에 담긴 국가경쟁력 강화의 논리가 문화부문에서, "모든 위탁경영제의 공모제로의 전환"이라는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예술에도 산업이윤의 경쟁논리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한마디로 이윤에 눈이 먼,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경쟁과 일등만능주의에 빠진 그들에게 예술을 이해시킨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리고 가장 공정해야 할 사법기관과 언론마저도 낙하산과 코드인사로 완전장악한 그들의 힘 앞에서 문광부의 일개 위원회 조직인 영진위가 그들의 헤게모니를 거부하고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환상은 정말 "거대한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며, 결국 이 싸움은 우리들과 그들의 한 판 힘싸움이라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때문에 공모제 철회를 이루어내면 그것은 MB정권의 정치헤게모니인 신자유주의 극대화(경쟁과 이윤 극대화 논리)에 첫 파열구를 내는 싸움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1968년 일어난  프랑스 시네마떼끄를 지켜내기 위한 "앙리 랑글루아"싸움으로 드골정권에 첫 파열구를 내어 이후 68학생운동의 지식인세력에 큰 자신감을 실어 주어 전국적 정치운동으로 확대되었던 전래가 존재한다.

 

4. 라깡의 이론과 영화운동의 충돌

 

생존의 위협이라는 절박감 앞에 우리는 현재의 시간(현실)을 인식하고 몸부림(실천) 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것은 라깡의 시니피앙(기표)의 무한 연쇄의미화 작용이라는 대타자의 인식불가능성의 이론을 머리 속에서 말끔히 지워버려야 함을, 그리하여 눈 앞에 닥친 문제(대타자)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실천을 위한 대안 창출이 요구됨을 알 수 있다.

 

실천을 위해 선행되는 대상인식 작용은 항상 시간을 분절시키고 멈추게 한다. 그러기에 생존하려면, 즉 현실을 인식하려면 라깡의 미끄러짐의 무한 의미화 연쇄작용의 시간을 정지시켜 대타자를 필요한 해당 순간에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생존을 위한 실천 앞에 라깡의 이론은 허무한 사변임을, 제논의 역설인 영원히 내 눈동자에 도달하지 않는 화살의 궤변임을, 결국 그 화살은 내 눈 앞에 도달하게 됨을 우리는 현실을 통해 알게 된다.

 

5. 씨네필 그리고 연대, 우리의 대응

 

공모제 철회 싸움은 이명박 정책 헤게모니의 담지자 영진위와 떼끄를 지키려는 씨네필 대중과의 힘 싸움이다. 그러기에 시네마떼끄 운동은 대중적 기반을 통해 유지되고 강화 될 수 있는 대중운동임을 재차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 기회를 통해 떼끄 운영진과 관객들 사이의 관계 강화로 떼끄운동의 대중적 기반이 실질적으로 형성되었으면 한다. 이를 위한 다양한 방법 연구는 앞으로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우선 기본적으로 관객의 리뷰가 함께 실리는 시네마떼끄가 발행하는 매월 소식, 리뷰지를 고려해 봄이 어떨까 싶다. 관객들은 서명운동을 계기로 '공모제 철회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씨네필 대중을 결집하는 계기를 만들고(영화학과와 수많은 영화동아리와 카페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꿈꿔 본다), 이를 바탕으로 떼끄 운영진과의 상시적 소통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마침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3백만 까지도 바라 보는 대선전으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운동의 중요성과 힘, 그리고 예술에 이윤과 경쟁논리를 불허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국민에게 각성시킬 좋은 호재를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공모제 위기에 함께 내몰린 미디액트와 독립영화계 인디스페이스는 우리와 함께 연대해 나갈 든든한 원군이다. 이번 싸움이 시네마떼끄가 대중들에게 널리 인식되고 그 기반을 점차 강화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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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의 러프 컷: 시네마테크 생각 2006.12.08 김영진 편집위원

이제 극장은 더 이상 영화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에 따라 관객도 물론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시간을 벌어주는 현재로선 거의 유일한 공간이 시네마테크지만 그에 대한 영화계의 관심은 너무 모자란다.

지난 일주일간 두 차례 지방의 시네마테크에 다녀왔다. 한 번은 부산 시네마테크의 요청으로, 박찬욱 감독이 추천한 루키노 비스콘티의 <센소>란 영화를 관객과 함께 보고 대화하는 자리의 사회를 맡게 되었다. 수요 시네클럽이란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그날 밤 자리는 무척 좋았다. 관객들은 집중력이 있었으며 박찬욱 감독의 달변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센소>를 다 같이 즐긴 포만감이 모든 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귀족 출신 비스콘티 감독의 데카당스 미학이 막 만개하기 시작할 무렵인 1950년대 초반 작품 <센소>는 멜로드라마의 격정을 귀족 계급의 의상에 포개 표현한 미장센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숨 막히는 영화였다. 여주인공을 연기한 알리다 발리의 화려한 의상이 많은 것을 보여주는 영화로, 박찬욱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여주인공이 걸치는 벨벳이 그녀의 얼굴표정만큼이나 중요한 영화였다. 그녀가 귀족 대저택의 복도를 가로지르며 문을 여닫을 때마다 전 우주가 요동치는 듯한 벅찬 열정을 실어 보여주는 이런 작품이야말로 왜 스크린에서 영화를 봐야 하는지 실감하게 해줬다. 그날 우리는 행복한 마음으로 술을 마시며 오랜만에 영화청년의 시절로 돌아간 듯한 활기를 만끽했다.

부산 시네마테크는 갈 때마다 점점 분위기가 성숙돼가는 느낌을 받는다. 특이한 것은 그곳의 관객이 젊은 층 위주가 아닌 중년층 관객이 상당수라는 것이다. 부산지역에 꽤 많은 영화과 대학생들이 왜 그곳을 자주 찾지 않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3,40대의 관객이 많은 것은 서울에서도 볼 수 없는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였다. 영화문화의 일상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부산 시네마테크는 부산영화제 인력이 상주하며 부산시의 재정지원을 받아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지만 그에 반해 여타 지방의 시네마테크는 아직 미개지나 마찬가지다.

한 달여 전 시네마테크의 위기에 관한 공청회 자리에서 만난 대전 아트시네마 강민구 대표는 대전지역의 씨네클럽 운동을 토대로 막 개관한 대전 아트시네마의 현실에 관해 우울하지만 결의에 찬 의지를 드러냈었다. 그는 대전지역의 시네마테크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높일 목적으로 1회 둔지미영화제를 열 생각이라며 필자에게 초청강사로 와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며칠 전 마침내 열린 그 영화제에 참석한 필자는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 관해 해설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날 자리에 모인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고 대체로 씨네클럽의 회원이 다수인 듯 보였다. 집중력이 있었지만 아직 이곳에서 시네마테크의 열기를 느낄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강민구 대표의 표정은 밝아보였다. 경제적으로는 적자지만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며칠 전 봉준호 감독이 내려와 마틴 스콜세지의 <레이징 불>에 관해 관객과 대화를 나눈 자리에서 그는 대중과의 소통 가능성을 느꼈다고 했다. 자신이 촬영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두 명의 직원들에게 교통비 지급을 하는 수준의 열악한 경영조건이지만 그는 관객이 더 많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날 대전에서 짧은 강의를 끝낸 후에 관객들과 잠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대체로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질문들이었다. 현재 평론의 위상에 관한 얘기도 오갔는데, 아트시네마란 공간에서 듣기엔 좀 민망한 것으로 평론이 왜 대중의 취향과는 상반되느냐는 불만이 토로됐다. 오늘날 이런 얘기는 어디서나 곧잘 들을 수 있다. 이것이 무슨 얘기인지 알아먹을 수 없게 쓰는 평론가들의 글쓰기 자질이나 별 것 아닌 알맹이를 잔뜩 힘이 들어간 문체로 가리려 드는, 통찰보다는 현학에 기대는 평론가들의 무능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별로 할 말이 없다.

그게 현재 대다수 평론가들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말이 순전히 대중의 취향을 반영하지 않는 평론의 문제라면 또 달라진다. 이는 숱한 관객들이 대중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는 영화들에 대한 비난까지 포함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왜 대중이 좋아하는 영화를 평론이 지지하지 않고 대중이 재미없어하는 영화를 평론이 지지하느냐는 말은 박스오피스 성적이 영화의 질까지 판정한다는 매우 위험한 발상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성이라는 명분 아래 많은 사람이 즐긴 영화가 곧 좋은 영화라고 여기는 발상에는 관객의 취향에 복종하고 봉사하며 때로는 아부하는 영화의 오락성과 예술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폭력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요즘에는 어디서나 이런 식의 폭력적 이분법을 목격할 수 있다. 영화는 오락이지만 예술이 될 수도 있으며 그 두 가지가 절충된 것일 수 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만을 보여주는 오락은 박스오피스의 성공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즐긴 오락 이외의 것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평론가들의 말에 적개심을 품는다. 이 적개심의 뿌리에는 그들이 보지 않으려 드는 영화들에 대한 원망이 자리 잡고 있다. 얼마 전 필름2.0 사이트의 관객평론 동영상을 봤더니 어떤 참가자는 평론이 길거리 100인에게 물어 다수의 지지를 받는 영화의 근거를 써야 하는 것이라는 기막힌 주장을 하고 있었다. 영화계에서 가장 통용되기 쉬운 거짓말은 좋은 영화가 관객을 불러 모은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관객을 불러 모으는 영화는 그들의 취향을 가장 잘 반영하며 많은 마케팅 예산을 쓴 영화라는 쪽에 가깝다. 대중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편견이거나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 아부하는 삼류 제작자의 주장일 뿐이다. 좋은 영화가 늘 관객을 불러 모으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의 지지를 받은 영화가 늘 좋은 영화인 것도 아니다.

물론 예술적 야심이 있지만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많은 감독들이 있다. 봉준호의 말에 따르면 그는 관객을 같은 목적지에 태울 수 있는 버스가 어떤 것이지 고민하고 일단 관객을 태우면 자신의 취향대로 목적지를 어떻게 바꿀지 또 고민한다고 한다. 이 비유적인 말은 관객의 취향이 장르와 스타라는 영화산업의 기본 코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람들이 부담 없이 루키노 비스콘티의 멜로드라마나 알프레드 히치콕의 서스펜스 스릴러를 보러 극장에 갔던 시대는 좋은 시대였다. 그 시대에 영화는 오락이자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가능성이 훨씬 컸다. 소수의 대작 위주로 재편된 오늘날의 극장환경에서 그 절충적 여지는 훨씬 줄어든다.

예를 들어보자. 얼마 전 개봉한 전계수 감독의 <삼거리극장>은 비평적 주목도에 비해 재앙에 가까운 흥행스코어를 기록했다. 첫 주말 이 영화는 전국 관객 1만 명을 조금 넘겼으며 이 영화가 상영된 수십 개의 스크린들은 텅텅 비었다. 개봉 다음 주에 사적으로 만난 전계수 감독은 영화의 그런 운명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오랜만의 술자리가 길어지자 그가 조금씩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보편성을 강요하는 현실이 싫다, 내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혐오하는 관객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힘들여 사운드작업을 했는데 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는 멀티플렉스 극장시설에 실망했다, 70여 개의 스크린을 연 것은 자신의 영화 성격에 비해 너무 큰 규모인 것 같다, 자그마한 규모로 개봉해 오래 관객을 기다릴 수는 없는지 답답하다, 내 영화가 그 많은 스크린에서 금방 사라질 것이 슬프다, 라는 것이 그가 이날 피력한 소회였다.

이제 극장은 더 이상 영화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에 따라 관객도 물론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흥행에 실패한 영화들은 죄인 취급을 받고 잔인하게 버려진다. 그 틈은 너무 짧다. 그 사이에 우리가 영화를 논할 대화의 기회도 사라진다. 우리는 새로 개봉되는 영화의 정보를 따라가기에도 바쁘다. 숨 가쁘고 경박한 이 영화관람 주기에서 우리가 좋은 영화를 바라보고 생각할 시간은 더욱 줄어든다. 관객들이 우리를 만족시킬 영화를 내놓고 선전해보라는 태도를 갖게 한 것은 영화계의 책임이다.

그 결과, 개봉되는 영화들의 대다수가 흥행에 실패하고 영화계는 딱 한 명의 승자만 허용하는 도박판과 비슷한 것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를 보존하고 재상영하며 좋은 과거의 영화를 오늘에 되살려 관객과 만나려 하는 전국의 시네마테크 종사자들은 한 달 월급 3, 40만 원으로 버티며 너희들이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냐는 대접을 받고 있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에서 발표한 성명서는 영화계의 반향을 그다지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영화의 존망을 언급하는 만큼이나 좋은 영화에 대한 우리의 존중심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하기엔 우리의 시간이 너무 모자란다. 그 시간을 벌어주는 현재로선 거의 유일한 공간이 시네마테크지만 그에 대한 영화계의 관심도 너무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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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다시 읽는 글. 이런 역행의 시대엔 거꾸로 순수할 정도로 치열했던 과거의 영화와 과거의 글들을 읽어야 버틸 수 있다. 월급3-40만원이라. 이런 비극을 왜 우리는 쉬쉬하며 살아야하지? 어짜피 봉사정신으로 시작한 일이니까? 억울하면 너네도 돈되는 일 좀 해 보던가? 뭐 좋다. 그러면 그러는 공무원은 얼마나 돈 되는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요즘 누구들처럼 딴지걸고 얻어터지면 값어치 올라가나?

극장에서 볼 영화가 지지리도 없다. 현재 개봉영화 극장에서 상영되는 창조적인 영화는 '24시티' 딱 한편이라고 생각한다. 겨우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와 낮술만 봤다. 그래도 독립영화는 기분은 잡치지 않는다. '벤자민 버튼..', '레볼루셔너리..' '다우트' 기타 등등 호평이 쏟아지는데 영화의 우아함이 어쩌고 하는데 솔직히 여기에 언급된 비스콘티 센소보다 더 우아한지? '다우트'같은 영화도 사실 고전에서 차용한 것 아닌가. 그것을 현대적 장치들을 차용하여 제대로 때깔까지 입히면 우리는 그 결과물에 반하는 것이다. 그것이 교본삼은 것에 대한 배려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마치 현대적인 발견 혹은 창조물인 것처럼 사람들이 흥분할 때 나는 어느센가 좀 시니컬해져 있다. 발키리에 대해서도 당일에는 흥분해서 썼지만 사실 상업영화들은 자본의 요소들을 감안하고 볼 수 밖엔 없다. 요즘의 대중영화들을 보면 체에 흔들어내고 싶은 심정이다. 과연 무엇이 남는가. 돈 빼고 나면 말이다. 매끈한 영상과 사운드라는 개념자체를 상실해서 테크니컬한 것이 마치 매끈한 것처럼 되어버린 현실은, 우리의 시지각을 고전의 진정한 스타일리쉬함에서 멀어지도록 만든다.

후. 진짜 집에서 디비디 보기 싫은데 말이다. 유일하게 필름포럼에서 회고전을 한다. 물론 시네마테크 협의회에서 주최하는 것이다. 프레스톤 스터지스와 제리 루이스 영화를 보는데 이렇게 안 웃을 수 있는 내 굳어진 페이스가 스스로 놀랍다. 나는 오히려 낮술에서 한민관을 닮은 그 펜션 사장의 술주정 때문에 나사풀려 웃었다. 머리로는 웃긴데 가슴으로 웃지를 못한다. '설리반의 여행'에서 조엘 매크리와 베로니카 레이크가 마치 줄앤짐을 떠올리게 만드는 복장을 비슷하게 하고는(물론 더 거렁뱅이) 부랑자 열차에 천신만고 끝에 탈 때 이것을 뻔히 지켜보던 아저씨가 태연하게 'amatuer'하는데서 처음 웃었을 뿐이다. 영화 감독인 조엘 메크리가 가짜 부랑행세에서 진짜 부랑자가 되는 계기는 뜻하지 않은데서 시작된다. 부랑자들을 도우려고 길거리에 돈 뿌리다가 결국 꼬리잡힌 것이다. 쇠고랑 차고 살다가 디즈니 에니메이션을 통해 해학의 깨달음을 얻는 결말은 좀 낯간지럽기도 했지만 감독이 선택한 것은, 부랑자들의 로드무비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미디다. 여기서 그의 하인이 영화초반 그에게 했던 인상적인 경고가 있는데 이 얘길 듣고 감독은 '가끔 저 친구는 무섭다'고 말한다. 누군가 옆에서 '저 친구는 책벌레죠'라며 거든다. 하인은 영화를 위해 부랑자 여행을 떠나려는 감독에게 '그런 영화는 계급화하길 즐겨하는 부자들이나 좋아할 것'이라며 실제 서민들은 영화에서 자신의 실생활을 확인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의 영화는 끊임없이 계급에 대한 문제들 건들이며 자본과 권력과 위탁한 미국사회의 실상을 유쾌한 터치로 묘사한다. 나는 스크로볼 코미디를 아직 잘 못본다. 영어가 딸리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이야기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해서 못 웃는 것인지 당시의 유행적인 기류에 전혀 발맞출수 없어서 못 웃는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내가 여유없이 영화를 대하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새학기가 시작해서인지 시네마테크가 뒤숭숭해서인지는 모르겠다만 웃음도 사람도 뜸하다. 16미리인것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화질도 안좋다. 그런데 이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뭔가 이런 불편한 느낌 그대로 뭔가 기억되는 것이 중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영화는 그것의 장르적 형식을 떠나 시대를 망각시키려 하지 않는다. 상황을 잊게 만드는 영화는 나에게 나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것은 감독만의 문제는 아니다.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하는 심리의 문제가 큰 것이다. 현재의 안위를 위해 지금을 무마하며 이기적으로 잘 살아야만 하는 것에 치중한 모습들은 추한 뒷모습을 끝내 보여주고야 만다. 시네마테크는 이미 수년전부터 성명서를 발표하며 시네마테크의 존립위기를 표명해 왔고 도움을 요청해왔는데 특정 영화인들을 제외하고는 너무 조용하다. 친구들이라는 감독들과 배우들도 제 목소리를 내주진 못한다. 솔직히 박찬욱 봉준호 같은 감독이 한번 터뜨려주면 대박나는거 아닌가. 이명세감독은 강한섭평론가와 오랜 친분도 있지 않은가. 엔젤들은 무셰트 기증해주고 다시 상업영화현장으로 돌아갔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배웠다고 말하면서 학교 재단이 상업적으로 뒤바뀌게 생겼는데 그 자양분에 대해 한 목소리를 좀 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시네마테크에 와서나 흥분할 게 아니라 말이다. 그들은 영화적 공인이질 않은가. 그들은 한국영화 국가대표가 아닌가. 관객들은 물론 각자의 공간에서 이렇게 나처럼 글을 쓰고 있지만 우리도 때가 되면 뭉쳐야 할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사랑한 자 모두 유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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