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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시네마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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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를 지키기 위해서...
by cinequanon

'시네마테크?/외부 기사'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09.06.16
    [뉴스엔] 영화인 225명, 시국선언문 발표
  2. 2009.04.19
    [시네마테크]의 공모제 전환 반대 성명서
  3. 2009.03.09
    [프레시안] 서울아트시네마, 앞으로 어떻게 될까
  4. 2009.03.03
    [네오이마주] 이제는, 우리가 칼을 갈 차례
  5. 2009.03.03
    [오마이뉴스] 옥상의 낙원'마저 빼앗아야겠습니까
  6. 2009.03.03
    [네오이마주] 오늘의 시간, 오늘의 아트시네마 ②
  7. 2009.03.03
    [네오이마주] 오늘의 시간, 오늘의 아트시네마 ①
  8. 2009.02.27
    [프레시안] 서울아트시네마, 올해는 고비를 넘겼지만...
  9. 2009.02.27
    [네오이마주] 우리들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지켜라!
  10. 2009.02.27
    [경향신문]“시네마테크는 어디로…” 영화인들 ‘분노의 토론회’

[뉴스엔 이미혜 기자]

영화인 225명이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에 대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감독 등 영화인 255명은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 민주주의의 후퇴가 심각합니다.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걱정하며 시국선언을 하고 있습니다”며 “우리 영화인들도 현 시국의 심각함에 동의하며 아래와 같은 시국선언을 발표합니다”고 밝혔다.

영화인들은 “영화는 삶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 쌓아온 소중한 민주주의가 마치 헌신짝 버려지듯 내팽개쳐지고 있습니다”며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우리가 이런 현실에 무감해지길 바라는 권력의 의도이고 그것에 순응해 가는 우리의 삶입니다”고 토로했다.

이어 영화인들은 “그런 삶 속에서의 영화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합니다”며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겸허하고 진정한 사과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반민주주의적인 행위들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다음은 시국 선언문 전문이다.

“거꾸로 흐른 시간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는 그 증거입니다”

어려운 만큼 희망을 말해야하는 영화의 의무는 이미 순진합니다.
누군가 죽었고 죽어가고 죽어 나가는 것이 무관심한 이 세상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뻔뻔함이 버겁습니다.
진실을 호도하고 소통을 차단하며 국민의 양심을 권력으로 잠재우려는 역사의 역류가 계속되는 한, 어쩌면 이 땅의 모든 영화는 거짓일지 모릅니다.

영화는 삶을 이야기 합니다.
사람다운 사람. 사람답게 사는 세상. 모두가 동등하게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삶.
하지만 오늘 우리는 사람을 위 아래로 나누어 짓누르고 허덕이는 세상에 익숙해져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좌우로 가르며 상처내고 증오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절박한 생존마저 철저히 소외시키면서 위선과 기만으로 국민을 유린하는 시대입니다.
원칙과 소신은 공허한 이상일 뿐이고
우리 모두 함께 쌓아온 소중한 민주주의가 마치 헌신짝 버려지듯 내팽개쳐지고 있습니다.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우리가 이런 현실에 무감해지길 바라는 권력의 의도이고
그것에 순응해 가는 우리의 삶입니다.

그런 삶 속에서의 영화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다시 살아 보고자 합니다.

국민을 다스리겠다는 권력의 오만한 자세가 너무나 역겹지만,
우리도 방조와 무관심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책임을 나누며
이 땅의 주인으로서 당연한 권리로 반성의 기회를 주려 합니다.

부끄러워할 줄 알고 책임질 줄 아는
각성과 쇄신의 기회를 주려 합니다.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겸허하고 진정한 사과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반민주주의적인 행위들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결코 이 땅에서 거꾸로 흐른 시간들을 잊지 않을 것이고
온 몸과 온 가슴으로 온전히 기록하여 역사에 전할 것임을
당당히 천명합니다.

지금의 우리가 훗날 우리에게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게으르지 않았음을 말할 때
떳떳할 수 있기를 약속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는, 그 증거일 것 입니다.


2009. 6. 16.

영화인 일동
강봉래, 강소영, 강원숙, 강이관, 강철우, 공미연, 김주영, 김진열, 김지현, 김경묵, 장성연, 권정삼, 박광수, 김동현, 황철민, 공수창, 구성주, 권정인, 권종관, 김경만, 김경욱, 김경진, 김경형, 김국형, 김남정, 김대승, 김도학, 김명준, 김문성, 김미현, 김선아, 김성수, 김성우, 김성욱, 김성홍, 김성훈, 김승규, 김시무, 김신태, 김연호, 김영, 김영덕, 김영로, 김영심, 김영혜, 김유성, 김윤아, 김재수, 김정권, 김정영, 김조광수, 김종현, 김지영, 김진상, 김태용, 김태은, 김태형, 김태훈, 김현석, 김현수, 김현정, 김현정, 김현정, 김현주, 김홍록, 김화범, 나현, 남태우, 노재원, 류맹철, 류승완, 류장하, 류진옥 류형진, 모성진, 모지은, 민규동, 민병훈, 박경미, 박관수, 박대영, 박미령, 박범, 박부식, 박상백, 박성경, 박성호, 박성호, 박영훈, 박유희, 박은영, 박은형, 박지성, 박지연, 박지영, 박지예, 박찬욱, 박철희, 박흥식, 박흥식, 박희성, 방은진, 변성찬, 변영주, 변재란, 봉만대, 봉준호, 부지영, 서경미, 서미성, 서은정, 서제인, 설인재, 성수아, 손소영, 손정우, 송경식, 송미선, 송태종, 송해성, 신성은, 신은실, 신찬비, 신창길, 신창환, 신철, 심광진, 심산, 심현우, 안상훈, 안영진, 안정숙, 양유정, 양종곤, 양해훈, 염찬희, 오기민, 오기현, 오상민, 오영필, 오주연, 유창서, 윤덕현, 윤성호, 윤인호, 윤종빈, 윤주형, 윤혜숙, 이경희, 이근아, 이길성, 이동은, 이동훈, 이마리오, 이미경, 이미연, 이병원, 이봉규, 이상윤, 이성은, 이수연, 이안숙, 이애자, 이영, 이용연, 이원재, 이은경, 이은경, 이정범, 이정욱, 이지선, 이지연, 이진영, 이철하, 이태윤, 이필훈, 이현명, 이혜경, 이혜란, 이혜진, 임순례, 임우정, 임찬상, 임창재, 임필성, 장준환, 장희선, 전수일, 정병각, 정서경, 정연주, 정윤철, 정재은, 정주현, 정지영, 조근식, 조민호, 조민희, 조석순애, 조영각, 조인숙, 조종국, 조창호, 주유신, 주진숙, 최광희, 최동훈, 최설, 최영진, 최용기, 최은화, 최정운, 최정인, 최주연, 최지원, 최현용, 최홍석, 추창민, 하기호, 한상범, 한지승, 허경, 허인무, 홍성은, 황동미 (가나다순/22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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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의 공모 전환에 반대한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시네마테크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영화문화 활성화에 노력해왔던 시네마테크는 지금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2002년부터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이하 ‘한시협’)와 전국의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주도적으로 추진해 온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사업비의 일부를 지원해 왔다는 것을 빌미로 관리, 통제하겠노라고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영진위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현행 지원을 ‘공개 공모’로 전환하겠다고 통보한 것이 사건의 시작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의 영상문화를 선도하고 공공문화 활동에 대한 중장기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할 영진위가 그간 어렵게 구축해 온 국내 시네마테크 활동 기반을 뒤흔들고 있는 현실에 대해 한시협은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

 

 

사건 경과

 

한시협은 지난 2월 2일(월), 2009년 3월부터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을 공모로 전환한다는 영진위의 급작스러운 통보를 받았다(한시협의 회계연도는 3월부터 익년 2월까지이다). 기존의 모든 지원사업을 공개 공모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의 강한 의지이기 때문에 영진위는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을 불가피하게 공개 공모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어서 2월 11일(수)에는 영진위로부터 2월로 2008년도 시네마테크 사업이 종료되며, 3월부터는 공개 공모 절차를 통해 업무위탁사업자를 선정을 추진할 예정이니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는 일방적인 내용의 공문이 전달되었다.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을 공개 공모로 전환하겠다는 영진위의 결정은 지난 10여 년간 영화문화의 다양성을 위해 한시협이 주도해 온 시네마테크 활동을, 경쟁과 공모라는 산업논리를 통한 관주도의 사업으로 전환하겠다는 지극히 비상식적인 발상이다. 영진위가 시네마테크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네마테크를 ‘선정’하고 ‘관리’하고 ‘주도’하겠다는 것은 주객전도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을 공개 공모로 전환하는 중대한 결정을 사전 논의과정이나 영진위 내부의 의견조율, 혹은 사업의 지원방식 변경에 대처할 유예기간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에 한시협은 ‘시네마테크의 공모전환을 반대한다’는 영화인들의 서명이 담긴 의견서를 영진위에 전달하며 영진위와 다각도로 이 문제에 대해 접촉을 시도했다. 이에 영진위는 2월 25일(수), 공모 전환의 시행을 2010년으로 미룬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2월 27일(금)에는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의 공모 전환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전문가 간담회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공모제는 한시협 활동의 법률적인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만을 남기고 정작 공모제 강행의 중심에 서 있으며 이날 간담회를 주재하기로 한 강한섭 위원장은 어이없이도 먼저 자리를 떠났다. 이날 영진위는 2008년도 국감 결과 시정 및 처리요구사항 중 ‘공모사업 수행 시 특정단체에 편중하여 기금이 지원되지 않도록 공모사업 및 위탁사업의 전반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을 공모제 전환의 유일한 근거로 제시했을 뿐으로, 지난 10여 년간 민간의 힘으로 척박한 국내 환경을 개척해 온 시네마테크 사업에 대해 아무런 정리된 입장이나 정당한 평가도 표명하지 못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중차대한 사안이 그때까지 한 번도 영진위의 의결기구인 9인위원회에서 보고안건으로조차 정식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현재 영진위가 어떤 원칙이나 철학도 없이 위원장 개인의 의지에 따라서 좌우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 사례이다. 이날 시네마테크 지원사업 공모 전환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추궁 받은 영진위는, 2010년 이후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에 대해서 내부 논의를 거쳐 결정된 사항을 통보하겠다는 내용의 세 번째 공문을 서둘러 발송했다. 공모제를 강행하고자 하는 의욕만 앞설 뿐, 지원사업에 대한 영진위의 소신은 흔적조차 사라져 허둥대는 모습에 당혹감을 넘어 참담하기까지 하다.

 

 

한시협과 국내 시네마테크 활동의 현 주소

 

한국의 시네마테크 활동은 90년대 초반부터 자생적으로 활동하던 국내의 시네클럽들이 90년대 후반에 들어서 고전영화의 필름 상영회를 진행하며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고전영화의 필름상영회가 양적, 질적인 면에서 큰 도약을 이루면서 전국에 흩어져 있는 시네마테크 단체들은 좀 더 집중적이고 지속적으로 시네마테크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안정적인 시네마테크전용관의 설립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기존에 활동하던 전국의 15개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연합하여 2002년 1월 25일 한시협을 출범했으며, 같은 해 5월 10일에는 전국 시네마테크 단체들의 숙원인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가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서 개관하였다. 그 과정에서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사업이 영화문화 다양성을 활성화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 전용관의 임대료를 포함한 사업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2002년에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한시협은 전국적인 시네마테크 단체들을 대표하면서 국내의 시네마테크 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공공기관이라는 사명감 하에 비영리 상영방식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이를 위해 한시협은 영진위의 지원금 외에도 다양한 자체 수익사업 및 후원사업을 전개하여 재원을 조달했으며, 국내외의 많은 문화단체, 관공서 등과 부단한 네트워킹 구축을 추진하는 등, 민간 비영리 방식의 한계인 재정적인 어려움과 제도적인 공백이라는 힘겨운 여건 하에서도 활동의 공공성을 유지해 왔다. 또한 시네마테크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 운영사업 외에도 한시협은 주요사업인 지역 시네마테크네트워크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여, 전국의 시네마테크 단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순회상영, 지역인력교육, 지역자립형 사업지원 등 전국 시네마테크 인프라의 구축과 확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지난 8년 간 한 해 400편이 넘는 고전, 예술, 독립영화를 상영하며 이제는 명실상부 영화인들과 영화애호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표적인 영화관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창호, 이명세, 박찬욱, 봉준호 등의 영화감독, 황정민, 유지태, 류승범, 문소리 등의 배우, 정성일, 김영진 등의 영화평론가들 또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라는 후원조직을 결성, 매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개최하며 시네마테크를 홍보하고 또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네마테크 사업에 대한 공적인 지원은 아직도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매년 조금씩 시네마테크에 대한 영진위의 지원이 증가하긴 했지만 현재 영진위의 지원이 시네마테크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0% 선에 머물고 있다. 시네마테크 상영 활동, 특히 서울아트시네마의 경우에는 비영리 상영방식인 기획전을 중심으로 연중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인 재정난을 피하기가 불가능하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 한시협은 안정적인 재원 확보를 위해 다각도로 힘쓰고 있지만 막대한 임대료, 날로 치솟는 물가와 해외 상영료, 운송료를 감당하기가 벅찬 것이 현실이다.

 

서울의 현실이 이럴진대 지역을 포함한 다른 시네마테크 단체의 경우에는 사정이 더욱 열악하다. 각 지자체와 개봉관들의 시네마테크 활동에 대한 몰이해로 높은 대관료를 주어가며 상영관들을 전전하고, 또 열악한 재정으로 전문 활동인력의 형성이 어려운 지역이 아직도 많다는 것은 현행 시네마테크 사업에 대한 재정적, 제도적인 지원의 한계를 보여주는 반증 사례이다.

 

 

시네마테크 사업의 공모제 전환과 최근 영진위의 행보에 대한 한시협의 입장

 

그런데 왜 영진위는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금까지의 지원을 중단하고 ‘공개 공모’로 전환하겠다고 통보한 것일까? 최근 언론에 오르내리는 기사에 따르면 영진위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단체지원 사업이 한국독립영화협회, 영화인회의, 제작가협회, 영화인협회 등 소수단체에 40%가 집중 지원되고 있으므로 형평성 차원에서 단체지원 사업의 추진방식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받았고, 이를 위해 "공모사업 수행시 특정 단체에 편중하여 기금이 지원되지 않도록 공모사업 및 위탁사업의 전반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영진위는 문광부의 압력이 있고 정치인들의 지적이 있었기에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을 공모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궁색한 변명일 뿐만 아니라 영화문화를 지원하는 영진위의 위상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정치적인 외압 때문에 영진위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을 ‘공개 공모’로 전환하는 결정을 했다면 이는 영진위 스스로 정치논리에 놀아나 영화문화를 저버리는 무책임한 행동을 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영진위는 정치적인 외압에 맞서 영화문화를 옹호하기 위한 정당한 주장을 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올해 영진위가 한시협에 보여준 행동과 태도들을 볼 때, 영진위는 적절한 자기 논리도 없이 정치적인 외압에 굴복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영진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서둘러 시네마테크에 대한 현행의 지원을 중단하려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네마테크의 '공모'와 관련한 공식적인 발언이 지난 2월 9일이었고, 이후 한 달 이상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러한 '공모전환'이 영진위 내부의 공식 결정인지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제까지도 영진위는 공모제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을 뿐 어떤 개선방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한시협은 2009년도 총회를 거쳐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에 대한 영진위의 공모제 전환 움직임에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힌다.

 

한시협은 최근 영진위의 이러한 일방적인 행보가 시네마테크와의 문화적 합의를 깨는 중대사안이라 판단한다. 민간 영역에서 진행해 왔던 시네마테크 사업을 영진위가 사업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형태로 보조해 왔을 뿐인데, 지금 영진위는 마치 시네마테크 사업을 그들의 자체 사업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순수 민간영역의 활동을 영진위가 사업주체가 되어 경쟁 입찰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한시협은 전국의 12개 시네마테크 단체들의 협의체로 현재 한국의 시네마테크들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대표성을 지닌 단체이다. 그런데 영진위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사업의 정당성이 공모제를 통해서 성립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난 10여 년간의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부정하는 몰염치한 태도이다.

 

영진위는 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단지 국정감사 지적 사항이라는 것만을 이유로 공모제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영진위는 지난해 위원장의 과시욕이 화를 초래하여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추진을 좌초시킨 데 이어 이제는 겨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국내의 민간 시네마테크 활동을 고사시키려고 나섰다. 한시협은 운영예산의 80% 이상을 공적자금으로 지원하는 서구의 시네마테크처럼 영진위가 지원 규모를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싶지 않다. 영진위의 문화적인 성숙도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네마테크의 지원기관으로서의 기본 역할까지는 망각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공모제를 강행하는 것은 국내의 시네마테크 활동을 10년 전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되돌리는 행위임을 영진위는 자각해야 한다.

 

이에 한시협은 문화적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며 국내 영화진흥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강한섭 위원장을 규탄하며 지금이라도 영진위가 다음과 같이 나설 것을 촉구한다.

 

   첫째, 영진위는 정치적인 외압에 스스로 굴종할 것이 아니라 비전문적인 정치인들과 관료의 일방적 주장에 맞서 시네마테크의 영화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소신 있게 관철하라!

   둘째, 영진위는 적절한 논리도,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의 공모 전환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

   셋째,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사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적, 재정적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라!

   넷째, 영진위는 지난 해 영진위의 잘못된 시도로 좌초된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서라!

 

한시협은 이와 관련해 영진위가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개선책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전국 시네마테크 단체들은 물론 영화인들, 관객들과 연대하여 공동행동을 전개할 것이다. 아울러 한시협은 시네마테크를 정치나 자본의 논리에 따라 좌지우지하려는 지금의 상황이 영화문화의 위기국면이라 생각해 올 한 해 동안 지속적으로 이러한 문제와 관련한 포럼과 대중적인 논의, 영화인들의 결속을 이뤄내는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결의한다.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광주시네마테크, 대구시네마테크,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대전시네마테크, 문화학교서울, 서울시네마테크, 시네마테크부산, 시네필전주, 영화사진진 시네마테크사업팀,

씨네오딧세이(청주), 씨네아일랜드(제주), 퀴어아카이브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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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 시네마]<14>서울아트시네마 긴급 토론회 개최

지난 토요일(2월 28일) 오후 2시 30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원래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상영작 중 배창호 감독의 추천작인 <분노의 포도>가 마지막으로 상영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분노의 포도>의 상영은 취소됐고, 대신 '서울아트시네마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최근 서울아트시네마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로부터 시네마테크 전용관 위탁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가 유예된 것을 계기로 서울아트시네마의 공식 입장을 밝히는 첫 자리가 된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를 비롯해 서울아트시네마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시네마테크협회(이하 '한시협) 김홍록 사무국장, 오승욱 감독과 영화평론가 김영진 명지대 교수, 정윤철 감독이 참석했다. 객석엔 평소 서울아트시네마를 드나들며 이번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관객들이 모였다.

▲ 왼쪽부터 영화평론가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오승욱 감독, 김성욱 프로그래머, 김홍록 사무국장, 정윤철 감독 ⓒ프레시안무비

2월 2일 영진위로부터 최초 통보를 받은 이래 토론회 전날인 27일 영진위와 간담회를 나누기까지, 김홍록 사무국장이 밝힌 서울아트시네마의 한 달은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연이어 치는 듯한 시간이었다. 하필이면 <워낭소리>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대통령과 문광부 장관이 직접 영화를 보러 행차한 때와 맞물렸다. 언론은 <워낭소리>에 관객이 몇 명이 들고 수익이 얼마가 났는지에 촉각을 세우고 제작사가 과연 영화 속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사례를 어떻게 할지 수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주제넘은 훈수를 두면서도, 정작 독립영화와 시네마테크가 처한 진짜 현실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독립영화전용관이 이미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기사가 나오기까지 했고, 시네마테크 전용관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영진위는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해 자신들의 시네마테크 사업을 일개 단체인 한시협에 위탁을 준 것으로 사고한다. 평소 서울아트시네마와 인디스페이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까지 합해서 "우리 영진위 직원은 몇 백 명"이라고 말해온 터였다. 정작 서울아트시네마를 개관하고 운영해온 것은 한시협이었다. 2002년 그간 영화상영회를 주도해온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한시협을 탄생시켰고, 이들은 아트선재센터의 지하 선재홀에 서울아트시네마를 개관했다. 영진위는 이 공간의 필요성에 동의하면서 지원을 하기로 했다. 다만 당시 영진위와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상자료원')이 민간에 이관되면서, 영상자료원과 업무과 비슷한 만큼 영상자료원이 한시협에 위탁하는 형태로 지원을 하게 된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지원이었지만 이를 위해 명목상으로는 '위탁사업'의 방식을 선택했다. 당시영상자료원은 기관의 성격상 다른 곳에 지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2005년,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상자료원 대신 영진위와 직접적으로 위탁계약을 맺게 된다. 그리고 2009년, 영진위는 명목상 위탁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지원이었던 것을, 지원이 아니라 위탁이니 자신들의 사업의 공정성을 위해 공모제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김홍록 사무국장은 "위탁계약의 형식을 그대로 둔 것이 문제의 불씨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김영진 평론가는 "지금에 있어서는 위탁이니 계약이니 지원이니 하는 것에 매달리는 것 자체가 그들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오승욱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위탁이고 공모제고 아무리 들어봐도 대체 이해가 안 된다. 대체 영진위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는지 모르겠다." 앞서 씨네토크에 참석했던 홍상수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대체 영진위에 이럴 권리가 있기나 해요?" 이런 식의 의문을 느끼는 건 서울아트시네마를 드나들던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대체 지원을 끊으면 끊는 거고 계속하면 계속하는 거지, 공모제를 한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냐며 당황하고 분노하고 있다.

2005년 서울아트시네마는 아트선재센터 측으로부터 "내부 공사를 해야겠으니 나가달라"며 쫓겨났다. 아트선재센터는 이후 내부공사를 하지도 않았고, 그 공간을 그대로 방치하다 작년 영화사 진진과 계약을 맺고 씨네코드 선재홀로 재개관했다. 그 2005년에 영진위는 그저 뒷짐만 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진위가 아니라 한시협의 사업이었고, 한시협의 문제인 이상 영진위가 나서서 공간을 해결해줄 필요도, 그럴 권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자기들의 사업이라면 그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원하기 위해 끌어온 방식이 위탁이었을 뿐 실질적으로 지원이었음을, 누구보다도 영진위가 잘 알고 있었다. 이후 서울아트시네마는 극적으로 지금의 허리우드 극장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 상처의 후유증이 컸다. 아무리 관객들이 지키고 앉아있어도, 아무리 스탭들이 발벗고 밤잠을 못 자며 서울아트시네마를 운영해도 이곳이 순식간에 없어질 가능성이란 게 존재한다는 사실에 모두들 충격을 받은 터였다. 고즈넉한 돌담길과 도서관이 있던 풍경을 좋아했던 관객들은 졸지에 돼지머릿고기의 냄새가 진동하고 '카바레 135'가 있는 새로운 풍경에 경악했다.

그래도 관객들은 적응했다. 돼지머릿고기의 냄새를 '고향의 정겨움'으로, 서울아트시네마 바로 앞에 있는 널따란 옥상을 '자유로운 마당'으로 받아들였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새 공간을 안정적인 공간으로 만들고자, 나아가 좀더 넓은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하고자 연초에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영화제를, 여름에는 씨네바캉스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감독들과 배우들이 앞다투어 나서 박찬욱 감독을 대표로 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되었다. 역시나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모임인 '시네마 엔젤'은 서울아트시네마에 필름을 기증했다. 아트선재센터 시절에도 그랬지만 허리우드 극장에 온 뒤로 프로그램은 더욱 알차고 풍성하고 다양해졌다. 모두들 악착같이 매달려 이곳을 '우리의 공간'으로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는 고전영화의 필름도 직접 사들여 아카이브 구축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공간 임대료 등에 해당하는 금액만 지원해왔던 영진위는 이제 와서 서울아트시네마를 자신들의 공간이라 우기며 한시협을 자신들의 사업에 임시 고용된 일개 하청업체로 취급한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이번 사건을 "영혼의 파괴"라 표현했다. 아울러 "이제껏 가져온 문화적 합의를 일방적으로 깬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저 고전영화 좀 보자며 그간 서울아트시네마를 아껴온 관객들을, 서울아트시네마가 없어질지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흘렸던 2005년의 악몽과 패닉에 또다시 빠뜨렸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관객서명을 시작하고 인터넷에 팀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자신에게 얼마나 특별한 공간인지, 왜 이 공간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회가 열렸던 날은 마침 故 하길종 감독이 돌아가신지 딱 3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묘소에 갔다가 토론회에 늦게 도착한 정윤철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에 서울아트시네마가 있었다면 하길종 감독이 덜 외로웠을 것이다." 정윤철 감독은 자신을 비롯한 모든 영화인들이 이곳에서는 그저 한 사람의 관객일 뿐이라고 했다. 영화를 하다 안 풀리거나 시나리오를 쓰다가 막히면 이곳에 와서 다시 힘을 얻고 간다고 했다. "저렇게 오래된 옛날영화보다 못 만들면 어떡하겠어?"

일부에서는 서울아트시네마 공모제를 비롯한 최근 영진위의 일련의 정책들이 보수진영의 흔들기라고 말한다. 문화와 예술을 돈벌이로만, 산업으로만 사고하는 이들이 영화판의 주도권을 탈취하려 하는 와중 시네마테크에도 손을 뻗쳤다는 것이다. 정윤철 감독은 "그럴 수도 있겠지. 정권이 바뀌면서 그런 식의 재분배와 구조조정이 있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시네마테크란 공간은 좌든 우든, 그런 것과 상관없이 무엇보다도 안정성이 중요한 공간이다. 감독들이 영화를 한 편도 못 만들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제발 이곳만은 지켜야 한다."라고 잘라 말한다. 이곳이 있는 한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의 입에서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네마테크는 무엇보다 안정성이 중요한 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영진위는 이 공간의 존립 자체를 흔들어 버렸다.

토론회에 참석한 관객들은 저마다 "이 상황에서 내가 대체 무엇을 하면 서울아트시네마에 도움이 될지" 간절한 질문을 던졌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답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주인은 영진위가 아니라 관객이기 때문이다." 장-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 인생>이 새삼 떠오르는 순간이다.

/김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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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의 관심사였던 시네마테크 위탁사업의 공모제 전환이 1년 뒤로 연기되었다. 천만다행인 일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다. 표면에 내세운 시행 연기의 이유가 ‘시기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난 대목이다. 그러니까 여전히 영진위 임의로 시네마테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변화가 없음을 의미하고, 공모제로의 전환을 기정사실화하겠다는 방침을 명문화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애초부터 공포탄을 쏘겠다는 심산이었는지 모른다. 원래 첫발은 공포탄이고 실탄 사격은 두 번째부터 아니던가. 언제라도 지원을 끊을 수 있으니 딴 맘 품지 말고 알아서 기라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공모제라는 단어 하나만 던져놓았을 뿐인데, 서울아트시네마와 친구들 영화제를 뒤흔들어놓을 만큼 파급력이 컸다는 점만 놓고 보면 문화체육관광부나 영진위 입장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자평할 수 도 있겠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이 땅의 행정가들이 문화를 바라보는 태도와 소양의 천박함을 확인할 수 있었고, 문화예술마저 자본의 발아래 둘 수 있다는 놀라운 발상의 결과물을 목도했다. 또한 다수의 언론 매체가 보여준 무신경한 반응은 철저하게 네티즌의 기호에 의존하고 있는 영화 담론의 현주소를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했다.(물론 애초부터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서울아트시네마와 관객들은 침착하게 그러나 열정적으로 대응하였다. 시네마테크를 지켜내는 힘은 관객으로부터 나올 수 있음을 입증하였고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결집된 힘을 저들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한편 이번 사태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재정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전체 예산의 30%에 불과하지만 영진위의 위탁사업지원금이 없으면 시네마테크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 재정자립의 문제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는 (약으로 말하자면) 비타민과 당위정이 골고루 들어있는 처방전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는 관객의 힘이 비타민이라면 재정자립을 위한 안정적 재원확보는 당위정에 해당할 것이다. 제 아무리 애정 가득한 관객의 지원이 차고 넘친다 해도 그것만으로 버틸 수는 없는 법. 누구보다 극장 측이 더 많이 고민하고 지혜를 짜내고 있을 것일 터이지만, 시네마테크 공모제전환 반대 서명운동과는 별개로 후원회원을 배가시키는 데 힘써야 할 것이고, 언론과의 유기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우호적 지원군을 확보하는 일에도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며 선량한 후원자를 찾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각계각층을 망라한 실질적인 도움과 지원이 절실한 때라는 얘기다.

어느 정치인의 말대로, 기나긴 싸움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따름이다. 지난 몇 주간이 목검으로 상대와 합을 맞춰보며 서로의 내공을 시험해본 시간이었다면 바야흐로 진검승부의 시간이 도래하였다. 진검승부를 앞둔 무사에게 녹슨 칼은 무용지물일 터. 칼은 무사만 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몇몇 언론과 매체만이 시네마테크문제를 공론화하며 칼끝을 세웠다면, 이제야말로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이 나서서 칼을 갈 차례다.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합심하여 갈아 놓은 칼을 든 장수가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그런 점에서 이번 주말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램인 ‘필름라이브러리 무료상영회’는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니 이번 주말, 서울아트시네마로 달려가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관객회원에도 가입하자. Now, Were going to Seoul Art Cinema!

 

 

2009.03.03
백건영(영화평론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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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공모 전환, 오늘도 내일도 안 됩니다
   허진무 (riverrun88)
  
서울아트시네마의 풍경. 종로 3가에 있는 낙원상가 4층으로 가면 탁 트인 옥상이 나온다. 거기에 작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다.
ⓒ 허진무

'서울아트시네마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얼이 빠졌다. 그곳이 사라진다는 상상을 하니까 심장이 가슴에서 튀어나와 땅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도록 망연했다.

 

얘기인즉슨, 영화진흥위원회가 시네마테크 지원 사업 방식을 공모제로 전환한다고 일방 통보했다는 거였다. 날벼락 통보였고 대화는 없었다. 영진위 시네마테크 지원금이 예산의 30%를 점하는 서울아트시네마다. 지원금은 임대료 등 필수적인 부분에 쓴다. 때문에 만약 공모제에서 탈락하게 되면 당장 극장의 목숨이 위협을 당한다. 서울아트시네마는 민간 주도로 이어온 극장이다. 이제 와 영진위는 고작 30%의 예산지원이란 명목으로 서울아트시네마의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반발의 아우성이 메아리치자 영진위는 25일 "올해는 공모제 전환을 철회하고 내년으로 연기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떨어지는 칼날을 겨우 피하긴 했지만 문제가 깨끗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영진위의 독립영화 지원비 폐지 사건과 맞물려 영화계 또한 자본의 불도저로 밀어버리려는 심산이 아닌지 크게 걱정이 된다. 더욱이 하필 서울아트시네마라니! 절대로 안 된다.

 

서울아트시네마를 빼고 어찌 종로를 논할까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중, 역시 '친구들'의 하나인 봉준호 감독의 헌사.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낙원이다.
ⓒ 허진무

세상에는 많은 극장이 있지만 서울아트시네마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극장이다. 종로에 관한 거의 모든 추억은 서울아트시네마로 통한다. 왜냐하면 종로에 갈 일이 있으면 꼭 서울아트시네마도 가기 때문이다.

 

종로의 굽이지고 낡은 골목들, 젖은 아스팔트와 억척스런 사람들의 모습들이 나는 정겹다. 종로 3가에 들어서면, 벌써부터 멀리 낙원상가의 큼직한 건물이 보인다. 종로 거리를 거닐고서 낙원상가를 비켜갈 수는 없다.

 

낙원상가 밑에는 1500원에 우거지 국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 돈은 궁한데 배는 고프고, 영화도 보고 싶을 때 나는 영화값을 남기기 위해 여기서 밥을 먹었다.

 

허름하고 비좁은 곳에서 복닥이며 먹는 국밥 맛은 특별했다. 뜨끈한 국물로 배를 채우고 낙원상가 4층 옥상의 낙원으로 어슬렁 가는 것이다. 옥상에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다. 나는 낙원이라고 했다. 정말이지 진짜 낙원이다.

 

괴상하게도 상가 옥상에 있다는 시네마테크를 처음 찾은 계기는 순전한 호기심이었다. 고전 영화와 예술·실험 영화들을 틀어준다는 극장이 과연 어떨까 궁금했다. 거기에는 공룡 영화들에 질려버린 감성도 영향을 끼쳤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본 첫 번째 영화는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모퉁이 가게>였다. 듣도 보도 못한 감독에다 듣도 보도 못한 1940년산 영화다. 그러나 나는 필름이 돌아가는 동안 혼이 빠졌다. 영화의 나이만 따지자면 영락없는 노인 영화라고 할 테지만 60년이 넘는 나이 차가 있는 청년의 눈을 빼앗았다. 벌써 고전이란 딱지가 붙여진 흑백 필름이 여전히 가슴을 울리고 눈물을 닦아주니 자리에 주저앉아 꼼짝도 못했다.

 

자본에 패한 영화들에 위안받는 곳

 

  
서울아트시네마는 좋은 영화라면 어떤 영화든 가리지 앟는다. 이제 멀티플렉스에서는 틀어주지 않는 필름이 시네마테크에서 묵묵히 돌아가고 있다.
ⓒ 허진무

그것은 죽비였다. 순간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대형 극장만을 드나들며 영화적 지배를 당했다는 걸 알았다. 조금 다른 영화를 보겠다는 상상력을 상실했었다. 대한민국의 영화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삼총사가 지배하고 멀티플렉스는 거대자본 영화가 지배하고 있다.

 

돈벌이가 되는 이른바 공룡 영화들이 상영관을 점령하고 싸움을 벌이는 통에, 소수자의 영화는 금방 간판을 내리고 변방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어느덧 영화가 산업의 주판으로 계산되기 시작한 이래 일어나는 비극이다. 그런 자본의 전쟁에서 패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변방의 주막이 바로 시네마테크다.

 

전국을 통틀어 딱 여덟 개 있는 시네마테크는 비영리 영화관이다. 돈벌이를 위한 극장이 아니다. 당최 돈하고는 서먹한 영화만 틀어주니 영화로 장사하려다가는 진작 망했을 테다. 시네마테크는 오롯이 영화와 관객을 위하여 있다.

 

나는 시네마테크의 다른 무엇보다 분위기를 사랑한다. 정말이지 영화가 좋아 죽겠다는 이들이 내쉬고 들이마시는 공기가 가득이다. 재미난 영화를 좋아하는 데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하이힐을 신은 여대생부터 두둑한 점퍼를 입은 할아버지까지 누구나 영화가 좋아 시네마테크를 찾는다.

 

스크린을 바라볼 때면 연인을 바라보듯 그윽하고 진지하다. 집에서 서울아트시네마까지는 지하철과 버스로 두 시간이 걸리지만 그곳의 공기가 그리워 어쩔 도리가 없다. 최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는 중에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열대병>을 보러 갔었다. 퀴어 멜로와 신화를 끌어들여 실험하는 태국산 영화지만 빈틈없이 자리가 꽉 들어찼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았던 남자가 혀를 내두르며 혼자 중얼거리는 거였다.

 

"이야, 영화 좋아하는 사람 진짜 많구나."

 

당신도, 시네마테크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서울아트시네마 벽 한켠에 걸린 '친구들'의 사진. 임권택, 봉준호, 박찬욱, 배창호, 홍상수 같은 감독들부터 안성기, 권해효, 하승우, 류승범 같은 배우들까지 여러 사진이 붙어 있다.
ⓒ 허진무

시네마테크의 정신을 한눈에 보여주는 특별한 풍경이 있다. 시네마테크의 관객들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끝나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극장도 불을 켜지 않는다. 화면에는 감독부터 말단 스태프까지 이름이 꼬박 실린 엔딩 크레딧이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다.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극장에는 불이 켜지고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끔 짤막한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다. 영화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경의와 존중이다. 처음에 이 낯선 습성과 마주했을 때 감동으로 몸이 저릿했다. 상업적 수단으로, 혹은 즉각적인 오락으로만 여기는 요즘 세태에서 드문 풍경이다.

 

류승완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요즘 사람들이 영화에 대한 연정과 예의를 잃어가고 있다고 한탄한 적이 있었다. 영화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일은 이제 와 거의 국가적 의식이 된 시대라 그럴 테다. 하지만 아직도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도 영화를 친구로서 사귀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친구로서 맞이하고자 하는 영화관이 있다. 류승완부터 안성기까지 여러 감독들과 배우들도 다투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되는 까닭이다.

 

새로운 영화와 만나는 순간은 새로운 친구와 만나듯 언제나 수줍다. 좋은 영화라면 옛날의 영화든 오늘날의 영화든 출신성분을 가리지 않고 틀어주는 극장이다. 나는 시네마테크에서 많은 영화들과 친구가 되어 가까워질 수 있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소수자의 극장이지만 동시에 다양성의 극장이다.

 

자본의 무차별 진압으로 대중의 관심 바깥으로 밀려난 영화들의 마지막 거점이다. 예비 감독과 예비 배우가 학습하는 교육의 현장이며 영화의 역사가 살아서 관객과 만나는 공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의 낙원이다. 씨앗은 물과 볕을 조심하며 오래 돌봐야 비로소 싹이 트고 예쁜 꽃도 피는 법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영화를 사고파는 데 열중한다면 결국 숲 전체가 몽땅 시들고 말 테다. '제2의 워낭소리'도 씨가 마른다. 내일은 다들 서울아트시네마로 가서 좋은 영화도 보고 낙원상가 아래 천 원짜리 떡볶이도 먹어 보길 권한다.

 

이다음부터는 종로의 모든 거리가 결국 서울아트시네마로 통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영화를 사랑한다면 서울아트시네마도 사랑하지 않을 리 없다. 가히 시네마테크의 멸망은 사랑의 멸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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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나리오 작가와 어느 cf 감독과 어느 미대생으로부터의 이야기

 

2008년 2월 28일 현재 아트시네마를 지키는 서명운동은 1000명 목표에 약 500명 정도로 모였다. 네오이마주의 강민영 스탭은 인터넷에서 공용 티스토리 블로그가 만들어서 운영 중이고, 서울아트시네마 공식 카페에서 인터넷으로도 서명에 관한 서류를 배포하면서 접수를 받고 있다. 서명을 하는 인원이 약 1000명으로 잡은 것은 아트시네마가 적지만 고유한 인원으로 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아트시네마에서는 사활에 도움을 주는 1천명이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몽상가들>의 매튜는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인지 모르니 줄기차게 봐야 한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영화에서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는 구별짓기 어렵다. 저마다의 생성배경과 창작의 배경이 다른 만큼 영화의 내적인 면 이외에도 외적인 맥락까지 더해서 저마다의 의미는 있는 셈이다. 영화 자체의 순수성을 지향하는 면모와는 다르게,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이 제시했던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에 꼭 따르지 않더라도 분명 영화들은 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영화는 단지 걸려있는 것, 장소를 제공하는 법만이 아니라 그것을 상영하는 시간을 공유하는 시간예술이기 때문이다.

아트시네마의 사활에 대한 논의를 한 토요일 저녁, 종로를 벗어나 홍대의 한 카페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과거 모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던 한 작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그 영화는 상업적으로나 작품성 측면으로나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그 영화를 토대로 주인공들은 영화계에서 입지를 단단히 다질 수 있었던 전력을 지녔다. 그 작가는 그 시나리오를 내놓고는 영화판에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그러고서는 곧장 유학을 떠나 미디어아트계통으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몇명의 학생들이 "선생님은 영화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작가는 "아니. 나는 영화를 사랑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몇 번의 기획회의를 거치고 난 뒤 자신의 영화가 '소재만 바뀌었을 뿐 구성은 동일한' 영화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겪으며 심적으로 난항을 겪었으며, 자신이 미디어아트에 손대는 것은 영화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라고 명명했다.

물론 영화를 두고 '타인의 자본으로 만드는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실험성과 도전성, 혹은 과감한 영상적인 시도는 무책임하다. 영화보다는 미디어아트가 보다 예술의 계통에 더 가깝고, 그러므로 창작에 있어 더 자유로운 측면은 있다. 그러나 시사하는 바는 비도전적인 영화를 통해서 맛없는 영화를 만드나마 맛있는 영화를 위해서 보다 책임을 질 만큼의 능력을 기르는 측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수명이 긴 영화를 보는 건 영화가 가진 원형적인 맥락을 이어가는 것으로 유효하다. 고전이 문고판으로 지속적인 제본을 해오는 맥락과 클래식 음악도 지속적으로 변주를 해가며 오늘의 음악에 영향을 주는 것 까지 마찬가지이다.

모 cf 감독 출신 영화감독은 영화계에서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cf 출신은 영화를 제대로 못만든다는 얘기였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 무슨 말일까. 미셸 공드리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영화적인 문법이 있고 문법을 지킨 영화와 문법을 지키지 않는 영화가 있다. 과거 미국의 20년대 30년대 포르노 영화는 영화취급도 받지 못했지만 약 90년대에 들어와서는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과거 미국의 실내 건축 연구라는 테마로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요컨대 제대로 만드는 관점이란 것의 절대성에 관해서는 의문을 표하고 싶다. 영화를 보고 '제대로 만든 영화'라는 것은 자기가 가진 영화적인 눈을 재확인해가는 과정으로 보는 게 더 나은 말이다.

도전적인 발언이나, '모든 영화는 평등하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 관해서는 평가적인 가치가 분명히 존재하며, 그것은 영화를 두고 평론을 하든 영화를 자료로 삼든 영화를 만들어가든 간의 과정에서 평가에 의한 담론이 필요하다. 그것은 내러티브적인 맥락 뿐만이 아니다. 영상에 의한 효과와 영상에 대한 촬영과 편집 등이 모두 유효하다. 그것을 배우려면 영화과에 가야하는 것일까. 영화에 관심이 생긴 대중은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이명세 감독의 <형사-Duelist>와 을 보고나서 그 영상이 가리키는 방향을 어렴풋하게 느낀 어느 미대생의 호기심은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서울 아트시네마는 단순한 상영관의 수준을 넘어서 교육효과와 담론을 낳는 효과도 자아내고 있다. 그 규모는 낙원상가 4층의 규모만이 아니라 보다 큰 커뮤니티적인 맥락으로 승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영화와 영화관이 돈 앞에 무력해지는 것은 영화가 '자본을 두고 하는 예술'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cf 감독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에 당장 보이는 것이 아니면 돈을 왜 쓰는 줄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제품 cf를 찍기 위해 모델과 모델이 입을 옷과 무대 셋팅과 조명과 카메라 등과 관련한 장비만 있으면 되지, 그것을 해내기 위한 제반 환경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설명이다. 칸느 국제광고제에서 수상한 작품 치고 한국처럼 스타 캐스팅으로 미소와 제스츄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짠! 하고 나타나는 형태는 없다.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멀티플렉스의 극장에서는 "영화 많이 사랑해주시구요, 많이 보러와주세요."라는 말을 하는 배우가 아트시네마의 상영관에서는 관객과 진지하게 문답을 주고 받는다. 아트시네마의 규모가 면밀한 대화를 하기에는 큰 편이므로 질문과 답변의 형식을 취하기는 하지만, 그것의 문답은 활자로 기록되고 발간되는 등의 영향력을 갖는다. 문화는 당장의 효용을 산출해내지는 않으나, 시대의 혈류를 타고 구석구석 양분을 전달해준다. 문화도시는 '문화'라는 말을 표면적으로 내걸지 않는다. 광장과 담론과 창작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역사가 쌓여 형성이 되는 공간이다.

앞으로의 서울은 고층건물들이 들어설 공간이 된다. 약 2100년이 되면 세계의 마천루의 중심지가 아시아로 옮겨온다고 한다. 마천루? 좋다. 마천루의 끝에서 바라볼 서울은 어떤 도시일까. 문화도시였으면 좋겠다. '문화'라는 활자를 현수막에 내건 도시가 아니라, 진정어린 문화도시로 살기도 좋고 살아가는 이유도 매순간 찾아낼 수 있는 도시이길 바란다. 그리고 낙원상가의 4층, 아트시네마의 영화에서 2000년대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게 더 낫겠다. 전통과 현대의 괴리가 아닌 공존을 보장하려면 말이다.





 

* 티스토리 블로그 : http://notrecinema.tistory.com/
* 아트시네마 카페 서명 다운로드 :
http://cafe.naver.com/seoulartcinema.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413

 

2009.03.01
서유경(편집스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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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의 시간도 거꾸로 가지 않는다.


최근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상영관에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상영되고 광장에서는 오늘의 한국이 지난 세월로 되돌아간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시간은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 누구도 시간을 건드릴 수는 없다. 앞으로의 이야기를 끌어감에 있어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드러나는 시간성을 잠시 밝혀두어야겠다. 영화에서는 '시간'을 소재로 했으나 소재로의 접근 방법은 바로 인간의 삶을 낯설게 보는 행위다.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아기 벤자민에서부터 아기의 모습으로 죽어간 노인 벤자민을 통해 이 영화의 서사와 사건은 유발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꾸로 가는 것은 세포의 활동이고 그것은 벤자민을 특이점으로 남겨둔다.

흥미로운 것은 벤자민의 시간 역시 여주인공 데이지를 비롯한 여타 인간들의 시간과 본질적으로는 다를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의 몸은 시간에 따라 변해간다. 노인의 세포에서 젊은이의 세포로의 '귀화'라기보다는 '성장'에 가깝다. 또한 삶의 생애까지 선형적인 방식에 의해 '나이듦'에 따라 죽는데, 벤자민의 경우에는 그것을 다룰 개념이 '나이듦'과 '더 이상 어려질 수 없음'의 경계에서 죽음을 다룬다는 것에서 차이점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벤자민의 특이점의 의미가 전반에 드러난다. 벤자민은 보통의 인간이라면 낯설지 않을 환경을 낯설게 관찰하는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속도감에 있어서도 차이가 나는데 영화에서 벤자민의 유년기와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에서의 영화 내 시간의 속도감의 차이는 확연히 두드러진다. 유년기에는 같은 집에 사는 노인들의 일상과 죽음에 많은 포커스가 맞춰진다. 시간적인 흐름과 공간적인 스케일 면에서 가장 협소하고 밋밋할 수 있는 시기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느린 속도로 진행된다. 이후 나이가 들면서 점차 가속도가 붙는데, 그것은 시간을 잘라내는 편집으로 점프를 하는 수준으로 된다. 벤자민의 유년에 관해 관심이 많다기 보다는 낯선 상황에 가장 낯설음으로 보는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이지는 벤자민에게 말한다. "당신이 마흔 아홉, 내가 마흔 셋. 이제 우리는 딱 맞는 나이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격정적이고 아름답게 묘사되는데, 그것은 마치 서로 기울기가 대칭관계인 두 직선과도 같다. 단 교점이 생성되는 까닭은 각개 직선이 서로에게서 영향을 받아 방향을 뒤틀지 않는 개별적인 성질을 지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을 거스르는 상상력을 보여주었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실제로 시간성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같은 시간 속에서 그것을 낯설게 볼 수 있는 특이점을 잡고 삶에 관해 매 시기마다의 화두를 던진다. 이 시기에 왜 이것을 하지 않았을까, 혹은 나는 지난 시간을 왜 그렇게 보냈을까. 그리고 이러한 질문은 각 개인의 삶에 관해 관심을 갖게 한다. 벤자민이 러시아의 숙박소에서 만났던 부인이 지난 날 해협 횡단에 실패했고, 이후 해협 횡단에 성공한 것 처럼.

그렇다면 이제 시간성 자체의 속성에 관해 절대시간과 상대시간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겠다. 절대시간 자체는 건드릴 수 없다. 이 시간 속에서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물음이 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서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이 면밀히 엮인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왜 살아가고 있을 지에 관한 것을 생각하면 그것들이 묶여내 진행되는 것이 오늘에 관한 상대시간일 것이다. 오늘의 시간, 곧 나는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관해 물어보기 위해서는 '어떤'이라는 속성을 설명해낼 수 있어야 겠다.

 



 

2. 나는 왜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지각쟁이 유경씨의 하루.

2월 28일, 토요일. 쾌청한 날이었으며 봄의 시작을 알리는 듯 햇살이 나긋했다. 지난 추운 계절 속에서 폐간된 영화잡지를 읽지 못하는 날이며, 오후 2시 반 무렵에는 서울 아트시네마에서는 아트시네마의 앞으로 나아갈 길에 관한 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광화문으로 향하는 501번 버스가 한강대교를 원활히 지나지 못하고 교통이 꽉 막힌 상태로 대교에서만 10여분을 보낸 토요일이기도 하다. 곧 이을 오후 여섯시가 되면 국민 오락프로그램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의 재미있고 친근한 <무한도전>이 방영된다. 본방송으로도 보지 못한다면 인터넷 상영으로라도 볼 것이다. 나의 토요일은 이렇듯 별다를 것이 없지만, 그러나 나는 왜 이러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늘어지는 설명일지는 모른다만은 짚어보겠다. 지난 집회시기를 지나 광화문과 시청 일대에는 전경들이 토요일마다 나온다. 언론재단 건물 앞 버스정류장 근처와 청계광장 주변에는 전경버스가 서 있고 그로 인해 버스는 정류장에서 정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도로에서 정차를 한다. 버스가 서고 멈추는 범주에 따라 도로는 진행됐다가 멈추는 파동을 탄다. 그 탓에 광화문과 청계광장에서 북쪽 방향으로는 차가 막히는 기색이 없으나 그 남쪽으로는 도로 교통이 혼잡스럽다. 서울역이나 용산, 혹은 그 이남의 한강대교, 상도터널로 이어지는 동작구와 관악구의 현장에서는 왜이리 차가 막히는지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라거나 '토요일 오후라서 그래'라며 애꿎은 시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평소의 거의 2배가 되는 시간동안 버스에 있어야 했고 아트시네마로 함께 가기로 한 친구를 먼저 보내야 했다. <무한도전>의 멤버들 정신감정을 하기로 하는 예고편을 보면서 '이야, 재밌겠는데?'라는 기대감으로 혼자 느긋하게 식사를 한 다음 청계천 변 광교를 걸었고, 동아일보사의 현판에 걸린 '기습 공격을 당한 전여옥 의원'의 기사가 신문 1면에 걸린 것을 봤다. 왼쪽 눈이 깊숙하게 다친 전 의원의 사진을 유심하게 본 뒤 다시금 청계천 변을 통해 하늘을 바라본다. 우울한 생각을 하기에는, 오늘의 이 시간이 참으로 아깝지 않느냐는 생각.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컴퓨터를 꺼낸 것이다. 오늘의 시간을 서술하기에는 매우 많은 사연들이 있으나 그 중 가장 큰 핵심요약어는 고통이다.

2007년의 3월의 학교의 저널에서 한 학생 기자가 베를린으로 건너가 송두율 교수를 인터뷰했다. (http://www.snujn.com/article.php?id=1405 ) 그는 지난 대선을 두고 "일단 급하다고 짠 바닷물을 마신 격"이라고 표현했다. 그 시간은 오늘로 대치가 됐고 그것은 "도덕이 밥 먹여주냐"는 논리는 "도덕이 있어야 밥도 제대로 먹는다"는 말을 되새기게 해준다. 방송국 파업에서도 마찬가지다. 501번 버스가 지나온 용산 일대에서도 드러난다. 큼직한 유리가 몸으로 파고들어오는 듯한 아픔이다. 2008년 2월은 '기습'으로 시작해 '기습'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아트시네마가 순식간에 '세입자'의 현실로 마주하고 2월 26일에는 우황청심환 한 알이 국회의 정의보다 앞서 미디어 법안을 상정하고야 말았다. 2월은 끝나도 시간은 끝나지 않는다.

시간은 끝나지도 않고 재생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고통은 재생된다. 오늘날 방송국의 현실에 떨떠름해 하고 대학간 순위 경쟁과 앞으로 부닥칠 수많은 것들에 관해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나는 곧 이어 <무한도전>을 보러 갈 것 이다. 분명 나는 누가 제일 못났나, 누가 제일 덜떨어졌나를 보며 박장대소할 것이다. 내일은 <패밀리가 떴다>를 보며 잠자리 '순위'를 매기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언제 어떤 불행이 올 지 예측하지 못할 두려움을 <1박 2일>의 복불복 게임을 통해 내 일이 아닌양 생각하게 될 것이다. 가장 못난 사람이 모든 걸 감수하는 것 자체로 웃는 것이 코미디로 통하는 속에서 오늘을 보낸다. 웃게 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오늘을 이렇게 보낸 까닭을 유기적으로 이어보려 했으나, 이것이 모두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글을 마치기로 한다. 곧 이어 아트시네마 포럼도 끝난다. '아트시네마의 친구들 데일리'를 통해 '어떻게'에 관한 소식들이 따끈따끈하게 전해질 것이다. (계속)

 

 

2009.02.28
서유경(편집스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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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 시네마] 영진위, 시네마테크 전용관 공모제 내년으로 연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오늘(25일) "올해는 공모제 전환을 철회한다. 시기상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내년으로 연기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서울아트시네마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그간 비공식적인 경로로 공모제 전환이 내년으로 연기될 것이라는 정보는 있었지만, 영진위가 공식적으로 입장을 취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이로써 서울아트시네마는 공모제 전환 위기를 일단 내년으로 넘기긴 했지만, 서울아트시네마뿐 아니라 그간 지정위탁으로 운영됐던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미디액트 등도 모두 내년에 공모제로 전환될 예정이어서 논란은 여전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영진위 영상문화조성팀 김종호 팀장은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올해 초 국정감사에서 특정단체에 지정위탁을 하는 것에 대한 지적과 함께 공모제로의 전환을 요구받았다. 공모제 역시 개선방향을 찾던 와중 나온 해결책이다. 일단 내년에 공모제가 시행되기는 하겠지만 그 전에 서울아트시네마나 다른 위탁업체들과도 충분한 토론과 합의를 진행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다양한 의견들에 귀를 기울이고 보다 합리적인 대안들을 모색해 나가겠다는 것. 공모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행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당사자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겠다"고만 밝혔다.

▲ 서울아트시네마는 일단 올해 공모제 위기는 넘겼지만, 서울아트시네마를 비롯한 3개 공간이 내년 공모제로 전환될 예정이어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프레시안

그간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에 지원해온 금액은 매년 1억 5천 가량으로, 이는 서울아트시네마의 1년 전체 예산 중 30% 가량에 해당한다. 이 금액은 대부분 건물 및 장비 임대료 등 극장 운영에 필수적인 금액에 충당되고 있어 시네마테크를 '흔드는' 데에는 무리가 없는 금액이다. 영진위 관계자 중 한 명은 오히려 "30%라곤 해도 실질적으로 그보다 더 큰 금액이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수익이나 대관료 수익도 기본적으로 그 30%가 있기에 가능한 것 아니냐"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 민간에서 비영리로 운영하던 서울아트시네마에 영진위가 일부 지원비를 지원했다는 명목으로 운영 주체를 교체하려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에 대해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시네마테크 사업에 공모제를 도입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

영진위의 정책과 관련해 영화평론가인 김영진 명지대 교수는 "한마디로 넌센스다. 문화학교서울 시절부터 시네마테크를 해온 역사성과 대표성, 그리고 서울아트시네마를 계속 운영해온 전문성이 있는데, 공모제를 한다는 건 이 모든 걸 모두 무시하겠다는 처사 아니냐. 누구보다도 이를 잘 알 만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식의 발상을 한 건지 모르겠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대체할 기관도 없을 뿐 아니라, 만에 하나라도 일반 극장에서 공모에 응했을 경우 모양새가 우스워지지 않느냐는 것. 김영진 교수는 "문화관광부에서 그런 식을 종용해도 영진위가 나서서 이를 막아도 부족할 판이다. 그런데 왜 알아서 먼저 기는가. 시네마테크나 독립영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국회의원들이 하는 물정 모르는 소리에 왜 영진위가 부화뇌동을 하는가"라며 강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또한 그는 "이 사태에 영화계가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도 문제다. 돈이 나올 데가 영진위밖에 없어서 다들 영진위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인가"라며 영화계 전반을 꼬집기도 했다.

문화 행정에 있어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원칙이 필수적인 자세인 만큼, 현 영진위의 정책방향이 '열악한 지원에 지나친 간섭'으로 흐르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

/김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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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즈음하여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는 시네마테크사업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를 꺼낸 바 있다. 중차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안이 첨예하고 민감한데다가, 사실 확인이 모호한 상황에서 먼저 움직이는 것이 이롭지 않다는 판단이 섰기에 이 내용은 의도적으로 기사화하지 않았다. 그런데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다름 아닌 시네마테크 전용관 위탁사업을 공모제로 변경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쉽게 설명하면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는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와 미디어 센터 ‘미디액트’와 더불어 영화진흥위원회의 위탁사업 수행기관 중 하나이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공간 임대료를 비롯한 기자재 구입비와 운영비는 이처럼 정부지원금으로 조달되어왔고 이것이 서울아트시네마 전체 운영비의 30%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위탁이 아닌 공모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계약 갱신을 불과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진위나 문화관광체육부가 출연한 기금으로 설립 운영되어온 기관이 아니다. 순수하게 민간이 주도하여 만들고 이어져온 민간 기관이라는 것. 다만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위탁사업의 형식을 통해 운영자금의 일부를 지원해왔을 뿐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민간이 시작해 힘들게 꾸려온 사업에 정부는 단지 위탁이라는 미명하에 운영비 일부를 지원해주었다는 것인데, 그것을 빌미로 이제 와서 그 사업의 주체를 자기들이 결정하겠다는 것이 논점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뒤에 거듭 말하겠지만, 자칫 영진위가 시도하는 공모제가 시네마테크전용관의 주체를 선정하기 위한 꽤나 정당하고 투명한 절차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확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서울아트시네마가 공모에 참여할지, 어떤 주체가 추가로 공모에 참여할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손 놓고 안이하게 결과를 기다리기에는 돌아가는 정황이 석연치 않다. 황급히 글을 쓰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래, 솔직히 고백한다. 이것은 선방이다. 상대를 넘어뜨리기 위한 피니시 블로우가 아닌 상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잽을 날리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할 이야기가 전혀 쓸모없는 기우에 불과했기를 바랄 따름이다. 진심으로 내가 별것 아닌 일에 호들갑 떤 우스운 인물이 되어버렸으면 좋겠다.


정부사업에서의 수의계약은 잡음을 만들어내기 일쑤였다. 특혜 시비와 부적격자 선정에 따른 부실문제가 뒤따랐고 여기에는 검은 돈 또는 외압이 개입되기 마련이었다. 공모입찰제로 바꾸고 공개경쟁을 통해 사업의 내실을 기하는 풍토가 확산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는 사업권자 선정 방법만 바뀌었을 뿐, 공모입찰제하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순진한 입찰자들은 자신들이 결정과정의 합법성을 증거 하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야만했다. 결국 문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제도가 아닌 제도를 운영하는 주체와 사람에 있었다. 

영진위의 시네마테크 사업권자의 공모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영진위는 “모든 위탁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라”는 문광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문광부의 주장은 이와 사뭇 다르다. “문광부는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고 지침을 내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어느 쪽의 말이 맞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제까지 민간 주도하에 운영해 온 시네마테크를 공모에 붙이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데 있다.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사업의 주체가 아니라 그 알량한 정부지원금의 대리 집행기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공모제로 전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요컨대 민간사업에 정부가 관여하여 간섭하고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서울아트시네마 측이 항변하자 영진위는 “어차피 공모할 주체가 없으니 빨리 응모할 수 록 서울아트시네마에 유리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설득하려 했다. 이 말은 마치 서울아트시네마 이외에 시네마테크전용관 위탁사업을 수행할 만한 자질과 경험을 가진 단체가 없어 보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제를 수행하는 것은 단순히 행정처리지침의 일환이요, 요식행위이니 서류만 제출하면 끝날 일이라는 것처럼 들린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영진위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특정 단체가 공모하고 심사 결과 서울아트시네마가 공모에서 탈락한다면? 결과는 간단하다. 지금의 장소에 머물 명분이 없으니 현재의 형태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만약 다른 단체가 공모한다면 어떤 곳일까? 현재로써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표면상 드러난 주체가 없는 마당에 섣부른 추측은 위험하다. 하지만 가늠되는 것이 없지도 않다. 사실 2008년 이후 영화계 일각에서는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에 대한 사업권자 교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곤 했다. 세간에서는 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를 대체할 사업자로 특정 단체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었다.

 

이쯤에서 혹자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그간 서울아트시네마가 펼쳐온 사업을 그 화려한 고전의 향연을 지금 그 어떤 단체가 순조롭게 해낼 수 있겠느냐고. 물론 나 역시 서울아트시네마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달리 보면 지극히 순진하고 위험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사업자 선정의 대상이 아닌 것을 가지고 논박하는 것은 상대의 술책에 말려드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분명이 알아야 할 것은, 시네마테크전용관은 영진위의 산하 기관도 아닐 뿐더러 공모를 통해 선정되기만 하면 운영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지난 7년간 해온 사업을 되살펴 볼 필요도 없이, 이제껏 우리들이 보아온 시네마테크는 비록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처럼 방대한 아카이브를 구성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간의 프로그램과 상영실적에 있어 시네필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무던히 애써왔다. 또한 고전 걸작의 상영에 그치지 않고 젊고 역량 있는 작가들을 소개하고 지원해왔으며 교육기관과의 연대를 통한 고품격 영화문화의 창달에도 힘써왔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을 통해서 뿌리내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은 지금도 한국영화의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때문에 오직 서울아트시네마만이 시네마테크의 주체이고 이것이 이 논란의 부질없음을 증명하는 이유가 된다. 

문화예술이란 것이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0년의 진보정권 시절 보수ㆍ우익 예술인이 상대적으로 소외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좌우 이념 논쟁을 부추기는 언론플레이로 ‘실리’를 챙기겠다는 ‘꼼수’를 부렸던 이들이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까지 노린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무엇보다 영화계에 발붙이고 있는 이들이 행할 도리가 아니다.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관객의 욕구에 부합할 만한 영화를 찍을 자신이 없으니까, 뱃속 편하게 고전영화나 틀면서 추억에 젖겠다는 건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세월까지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문화헤게모니는 그런 경로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한국영화가 걱정스럽고 한국영화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면, 빈약한 논리로 한 풀이를 도모하기 이전에 영화를 찍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모름지기 감독이란 영화로 말을 해야 하지 않나? 그럼에도 허황된 욕심이 피워내는 고약하고 불온한 냄새가 진동하니 그래서 노탐(老貪)이라고 하는 거다.


영화광이라면 저마다 자신의 영화적 고향 또는 모태로 삼은 공간이 있을 것이다. 70.80년대의 영화광들이 프랑스문화원과 독일문화원을 거점삼아 영화의 사회성을 고민했다면, 90년대의 영화광들은 문화학교서울(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터득했고, 이후 세대들은 시네코아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영화전용관을 두루 섭렵하면서 자신의 영화적 소양을 쌓아왔다. 그래서 누군가는 “나는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배웠다”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서울아트시네마는 단순한 영화관이 아니다. 사당동에서 소격동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숱한 영화지망생들이 꿈을 키워온 성소(聖所)에 다름 아닌 곳이다. 비록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는 격변의 시기일지라도 시네마테크전용관사업의 주체만큼은 특정집단의 입김과 이념의 제물로 전락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영진위의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자 공모 계획은 전면 백지화 되어야 한다.


시네마테크는 문화헤게모니의 거점이 아닌 문화유산이요 영화의 거처이고 기억의 장소이다. 이것이야말로 단순하지만 거대한 진실이다. 정녕, 문화관광체육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앙리 랑글루아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관장 직에서 해임했던 앙드레 말로의 전철을 밟겠다는 것인지, 지켜 볼 것이다.

 


 

2009.02.16
백건영(영화평론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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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저작권은 경향신문에 있습니다. 

정부의 영화정책에 대한 영화인들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이하 ‘한시협’)는 23일 시네마테크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시네마테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28일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날 서울시네마떼끄에서 상영될 예정이던 존 포드 감독의 ‘분노의 포도’ 상영은 취소됐다.

영화인들이 예정된 상영까지 취소하고 토론회를 개최하는 이유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시네마떼끄에 대한 지원을 공개 공모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서울아트시네마 등 국내 시네마떼끄들은 그동안 영화사적인 의미가 있는 영화들을 재상영하고 예술영화를 공유하는 상영공간으로 자리매김 해 왔다.

한시협은 “올 2월에 시네마테크에 대한 일부 사업비를 지원하던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이 공개 공모제로 전환될 위기에 처했다”며 “지금까지의 지원 제도로도 시네마테크 운영의 안정성이 보장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개 공모제 전환은 불안정성을 더 높이는 결과를 초래해 시네마테크를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화인들은 “2009년도 시네마테크 지원에 대한 공개 공모로의 전환 시행은 일단 유보되는 듯 보이지만 단지 시행일이 조금 미루어졌을 뿐, 당장 올해 중반이면 내년 사업 진행을 위한 시네마테크 지원사업 공개 공모의 공고가 진행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시협 측은 “지난 2008년에도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산 불용 처리로 안정적인 공간 확보를 위해 진행하던 복합상영관 추진안이 표류한 바 있다”고 비판했다.

한시협은 28일 열릴 토론회가 “영화인들과 관객, 시네마테크 관계자가 함께 참여하여 90년대 이래로 민간의 자율성과 활력으로 성장해 온 시네마테크가 직면하게 된 위기상황과 더불어 향후 대응 방향을 모색하고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28일 토론회에는 오승욱, 정윤철 감독과 영화평론가 김영진씨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한편, 영화인들은 지난 11일에도 영진위가 영화 제작지원을 상업영화와 비상업영화로 구분하는 방식으로 바꿔 독립영화 지원을 대신해 장편과 중편, 단편으로 나눠서 영화를 지원하도록 한 것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영화인들은 이로 인해 충무로에 기반을 둔 영화사들이 제작비 지원을 신청해 ‘다양성 확보’라는 본래 취지를 흔드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며 ▲정부의 지원정책 ▲독립영화 상영이 가능한 배급환경의 변화 등을 요구한 바 있다.

<경향닷컴 손봉석기자 paulsohn@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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