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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의 이야기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나를 성숙시키는 곳 *2009년 친구들영화제 웹데일리에 송고된 글입니다.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나를 성숙시키는 곳 시네마테크에 관한 단상 내게 있어 시네필이라는 말은 아직 너무나 멀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영화를 좀 열심히 본다고 누구나 시네필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영화는 물리적 시간의 흐름을 동반한다. 장편영화로 치자면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다. 어떤 영화가 10년의 이야기를 하건, 10분 안에 이루어진 일들의 이야기를 하건 간에 관객은 자신의 시간을 영화에 투자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나는 당대 내노라하는 시네필로 불리는 선배들에 비해 영화를 본 물리적 시간 자체가 짧다. 나는 아직 이십대 초반이고 세상의 유혹이라는 핑계를 대며 영화에 시간을 많이 소요하지 못한 학생일 뿐이다. 프랑수와 트뤼포는 22살.. 더보기
나, 서울아트시네마, 그리고 지금. 나는 씨네필이 아니다. 고백컨데 나는 영화보다 극장을 먼저 좋아했다. 언제부턴가 그 어두운 공간에 늦은 밤 혼자 찾아가는 행위 자체가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20대 나의 전부였던 공간은 사실 교회였다. 수업과 레포트보다 그리고 직장보다 교회와 전도의 일이 나에겐 최우선순위였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하던 공동체에서 힘들어지던 순간은, 이 공동체가 내 개인의 삶과 맞물리지 못한 채 흘러가고 있다고 느껴지면서 부터였다. 성경을 가르치고 제자양육을 하는데 정작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계속 치고 올라오고, 공동체는 끝없는 헌신을 요구하는데 내 삶은 어느순간 저기 내팽개쳐져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나를 돌볼줄 몰랐다. 그것은 공동의 목표에 비해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자신했었다. 아니 나는 그것을 .. 더보기
서울아트시네마의 주인은 영화인이다 *사적인 에세이며 의견입니다. 다소 감정적이고 격한 부분은 자체적으로 필터링해서 받아들이셨으면 합니다. 그저 제 분노라고 생각하시면 되구요, 단지 이 글을 읽을 당신이 그 분노에 공감하고 동참해주실 분이었으면 합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주인은 영화인이다. 요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아스라이 잊혀졌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사실 잊고 싶었던 옛일들이다. 어린 시절. 집을 짓고 산다는 건 우리 가족의 원대한 꿈이었다. 한 때 우리 네 식구는 월세 방 한 칸 마련할 돈이 없어서 고모네 식구들과 한 지붕아래, 그것도 단칸방에서 살았다. 그나마 넓은 방이어서 두 식구 8명이 자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자식들과 아내에게 못내 미안해서 종종 사무실이나 .. 더보기
나는 네가 늘 그 곳에 있었으면 좋겠어! 시네마테크를 향한 연애편지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데일리에 송고된 글입니다. 올해로 4회를 맞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2월이 지나고 3월이 오면 서울아트시네마는 이제 새로운 프로그램을 위한 준비에 분주해 질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의 1년 중,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고 그 어느 때보다 활력 넘치는 한달여의 시간은 또다시 내년을 기약한다. 그리고 동시에 ‘친구들 영화제’의 일원으로 속해있던 나 또한 내년에 돌아올 ‘친구들 영화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3월의 첫날, 나는 ‘친구들 영화제’의 폐막과 동시에 개강을 준비해야 한다. 서른 편 남짓의 영화들에 둘러싸여 정신없는 방학을 보냈던 나는 이제 온전히 영화로만 이루어진 달콤한 꿈을 잠시 접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