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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의 이야기

요즈음, 낙원상가 바깥의 세상


지난 1년 간 경찰차, 전경차를 보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피해야겠다'라는 생각이었다. 민중의 지팡이, 포돌이와 포순이가 친근하게 다가온 것은 이미 머나먼 옛날의 일이다. 작년 5월, 집회에 연달아 참여하며 모여있는 군중들에게 '제법 정확하게' 최루가스를 발사하던 한 경찰의 손짓을 잊을 수 없다. 그 앞에서, 벌벌 떨며 나즈막히 욕을 해대던 진압봉을 든 경찰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분향소가 설치되었던 날,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3사의 카메라가 들이닥치기 직전 무장하고 있던 경찰들 앞으로 평복을 입은 경찰들이 자리를 바꿈했던 것 또한 잊을 수 없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보고 있던 것은 '평복을 한 위선적인 경찰들'이었다. 만일 이 날, 무장경찰들이 카메라에 비친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아마 나와 함께 당시 덕수궁에 있던 사람들은 충분히 공감하셨으리라. 지난 5월 초, 명동에서 술자리 2차를 가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가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는 친구의 말, 그리고 이미 일본 언론에 보도된 공공연한 사실들까지, 이런 것들은 모이고 모여 나에게 전경차- 닭장차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불신과 공포를 심어주었다.  

권력의 '개'가 경찰이라지만, 사실 그에 대한 전경들의 위압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심하다. 주변에 전의경을 지원해 일찍부터 군대에 가게 된 동생들이 여럿 있는데, 그들은 요즈음 정말 전경생활을 계속 할 힘이 생기지 않는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낸다. 작년 이맘 때 입대한 한 동생녀석은 틈만 나면 전화로 여러가지 상황을 전달해주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보면, 그리고 집회라는 단어 아래 경찰과 '대치'하게 되는 그들의 모습에 참 맥이 빠진다. 자신이 하지 않으면 위에서 갈굼당할 것을 뻔히 아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누르는 무서운 죄책감은 결국 '권력의 개'라는 호칭마저 낳았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지만, 시청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전경들을 볼 때마다 괜시리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현재, 시청 일대는 아직도 '닭장차'가 대기 중이다.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출퇴근을 반복해서 하는 그들이 참 고달프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정부에서 고집하고, 그들보다 높은 곳에서 그런 터무니 없는 행동들을 지시했다는 생각을 하면 슬그머니 등이라도 다독여줘야겠지만, 현재 서울시민에게는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이런 뭐같은 놈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욕설을 고스란히 받는 사람들은 장관 자리 차고 앉아 그들에게 지시하는 고위 관료들이 아니라, 현장에 나와 개 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는 경찰들이다. 개 중에 개념상실한 전경들이 '스타덤'에 오르기도 하고, 개 중에 개념상실한 과격시민들이 '스타덤'에 올라 '폭력시위'라는 딱지를 붙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편이 되었건간에 이런 무서움과 공포와 논쟁을 심어준 것은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과 선배에 복종해 하는 수 없이 단봉과 장봉을 들어야 하는 그들이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진압 앞에,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서울시민들이 모두 광장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경찰들의 모습밖에는 없다. 그렇게 보여져야 하고, 그렇게 보여지지 않으면 정상이 아닐 정도로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있다.  

 팩트를 팩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 나는 아직도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집회가 있는 날, 집회에 한 번이라도 참가해보라고 권하곤 한다. 이명박 정권이 원천봉쇄한 서울광장, 그 광장 대로변에서 꼿꼿이 서 있을 수 있는 날은 그 때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때문에 멀리서라도, 아주 먼 발치에서라도 서울 광장을 내다볼 수 있는 시간을 조금 가지고 살아간다. 이럴 때, 학교가 시청 일대에서 멀지 않다는 사실은 진심 반 농담 반 나를 위로한다.

 가만히 자리에 서서 촛불을 들어도 잡혀가지 않기 위해, 사진 찍히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하는 세상. 사진이라도 한 방 찍히게 된다면, 그 날로 어머니와 애인과 친구들은 '조사 받고 온' 친구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참, 무서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