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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의 이야기

2008년, 언젠가의 서울아트시네마

(화선지/먹  2008)

내가 미대를 다니고 있다고 말하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슬쩍 놀라는 눈치를 보여주신다. 졸업을 했거나 영화와 관련된 학과를 다니거나 할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그림'이라는 걸 그린다는 것 자체에 놀라시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나를 '미대생'이라고 강조한다. 얼마 전 개강 후 한 교수님이 장래희망을 물어보시길래 나는 서슴치 않고 이렇게 답했다. "그림도 그리는 영화감독" 그러니까 나는, 미대생의 탈을 뒤집어 쓴 관객 중 하나다. 

미대생은 졸업시즌이 다가오면 논문대신 졸업작품을 제출해 졸업 여부를 평가받아야하므로, 보통은 3학년 2학기부터 졸업작품에 대한 압박을 느끼곤 한다. 나는 이제 3학년 1학기. 물론 조바심 낼 필요는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생각해두지 않으면 분명 1년 후 교수님들과 싸울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러다가 문득,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조금 오래 전에 생각났던 주제가 있었다. 그것은 '극장'.
 
영화를 좋아한다고 느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가장 후회되는 일은 소격동에 대한 사진이나 스케치를 한 장도 남겨두지 못했던 것이다. 그곳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반 이상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에게는 그곳에 대한 기록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그때는 당연한 공간이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 희귀성을 몰랐던 것일까. 그래서 가끔 웹서핑을 하다가 소격동 시절의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사진들이라도 나올라치면, 한참을 들여다보고 생각에 빠진다. 그때, 그곳을 스케치해두었으면 좋았을걸. 때문에 소격동의 아트시네마가 낙원동으로 옮기고 나서부터는 자연스레 조바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 공간은 또 어딘가로 이사가버릴지 몰라.' 소격동의 소중한 추억에 대한 기록을 고스란히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었던 나는,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상가 4층에서 새 둥지를 튼 후부터 극장의 모습을 조금씩 담는 것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작가로 활동하기보다 영화일을 본격적으로 하고싶어하는 나는, 학기 중엔 늘 그림과 영화 사이에서 갈등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다니는 대학은 비교적 보수적이어서, 우리 학교의 교수님들은 대체로 학과-그러니까 그림 그리는 것-이외에 하는 활동 자체를 그렇게 달가워하는 편이 아니셨다. 영화잡지를 만드는 일과 영화 웹진에 참여하고 있다는 일 등의 활동을 알려드려도 썩 내켜하지 않는 분들이셨다. 교수님들에게 나는 늘 영화로만 도배되어있는, 이른바 '날라리 미대생'이라고 여겨졌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교수님들이 유일하게 찬성하는 것은 '극장'을 '그리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극장은 내게 그림과 영화에 관한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주며 학과에도 충실히 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해 준 곳이다. 극장을 떠올리며 스케치를 하고, 극장을 떠올리며 채색을 입힐 때, 나는 학교를 벗어나 영화라는 판타지의 공간으로 잠시나마 여행을 할 수 있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나에게는 2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그 시간동안, 아마도 내가 극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선물은 계속해서 극장이라는 공간을 그림에 담아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게 극장은 힘겹게 찾아낸 보물과 같은 공간이고, 달콤한 연애를 꿈꾸게 해 준 곳인 동시에 수많은 영화들을 떠올리며 밤을 지새우게 해준 공간이다. 그런 극장을 위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아마도 '극장 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닐까. 그렇게해서라도 극장이 내게 주었던 '영화'라는 보물에 대한 보답이 된다면 참 좋을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