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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의 이야기

서울아트시네마가 위기에 처해 있다

1. 서울아트시네마와의 만남

 

리뷰를 쓰면서 영화형식미에 대한 나의 지식이 참으로 일천하기 그지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래서 영화의 역사와 고전형식을 되짚어 보기 위해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하기 시작했고, 그리고는 이내 영화의 풍성한 형식미의 바다에 퐁당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느 한 분야의 예술영역, 특히 영화는 쉽게 가늠하기 힘든 형식과 내용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2. 시네마떼끄의 힘

 

내가 영화예술의 진한 맛에 빠르게 중독된 데에는 뭐니뭐니해도 극장이라는 목적의식적인 대중적(정치적) 공간에서 만나는 필름(원본재현)상영이 존재했기에, 즉 고전 영화의 역사적 재현 공간에, 그 순간 내가 위치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네마떼끄는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현재의 대중과 공유하는 재현과 소통의 시대적 공간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떼끄를 지키고 사수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것이며, DVD나 TV로 개인적 공간에서 해결 불가능한 것이다.

 

3. 공모제의 본질

 

그런데 불행히도 그 공간이 사라질지도 모를 위험에 처해있다(이런... 역시 어느 곳, 어느 때이건 예술은 정치와 딴 몸일 수 없으며 항상 생존을 위해 싸움이 필요하다는 역사적 교훈을 또 일깨워준다. 의회민주주의의 역사는 항상 이런 상시적 불안감을 동반한다).

 

마침내 "공모제"라는 이름을 내걸고 시네마떼끄의 주체와 운영, 즉 헤게모니를 손아귀에 쥐겠다는 영진위의 끔찍한 도발이 시작된 것이다.(공모제란 마치 정부의 하청사업 경쟁입찰 공모 하듯이 다수의 떼끄 운영자를 공모 신청 받아서 그 중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자로 골라서 운영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시민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이십 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시네마떼끄 운동에 대해 정부가 그동안 고작 몇 년 간 약 30%의 예산지원을 해왔다는 이유로 운영권을 뺐아가겠다니, 도대체 이런 해괴망측한 날강도적 발상의 전환이 어찌 가능한지 김곡 감독의 "뇌절개술"로 그들의 사유방식을 한 번 해부해 보고 싶다.

 

사실 공모제 추진에는 정치경제적인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있다. MB정권의 신자유주의의 극대화, 이윤과 효율 극대화의 논리, 선택집중의 허울 속에 담긴 국가경쟁력 강화의 논리가 문화부문에서, "모든 위탁경영제의 공모제로의 전환"이라는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예술에도 산업이윤의 경쟁논리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한마디로 이윤에 눈이 먼,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경쟁과 일등만능주의에 빠진 그들에게 예술을 이해시킨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리고 가장 공정해야 할 사법기관과 언론마저도 낙하산과 코드인사로 완전장악한 그들의 힘 앞에서 문광부의 일개 위원회 조직인 영진위가 그들의 헤게모니를 거부하고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환상은 정말 "거대한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며, 결국 이 싸움은 우리들과 그들의 한 판 힘싸움이라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때문에 공모제 철회를 이루어내면 그것은 MB정권의 정치헤게모니인 신자유주의 극대화(경쟁과 이윤 극대화 논리)에 첫 파열구를 내는 싸움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1968년 일어난  프랑스 시네마떼끄를 지켜내기 위한 "앙리 랑글루아"싸움으로 드골정권에 첫 파열구를 내어 이후 68학생운동의 지식인세력에 큰 자신감을 실어 주어 전국적 정치운동으로 확대되었던 전래가 존재한다.

 

4. 라깡의 이론과 영화운동의 충돌

 

생존의 위협이라는 절박감 앞에 우리는 현재의 시간(현실)을 인식하고 몸부림(실천) 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것은 라깡의 시니피앙(기표)의 무한 연쇄의미화 작용이라는 대타자의 인식불가능성의 이론을 머리 속에서 말끔히 지워버려야 함을, 그리하여 눈 앞에 닥친 문제(대타자)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실천을 위한 대안 창출이 요구됨을 알 수 있다.

 

실천을 위해 선행되는 대상인식 작용은 항상 시간을 분절시키고 멈추게 한다. 그러기에 생존하려면, 즉 현실을 인식하려면 라깡의 미끄러짐의 무한 의미화 연쇄작용의 시간을 정지시켜 대타자를 필요한 해당 순간에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생존을 위한 실천 앞에 라깡의 이론은 허무한 사변임을, 제논의 역설인 영원히 내 눈동자에 도달하지 않는 화살의 궤변임을, 결국 그 화살은 내 눈 앞에 도달하게 됨을 우리는 현실을 통해 알게 된다.

 

5. 씨네필 그리고 연대, 우리의 대응

 

공모제 철회 싸움은 이명박 정책 헤게모니의 담지자 영진위와 떼끄를 지키려는 씨네필 대중과의 힘 싸움이다. 그러기에 시네마떼끄 운동은 대중적 기반을 통해 유지되고 강화 될 수 있는 대중운동임을 재차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 기회를 통해 떼끄 운영진과 관객들 사이의 관계 강화로 떼끄운동의 대중적 기반이 실질적으로 형성되었으면 한다. 이를 위한 다양한 방법 연구는 앞으로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우선 기본적으로 관객의 리뷰가 함께 실리는 시네마떼끄가 발행하는 매월 소식, 리뷰지를 고려해 봄이 어떨까 싶다. 관객들은 서명운동을 계기로 '공모제 철회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씨네필 대중을 결집하는 계기를 만들고(영화학과와 수많은 영화동아리와 카페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꿈꿔 본다), 이를 바탕으로 떼끄 운영진과의 상시적 소통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마침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3백만 까지도 바라 보는 대선전으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운동의 중요성과 힘, 그리고 예술에 이윤과 경쟁논리를 불허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국민에게 각성시킬 좋은 호재를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공모제 위기에 함께 내몰린 미디액트와 독립영화계 인디스페이스는 우리와 함께 연대해 나갈 든든한 원군이다. 이번 싸움이 시네마떼끄가 대중들에게 널리 인식되고 그 기반을 점차 강화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