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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quanon

'데이비드 린 회고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5.17
    5월 10일 서울아트시네마 콰이강의 다리 상영 후 씨네토크
  2. 2009.05.11
    5월 9일 아라비아의 로렌스 상영 후 강연 (1)

(일주일 만에 정리하느라 기억에서 많이 희미해져서, 메모를 해뒀다고는 해도 빼먹은 내용도 많고 엉망이다. 빼먹은 내용 중에서는 데이비드 린은 인간에 대한 정의를 함부로 하지 않은 감독이라는 말을 적어두고 싶고, 정리한 내용 중에서는 영화는 이미지가 아니라는 말을 특별히 기억해 두고 싶다)

5월 10일 오후에 <콰이강의 다리> 상영 후 오승욱 감독과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진행하는 씨네토크가 있었다. 오승욱 감독은 먼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영화적인 체험들을 이야기하는데, 처음은 지금은 없어진 장승백이의 강남극장에서 봤다는 <인왕산 호랑이>라는 영화 예고편이다. 두 명의 사나이가 달밤에 결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오고 인왕산 호랑이라는 타이틀이 소용돌이치듯 빙글빙글 돌아서 스크린 가운데에 박히는 것을 보고 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그때는 오승욱 감독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두 번째는 금성극장에서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본 것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고 오승욱 감독이 놀란 것은 두 가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다 풀숲에 처박히는 장면과 칼에 사람 머리가 반토막 나는 장면이었다. 오승욱 감독은 <임꺽정>이라는 입체영화를 보고 놀란 이야기도 하는데, 마치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를 처음 보고 놀란 사람들 같았다고 한다. 그러자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데이비드 린 영화에 기차가 많이 나오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한다.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로렌스가 성냥을 켜는 장면이 매혹적이었다고 하더라면서 오승욱 감독은 웃는데, 자신과는 싹수가 다르지 않느냐는 것이다. 자신은 죽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반해...

데이비드 린의 영화에서 사람들이 매혹되는 지점 중 하나는, 로저 에버트의 '데이비드 린의 영화는 눈으로 경험하는 영화'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이미지다. 그는 이미지와 이미지를 결합시켜 서사를 만들어낸다. 물론 그렇게 한 사람은 데이비드 린 뿐만이 아니지만 데이비드 린은 그것을 가장 대중적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물론 거기에는 함정이 있다. 보여준다는 것에 대한 욕망에 집착하면 그 어떤 가느다란 끈을 넘는 순간 미치광이가 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린의 영화에서도 그런 강박이 심해지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오승욱 감독은 <라이언의 딸>에서 주민들이 폭풍우가 치는 바다로 무기를 건지러 가는 시퀀스를 예로 든다. 저 장면을 얻기 위해 감독은 과연 무슨 짓을 한 걸까? 저 장면을 찍기 위해 배우들은 자칫하면 생명이 위험한 상황까지 내몰려야 했을 것이다. 저렇게 위험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 감독은 폭군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데이비드 린은 영화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든 감독이라고 오승욱 감독은 이야기한다. 감독은 어디까지 보여줘야 하는가? 이미지에 대한 탐욕을 가진 감독들 중에는 말년이 좋지 않은 감독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구로자와 아키라가 그렇다고 한다. 구로자와 아키라와는 달리 데이비드 린은 마지막 영화인 <인도로 가는 길>까지 가면서도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았다고 오승욱 감독은 이야기한다. 데이비드 린이 구로자와 아키라의 길로 가지 않은 것은 관용에 대한 정신 때문이라는 것이다. 데이비드 린은 시나 소설에서는 절대 보여줄 수 없는 것을 영화를 통해 보여준 감독인데, 그 와중에 그는 끊임없이 관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것이 사실은 그의 이미지보다 더 중요하게 눈여겨 보아야 될 지점이라고 오승욱 감독은 설명한다. <밀회>를 보면 놀라운 것은 영화가 시작하면서 보여준 시간과 영화가 끝나면서 보여준 시간이 같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이 한 말은 사실은 데이비드 린 감독이 하고 싶은 말 아니었을까? 남편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아내를 받아들이고 용서하는데, 그것은 단순하지만 소중한 관용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데이비드 린이 항상 하는 이야기가 관용인데, 그것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은 평론가들에게 박살난 <라이언의 딸>이라고 오승욱 감독은 말한다. <라이언의 딸> 마지막 시퀀스는 보석같은 시퀀스라고 오승욱 감독은 말하는데, 영국군 장교와 바람을 피운 아내, 그런 아내와 함께 만신창이가 되어 마을에서 쫓겨나면서 남편은 아내에게 당당하게 걸으라고, 기운을 내라고 말한다. 대단히 소중하고 다른 어떤 것들보다 가장 많이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이 관용 아닌가,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사수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오승욱 감독은 말한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거대함 안의 진짜 사소한 이야기를 거대하게 한 감독인데, 10주 동안 촬영이 중지된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주위 사람들을 거의 미치게 만들었을 것이다. 데이비드 린 감독에게는 악마같은 일화가 하나 있는데, 바로 안소니 퀸에 관한 것이다. 안소니 퀸이 어느 날 감독에게 자신이 영화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지 자랑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막의 모래언덕 부근에 세트를 짓는데 그가 데이비드 린에게 세트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더 낫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자 데이비드 린은 그 말을 선선히 들어줬는데 세트를 옮기는데 2주가 걸렸다. 그런데 세트를 옮긴 얼마 뒤 바람 때문에 모래언덕이 완전히 이동해버린 것이다. 안소니 퀸은 그 뒤로 데이비드 린에게 완전히 꽉 잡혀 버렸는데, 그는 자기 자서전에서 데이비드 린에 대해서는 이 사실 하나밖에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 감독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면서도 배우를 길들이기 위해서 한 일이고 해서는 안될 짓이었다. 세트를 옮기는데 쏟아부은 수많은 돈과 시간을 생각해보라.

(김성욱 프로그래머인가 오승욱 감독인가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어린 시절에 봤을 때는 어떤 쾌감 같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콰이강의 다리>를 보면 일본군이 장악한 수용소에서 영국군과 미군이 하는 짓에는 낭만적인 면이 있는데, 따져보면 찌질한 것이다. 영화의 구성을 보면 앞의 한시간 동안에는 포로로 잡힌 영국군 장교들이 일을 하는가 마는가를 놓고 영국군 장교 니콜슨(알렉 기네스)과 일본군 포로수용소 소장 사이토(하야카와 셋슈)가 실갱이를 벌이고 40분 동안에는 다리를 지으며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미군 파괴공작원들이 다리를 부수러 온다. 인간들의 사소하고 찌질한 행동들이 거대한 규모의 영화 안에서 보여지는데 지금 같으면 사람들이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그건 <인도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 정도의 규모와 스케일이 필요할까? 그런데 그것이 주는 묘한 매력과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족장들이 회의하는 장면이 의미하는 것은 소통의 불가능성 하나 뿐이다. 오승욱 감독은 자신은 전쟁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포로수용소 영화라는 것이다. 믿지 않겠지만 포로수용소 영화에서는 사람을 죽이지 않아서 좋다는 것이다. 어차피 서부영화나 전쟁영화나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자신은 전쟁영화에서 사람을 죽일 때는 이상하게 견디기 힘들다는 것.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대단한 것은 대규모 전투씬을 중공군과 싸우는 것으로 하고 동족과 싸우는 것을 보는 관객들의 죄책감을 덜어준 것이다. 

<콰이강의 다리>에서 재미있는 것은 일본군과 미군, 영국군이 생각하는 포로의 개념이 틀리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포로의 개념이 전혀 다른 상대끼리 싸운 전쟁이었다. 영국과 미국에서 포로가 된다는 것은 전투에서 진 것이지 전쟁에서 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임무는 탈출해서 적에게 적대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포로가 된다는 게 전투에서 진 것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도 진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들은 포로가 되면 할복을 하거나, 아니면 부대의 일급 기밀까지도 거침없이 적에게 털어놓곤 하는 것이다. <콰이강의 다리>에서는 사이토가 생각하는 포로의 개념과 니콜슨이 생각하는 포로의 개념이 충돌한다. 그래서 사이토는 포로가 되고 나서도 포로의 권리를 찾고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는 니콜슨을 이해하지 못한다. 니콜슨은 사이토와의 싸움에 이김으로써 다리 건설의 주도권을 갖게 되는데, 그가 다리를 짓는 행동에는 인종주의적인 함의가 있다. 제국주의 영국의 우수함을 미개한 원주민과 일본인들에게 과시하려는 것이니까. 사이토가 니콜슨의 요구를 들어준 뒤에 방 한구석에서 우는 장면이 있는데, 그는 니콜슨에게 정신적으로 패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명예에 대한 싸움으로 보이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것을 살짝 바꾸면 허세가 된다는 점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영국군 포로들이 대오를 지어 행군하면서 휘파람을 불며 오는데, 카메라는 그들이 신고 있는 너덜너덜해져서 다 떨어진 군화를 비춘다. <콰이강의 다리>는 전쟁을 하고 있는 남성들의 허세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가련한 것인지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허세를 보여주는데 이 정도 규모가 필요하다고 데이비드 린은 계산한 것 아닐까.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도 <콰이강의 다리>를 염두에 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군이 동남아시아를 점령할 당시, 일본군 장교들은 미군과 영국군 포로들이 떳떳한 것을 보고 그들이 수치심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들은 사무라이 정신을 배우라고 포로들을 다그쳤지만 그런 반면 그들의 당당한 모습에 매혹되었다. 일본인들의 서구에 대한 태도는 동전과도 같이 양면을 지니고 있다. 일본인들은 서양 포로들을 사무라이 정신으로 채우려 했지만 반대 상황이 되자 그들은 적극적으로 친미적이고 친서구적인 길을 걸었다.
존 스터지스의 <대탈주>를 보면 포로로서의 미군과 영국군의 차이도 드러나는데, <대탈주>의 스티브 맥퀸과 <콰이강의 다리>의 윌리엄 홀덴 캐릭터가 겹치는 부분이 있다. 18세기 경부터 전투시 영국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전진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군복은 빨간색이었는데 그 이유는 옷이 빨간색이면 전투 도중에 튀긴 동료의 피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관총이 발명된 뒤에는 빨간색 군복은 좋은 표적이 되었기 때문에 군복의 색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대탈주>와 <콰이강의 다리>의 영국군들은 계획을 세우고 뭔가 성취하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미군들은 즉홍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포로로 살아가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콰이강의 다리>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은, 영국군이 갖고 있는 영국 신사라는 허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허세가 허세인 것은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니콜슨과 영국군이 자신들의 허세를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은 결국 이적행위이며 니콜슨이 걱정하는 것은 부하들의 군기 뿐이다. 그런 것을 중시한 나머지 니콜슨과 그의 부하들은 이적행위를 하게 된다. <콰이강의 다리>는 허세라는 것을 끝까지 밀고 갔을 때 생기는 이상한 딜레마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린의 영화를 보면 사람이 광기에 빠질 때 망령이 다가오는 것 같은 현현현상이 있는 것 같다. 죽은 줄 알았던 윌리엄 홀덴 캐릭터가 튀어나오는 것도 그렇고. 이 사람이 생각하는 영국성이란 무엇인가? 영국은 식민지를 가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는데, 어디를 가든 그런 것들과 만나게 된다는 것 아닐까. <인도로 가는 길>의 동굴 에코도 그렇고. <콰이강의 다리>는 기찻길 옆의 무덤과 독수리 등 죽음의 이미지로 시작해서 그렇게 끝날 것이라는 점이 너무나 명백하다. 그리고 그의 영화를 본 관객들은 굉장히 모호한 느낌을 갖게 되는데 데이비드 린은 그런 모호함을 즐겼을 것 같다.

<콰이강의 다리>을 보면 데이비드 린이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시각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가령 미군 파괴공작원들이 정글에서 일본군을 죽이는 장면에서 큰 박쥐들이 우수수 날아가는 장면, 그런 장면을 도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집념으로 찍었을 것이다. 아마 미얀마에서 영화를 찍었을 텐데, 그런 정글로 들어가려면 영화에서 하는 것과 똑같이 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보여주는 데 대한 데이비드 린의 집념이 드러난 것이다. <콰이강의 다리> 이후부터 데이비드 린의 영화에는 자연이 하나의 캐릭터처럼 등장하기 시작한다. 자본도 넉넉해져서 데이비드 린의 영화를 보고 나면 이미지가 각인되는게 많다. 오승욱 감독은 <라이언의 딸>을 보고 나서 집에 가서 존 포드 감독의 <아일랜드의 연풍 The Quiet Man>을 볼 것을 권한다. 퀘이커 교도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죄의식에 시달렸던 영국인 감독 데이비드 린과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사나이 존 포드가 아일랜드 사람을 묘사하는 것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거라는 말이다. <콰이강의 다리> 프로젝트는 여러 감독들을 거쳐서 데이비드 린에게 갔는데, 심지어 오손 웰즈도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존 포드와 하워드 혹스에게도 갔는데, 그들은 자기들에게(혹은 자기 나라에게) 식민지를 경영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한다.

이집트 사람들이 피라미드를 지을 때도 그런 고민을 했을 것 같은데, 남들에게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 보여주려면 무엇을 얼마만큼의 크기로 지을지 계산을 해야 한다. 그것이 스케일의 개념이다. 데이비드 린 역시 어떤 것을 필름 위에 표현하려면 그것을 어느 정도 크기로 만들어야 할지 대단히 고심했던 것 같다. 데이비드 린은 평론가들에게는 시시한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 거대한 돈을 쏟아부어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영화 속에 스케일의 개념을 가져왔고, 거기에 대해 굉장히 고민했다. 사랑 하나를 표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데이비드 린은 <밀회>에서 이별하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장면을 하나 툭 보여주고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에 그것을 다시 보여준다. 처음에 여자의 손 위에 살짝 얹히는 남자의 손의 의미와 나중에 다시 보여주는 그 장면의 의미는 전혀 틀리게 다가온다. 60분 동안의 내용을 보여줌으로써 그 사랑의 크기를 오롯이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는 이미지가 아니다. 아름다운 이미지만 보고 싶으면 사진을 보면 된다. 그런 일은 사진 작가들이 오히려 더 잘할 것이라고 오승욱 감독은 말한다. 데이비드 린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압도저인 이미지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시키면서 놀라운 이야기와 시간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영화가 여기까지 온 데에는 데이비드 린이 기여한 바가 크지만 그는 너무 많은 비판을 받았고 과소평가된 감독이다. 오승욱 감독은 기존의 평가에 얽매이지 말고 편안하게 영화를 볼 것을 주문한다. 오승욱 감독, 김영진 평론가, 김성욱 프로그래머 등이 공히 언급하고 추천하는 데이비드 린의 영화는 <밀회>이고, 거기에다 <위대한 유산>의 첫번째 시퀀스는 꼭 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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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시 30분에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상영한 후에 김영진 평론가의 강의가 있었다. 영화 상영 전에는 영화를 보러 온 이명세 감독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간략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명세 감독은 [아라비아의 로렌스] 다큐멘터리에서 스필버그가 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스필버그는 로렌스가 성냥불을 끄고 바로 어두운 새벽에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으로 전환되는 것, 그 장면을 가리켜 '이것이 영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영화에서밖에는 볼 수 없는 장면, 영화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이명세 감독은 그것을 스크린으로 보기 위해 왔다고 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이명세 감독을 소개하기 전에 시설 때문에 아쉽게도 70mm로 상영할 수는 없지만, 35mm로도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210분으로 인터미션이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강연이 시작되었다. 김영진 평론가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진정 스크린으로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운을 뗀다. 그는 대한극장이 헐리기 전,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상영되었던 이 영화를 봤던 일을 이야기한다. 그때는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70mm로 상영했다. 후배들이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해서 자신이 가겠다고 이야기했는데, 막상 혼자가기 싫어서 밥 사주겠다며 후배들 두 명을 끌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온 후배들은 충격을 받았다. 이런 영화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김영진 평론가도 마찬가지였다.
김영진 평론가는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8시간짜리 필리핀 영화를 봤다는 이야기를 한다. 프로그래머가 부탁해서 GV를 맡았는데, 너무 피곤해서 한 시간 보다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보니 러닝타임이 다섯 시간쯤 남아있더라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아주 편안히 영화를 봤다고. 그 두어시간 동안 스토리가 별로 진행된 게 없어서 영화 내용 이해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대여섯시간 지나니까 사람들이 피곤해서 다 나가고 스물다섯명쯤 남아서 끝까지 영화를 보는데, 남아서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들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별다른 액션도 없는 영화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정의 깊이가 엄청나더라는 것. 이 영화가 자신의 대작에 대한 통념을 바꿨다고 김영진 평론가는 이야기한다.

지금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스펙터클 같은 건 만들어질 수 없는 시대다. 오마 샤리프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만약 당신이 스타도 없고, 여자도 없고, 여자가 없으니까 당연히 로맨스도 없고, 액션도 없는 영화를 만드는데 사막에 가서 찍어야 되고 러닝타임이 네 시간짜리다. 이런 영화를 누가 만들고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그런데 그걸 해낸 게 데이비드 린이다. 데이비드 린은 완벽주의자로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수많은 야사를 남겼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낙타들조차 일일이 캐스팅했다고 한다. 당시 아우다 아부 타이 족장 역으로 출연한 안소니 퀸은 주급으로 10만 달러를 받았고, 데이비드 린은 우아한 영국 신사여서 촬영하다 문제가 생기면 컷을 외치는 대신 일어서서 스탭들에게 미안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말하는 걸로 대신했다고 한다. 어느 날 촬영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러 온 제작자 샘 스피겔과 안소니 퀸 부부, 데이비드 린 등이 저녁식사를 한 일이 있었다. 데이비드 린은 그 자리에서 샘 스피겔에게 후반부의 각본에 문제가 있어서 수정을 해야 하는데, 각본을 쓴 로버트 볼트에게 물어보니 고치는데 10주가 걸린다고, 그 동안 촬영을 중단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안소니 퀸은 10주 동안 놀면서 돈 받을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좋아했지만 데이비드 린의 말을 들은 샘 스피겔은 스프 접시에 얼굴을 박고 기절해버렸다. 데이비드 린은 우아하게 냅킨으로 입을 닦은 뒤 안소니 퀸의 부인에게 샘 스피겔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고는 돌아갔다고 한다. 데이비드 린은 이런 에피소드를 남겼는데 어느 날 샘 스피겔이 촬영 중인 데이비드 린을 다시 찾아갔는데 데이비드 린이 사막 한 가운데서 혼자 울고 있더라는 것이다. 촬영도 엉망이고, 연기도 엉망이고, 연출은 더더욱 엉망이라서 이 영화는 실패라면서(우린 안 될 거야 아마?) 울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걸작이 나왔다. 러닝타임이 너무 긴 탓에 오리지널로 할 것인지, 일부 장면을 삭제하고 개봉할 것인지 설왕설래가 오간 끝에 10분을 삭제하고 전세계적으로 개봉을 할 수 있었다.

T.E. 로렌스의 자서전은 [지혜의 일곱 기둥]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발간이 되었다고 한다. 자서전을 읽어보면 T.E. 로렌스는 돈키호테적인 인간이며 엄청난 자뻑의 소유자인데 그러면서도 동시에 굉장한 필력을 보여주고 있다. 데이비드 린과 로버트 볼트는 그걸 참조만 하고 자신들 나름대로 영화를 만들었다. 만약 요즘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만든다면 이 영화는 아랍 군대가 다마스쿠스로 진격하는 부분에서 끝나지 않을까? 이 영화는 로렌스가 배제되는 정치적인 정황이나 실패한 영웅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T.E. 로렌스를 비판하면서 실은 그는 제국주의의 하수인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 적 있는데, 생각해 보면 스펙터클한 영화 중에서 이렇게 복잡한 영화가 있었나 의문스럽다고 김영진 평론가는 이야기한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주인공은 시련을 겪으면서 강해지는 게 아니라 분열되고 망가져간다.
당시의 데이비드 린은 전세계적인 흥행 감독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반면 평론가들의 지지를 차차 잃어가고 있었다. 데이비드 린은 16편의 영화를 남긴 과작의 감독인데 그가 영화를 많이 만들지 못한 데에는 시대의 변화 탓도 있었다(이 부분은 제대로 메모하지 못했다). 데이비드 린은 국제적인 합작 영화를 계속 성공시켰다. [라이언의 딸] 같은 작품은 심지어 1년 동안 극장에 걸려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평론가들은 그가 영국에서 만든 [밀회] 같은 소품에 가까운 영화들을 더 좋아했다. 어느 자리에선가 데이비드 린은 유명한 평론가 폴린 카엘을 만났는데, 혀가 매서웠던 폴린 카엘은 데이비드 린을 계속 물고 늘어졌다. 마침내 화가 난 데이비드 린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제가 40년대풍의 레터박스 흑백영화만 찍으면 좋겠느냐고 묻자 폴린 카엘은 컬러까지는 봐드리겠다고 대꾸한다. 이에 데이비드 린은 자신에게 반성할 점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이후 14년 동안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김영진 평론가는 폴린 카엘이 훌륭한 평론가이기는 하지만 그런 비난은 부당한 것 아니었느냐고 이야기한다.

데이비드 린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잡역부로 시작해서 10년 동안 스튜디오에서 편집하는 일을 했다. 한때는 그 스튜디오에서 나오는 모든 영화를 데이비드 린이 편집하던 때도 있었으며 산책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으로는 편집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경력을 가진 데이비드 린은 고전적 편집 스타일의 대가로 일컬어진다. 대표적인 예로 [위대한 유산]의 첫번째 시퀀스 같은 경우로,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완벽하게 함축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관객들을 정말 들었다놨다 했다. 첫 번째 시퀀스에서 주인공은 무서운 나무를 보고 움츠러들고, 거기서 탈옥수를 만나는데 그 장면에서 관객들이 놀라는 것을 객석에서 본 데이비드 린은 됐다, 이 영화는 성공이다,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위대한 점은 대사가 없는 씬에 있는 것 같다고 김영진 평론가는 이야기한다. 로렌스가 사막으로 나가서 혼자 생각하고 그걸 두 아랍 소년이 쳐다보는 장면, 그 장면을 보면 꼭 사막이 영화의 주인공인 것처럼 보인다. 로렌스는 왜 사막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깨끗하니까, 라고 대답하는데 그것은 다른 세계에 있지만 자신이 지금 있는 이 세계에 매혹된 나머지 이 세계에 속하고 싶은 로렌스의 내면과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 매혹을 사막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영화에는 영화사상 가장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가 있는데, 무명의 오마 샤리프를 스타로 만든 장면이다. 주변에서는 자르자고, 디졸브로 하자고 했지만 데이비드 린은 완고하게 고집을 지켰다. 이 장면을 위해 촬영감독 프레디 영은 750mm 장초점 렌즈를 제작했다. 그 장면은 바로, 영화 초반부에서 사막에 있는 오마 샤리프가 하나의 점처럼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는 흐릿한 점처럼 들어와서 로렌스와 마음을 주고받는 고귀한 야만인이 된다.
1950년대, 60년대는 다국적 스펙터클의 전성시대였고, 데이비드 린의 성공과 대비되는 대표적인 실패의 사례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클레오파트라]가 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돈이 들어갔고, 실패함으로써 영화사를 휘청거리게 한 작품이다. 그런데 지금 이 영화를 보면, 이 영화는 실패작은 아니다. 클레오파트라가 로마로 들어오는 장면 같은 경우, 지금에야 CG로 모든 것을 처리했겠지만 그때는 그 로마 거리를 실제로 지었다. 그 수많은 엑스트라들도 실제로 동원했고. 그 장면을 찍는 순간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진짜 클레오파트라가 되지 않았을까. 데이비드 린의 [닥터 지바고]는 스페인에서 찍었는데, 도중에 러시아 혁명과 관련된 몹씬이 하나 나온다. 그런데 이 장면을 촬영할 때 엑스트라들 중에는 스페인 내전 참전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그 장면을 찍으면서 몹시 울었고, 자신들이 체험한 혁명적인 상황에서의 고양된 분위기를 그대로 그 장면에 전달했다. 실제 시위가 일어난 것으로 오해한 경찰이 출동했었고, 경찰에 포위된 상태에서 밤새도록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닥터 지바고]를 보면 그런 아우라가 그대로 스크린에 전염된 느낌을 주는데 [아라비아의 로렌스]도 마찬가지다. 아우다 아부 타이 족장의 마을이 펼쳐지는 장면도 요새는 다 CG로 그려내지 않겠는가. 아카바 점령 시퀀스도, 변변한 전투 장면이 없다. 그냥 아랍 군대가 말을 타고 한번 쭉 밀고 들어가면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변변한 전투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교하고 스펙터클하다. 대작으로 보기에 불만이 없는 것이다. 이런 아날로그적인 질감, 스크린에 담겨있는 정서는 오늘날 재현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고 김영진 평론가는 이야기한다.

데이비드 린은 매체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난 감독이었다(무성영화를 찍던 감독들의 활동기를 김영진 평론가는 마지막 거장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 같다). 가령 존 포드 같은 감독은 의외로 와이드스크린에 잘 적응하지 못했는데 데이비드 린은 스탠더드에서 와이드스크린으로 넘어오면서 안소니 만과 더불어 랜드스케이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막 가서 찍은 모 영화(아는 사람들은 다 알만한 그 영화, 감독은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생각하고 갔겠지만)가 있는데 보면 사막에 왜 갔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김영진 평론가는 말한다. 실제로 사막에서 영화를 찍기란 어렵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면 그 사막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지만, 실제 사막은 거대한 모래사장이다. 아무리 구도를 잡아도 그림이 안 나오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등장인물의 얼굴에 집중하게 되는데 와이드스크린은 인물을 센터로 놓는 데 적합하지 않다.

데이비드 린은 자기 연출이 형편없다고 울었지만 장교클럽 시퀀스는 그의 연출력을 잘 보여준다. 실제 그 안에 담겨 있는 얘기는 사소하고 내용도 별 게 없지만 데이비드 린 감독은 그 몇 분 사이에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복잡한 감정과 로렌스가 처한 상황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데이비드 린은 터키 장교에게 겁탈당하는(김영진 평론가는 아마 그렇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한다) 장면 같은 것을 대단히 미묘하게 표현하는데,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대한 김영진 평론가의 결론은 이 영화는 인간에 대한 정의를 굉장히 신중하고 겸손하게 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아우다 아부 타이 족장 조차 나름대로의 지혜를 가진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요새 영화들을 보면 어떤 영화 제목대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인간을 함부로 정의하는 영화들이 많고, 최근의 인터넷 문화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판관인 것처럼 남들을 단죄(그러다 작년에 최모 배우가 죽지 않았느냐고 김영진 평론가는 이야기한다)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비판하고 있다. 김영진 평론가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한 인간의 여백과 매력, 결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고 그것은 한 인간의 삶에서 몇 개의 레이어를 추려내어 보여주는 느낌이 든다는 말을 한다. 여전히 진행중인 에픽이며, 이 영화에서 소개된 것은 각각 인간들의 일면일 뿐이다. 이어서 그는 데이비드 린의 [밀회]를 관객들에게 추천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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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de 2009.06.24 14:26 address edit/delete reply

    후기가 너무 재밌네요, 꼭 보고싶어졌어요, 쓰지않던 마음과 뇌뒤쪽을 건드려주는것이 영화와예술의 역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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