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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시네마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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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를 지키기 위해서...
by cinequanon

'시네마테크'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9.08.13
    극장, 씨네큐브, 그리고 시네마테크 (1)
  2. 2009.04.19
    [시네마테크]의 공모제 전환 반대 성명서
  3. 2009.03.09
    첫 번째 '친구들 영화제' 한창 이던 2006년
  4. 2009.03.03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나를 성숙시키는 곳
  5. 2009.02.27
    '우리들의 시네마테크'
  6. 2009.02.27
    [네오이마주] 우리들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지켜라!
  7. 2009.02.27
    [경향신문]“시네마테크는 어디로…” 영화인들 ‘분노의 토론회’
  8. 2009.02.27
    [경향신문]영진위는 왜 ‘시네마테크’를 흔드나
  9. 2009.02.27
    시네마테크 온라인 관객 서명운동! (483)
  10. 2009.02.27
    시네마테크 관객 서명운동 성명서 전문 (2)

언젠가 소쿠로프의 영화를 보면서 옆 자리의 애인 몰래 숨죽여 눈물을 흘리던 때가 있었다. 막 추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나는데, 그때 극장에서 보았던 그의 영화들에 너무 빠져버려 순간순간 눈물을 도저히 참아낼 방법을 몰랐다. 그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소쿠로프의 영화들을 시네마테크에서 보면서 나도 모르게 탄성을 냈던 것은 정확히 세 번이었다. 하나는 <러시아 방주>, 다른 하나는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첫 장면은 서로를 강하게 보듬어 안는 아버지와 아들의 클로즈업으로 시작된다. 얼핏보면 아픈 아들을 끌어안는, 혹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묘한 감정들을 나열한 듯 읽혀지는 이 장면은, 영화가 중반을 지날 때즈음 그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크린 속의 두 인물,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살짝 끌어안는 그 장면에서 감정을 이기지 못한 어떤 무언가가 가슴 속에 치밀어 올랐던 순간. 그때 반사적으로 생각했던 단어는 '상처'였다. 지금은 내가 왜 그랬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두 인물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너무 힘이 들었다. 서로를 보듬는 손길, 그 손길 하나하나에 아픔이 서려있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 이후의 일은,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내게 <아버지와 아들>은 그 단 한 순간만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영화를 다 보고나니 코끝이 시렸다.

언젠가부터 극장에 가는 간격이 뜸해지거나 엄청 바쁜 일이 생겨 한 달 동안 시네마테크를 찾지 못하는 시간이 생기면 이유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뻔질나게 극장을 들락거리고 기웃거리던 때 막 생긴 그 감정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네마테크를 향한 죄책감은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지만, 극장을 찾지 못하거나 다른 일을 우선으로 두어야 할 때 나에겐 여전히 그것이 '길티'로 작용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고 아무런 연고도 없었지만, 나는 그냥 그걸 '죄책감'이라는 단어로 치부했다. 내가 유일하고 홀가분하게 극장을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은 긴 여행을 떠나는 시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별로 쉽지는 않았다. 여행을 떠나있는 동안 시네마테크를 생각하고, 미친듯이 그 지역 주변의 극장을 찾아다니며 기어코 무언가를 보고나서야 성질을 죽이곤 했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그랬던 것 같다. 예전에는 그런 것을 느끼는 자체를 소중하고 우월한 감정이라 생각했다. 그냥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사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더라. 덕분에 작은 모니터로 영화들을 찾아보는 것이 조금은 불편해졌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 주, 상영관이 별로 남지 않은 <차우>를 보기 위해 처음으로 신림역 앞에 있는 '롯데시네마 신림'지점을 찾았을 때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그곳은 지금의 강북권이나 강남역, 코엑스를 포함한 강남권보다는 조금 극장소식이 늦은 지역이기 때문에 메가박스 코엑스와 같이 다양한 상업영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단지 <차우>를 이용하기 위해 그곳을 찾았던 것이다. <차우>는 재미있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정작 <차우>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앉아있는 불특정다수의 관객들이 이용하고 있는 바로 '그' 극장 자체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엄마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 조조를 보기 위해, 조금이라도 돈을 더 아끼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선 청소년들, 그들에게 그 극장은 어떤 의미였을까. 소비적. 소비적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강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은 그 극장이 없어진다면 다른 곳을 찾아, 그것도 아니면 그냥 집안에서 텔레비젼을 통해 영화를 볼 것 같았다. 만일 그 공간의 그 극장이 없어진다면, 그들은 별로 동요할 것 같지 않았다. 물론, 그때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은 아주 크나 큰 아집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솔직히 말하면,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극장의 관객은 유동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왠지모르게 침울한 생각마저 들었다. 아침 일찍부터 <차우>를 보고 온 그 날은 하루종일 우울했다.

그리고 얼마 후, 씨네큐브의 운영이 중단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네마테크는 크게 위기를 느꼈던 곳이지만 씨네큐브는 조금 달랐다. 어느 순간부터 상류층 엘리트들의 소유가 되어버린 듯한 극장의 주변 건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상영되는 극장은 예외였다. 광화문 벨트를 만든 장본인은 씨네큐브였기 때문에, 나는 늘 그곳을 통해 미로스페이스로 걸어나갔고 그곳을 통해 교보문고로 사라졌다. 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볼 수 있다는 어떤 자신감, 그런 이유없는 자신감이 씨네큐브 앞 조형물을 지날 때마다 가슴을 두드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극장이 없어진단다. 손을 쓸 수도 없게 되었다. 무언가 내가 할 일따위는 없었다. 운영을 그냥 그렇게 정해버렸으니 관객은 어쩔 수 없었다. 참 답답한 것이더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오늘 우연히 들른 씨네큐브 홈페이지에 쓰여있는 글들도 그런 느낌이었다. 건조함, 건조한 느낌. 더이상 그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그런데......... 그런데 씨네큐브와 반사적으로 연상된 극장은 시네마테크였다. 시네마테크의 위기는 늘 있었지만, 지난 2월의 타격은 예상보다 지나치게 크게 다가왔다.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어야 할 공간을 빼앗긴다는 자체가 목을 죄어왔다. 의자가 불편해도, 극장이 춥고 좁아도, 그래도 그곳은 견딜 수 있었다. 그곳은 '시네마테크'였으니까. 다른 어떤 이유도 필요하지 않았던 곳이다. 메가박스를 찾을 때 나는 늘 디지털 상영, 혹은 M관이나 1,2관과 같은 크고 안락한 상영관을 찾아 다닌다. 그리고 그곳에서 애인과 시시덕거리며 팝콘을 통째로 없애버리는 것을 좋아하고, 상영 전 광고를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시네마테크의 의미는 그런 극장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그곳은 유일하게 영화라는 매체에 온전히 정신을 놓을 수 있는 것이 가능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덜컥 겁이 났다. 만약 시네마테크가 한국에서 사라진다면, 극장의 운영이 더이상 불가하다면, 나는 어디에 어떻게 다시 정을 붙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한국에 다양성 상영관은 많지만, 그곳만큼 애정을 쏟고 정을 주었던 곳은 없었다. 그곳을 가지 않는 날은 나에게 '길티'였으니까.

나는 극장을 옹호하지 않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지금의 영화학도들, 그리고 이십대의 우리 또래들, 몇몇 다수의 그들이 찬양하는 '방 구석 모니터'의 전설을 믿지 않는다.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보다 개개인의 집구석에서 밝혀질 때, 그 가치가 살아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으니 굳이 극장을 택할 이유가 없다는 말, 그건 그냥 개소리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쏟아진다는 자체를 혐오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를 욕해도 상관없다. 영화는 극장에서 탄생했고 앞으로도 극장에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 어떤 부잣집에서 돌비 채널을 갖추고 초대형 스크린을 걸어 홈씨어터를 구비한다고 해도, 나는 그 장비들이 허름한 극장의 발 끝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싶다. 어느 날 극장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그건 생각도 하기 싫다. 그곳은 '진짜' 영화가 있는 곳이 아니던가. 시네마테크 시간표를 스윽 한 번 훑는다. 저 곳이 없어진다면 더이상 무얼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을 처음으로 극장에서 보았던 날.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를 모니터로만, 텔레비젼으로만 훔쳐보다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만났던 날. 차이밍량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면서 등 뒤로 서늘한 물줄기가 흐르는 경험을 해본 일이 있는지. 벨라 타르의 <사탄 탱고>를 스크린으로 보며 러닝타임 세 시간 반이 넘어가는 바로 그 시점에서 희열을 느꼈다. 집에서, 강의실에서는 절대 하지 못할 그 무수한 경험들. 그런 모두의 경험들이 서려있는 곳이 극장이고, 그러한 경험의 역사가 이어지는 곳이 시네마테크다. 나는 이러한 감정들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의 존속과 존재를 믿는다. 설령 그것이 과거의 유물이라고 해도 말이다.

 

극장은 소비의 공간이 아니라 필수불가결의 공간이다. 극장은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아야만 하며, 세기말 후 육지에 생존한 바퀴벌레처럼 관객을 사로잡아야 할 의무를 가진 공간이다. 그곳은 영화와 나, 그리고 영화와 당신, 단 둘이서만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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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eziac 2009.08.21 08:0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녕, 용문객잔] 저도 극장... 시네마테크, 씨네큐브에 추억이 많아 요즘 들리는 소식들에 안타까움을 많이 느끼네요. <칠레전투> 시리즈를 연이어 만났던 아트큐브에서의 어느 일요일, 잊을 수 없습니다.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의 공모 전환에 반대한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시네마테크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영화문화 활성화에 노력해왔던 시네마테크는 지금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2002년부터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이하 ‘한시협’)와 전국의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주도적으로 추진해 온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사업비의 일부를 지원해 왔다는 것을 빌미로 관리, 통제하겠노라고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영진위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현행 지원을 ‘공개 공모’로 전환하겠다고 통보한 것이 사건의 시작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의 영상문화를 선도하고 공공문화 활동에 대한 중장기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할 영진위가 그간 어렵게 구축해 온 국내 시네마테크 활동 기반을 뒤흔들고 있는 현실에 대해 한시협은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

 

 

사건 경과

 

한시협은 지난 2월 2일(월), 2009년 3월부터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을 공모로 전환한다는 영진위의 급작스러운 통보를 받았다(한시협의 회계연도는 3월부터 익년 2월까지이다). 기존의 모든 지원사업을 공개 공모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의 강한 의지이기 때문에 영진위는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을 불가피하게 공개 공모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어서 2월 11일(수)에는 영진위로부터 2월로 2008년도 시네마테크 사업이 종료되며, 3월부터는 공개 공모 절차를 통해 업무위탁사업자를 선정을 추진할 예정이니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는 일방적인 내용의 공문이 전달되었다.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을 공개 공모로 전환하겠다는 영진위의 결정은 지난 10여 년간 영화문화의 다양성을 위해 한시협이 주도해 온 시네마테크 활동을, 경쟁과 공모라는 산업논리를 통한 관주도의 사업으로 전환하겠다는 지극히 비상식적인 발상이다. 영진위가 시네마테크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네마테크를 ‘선정’하고 ‘관리’하고 ‘주도’하겠다는 것은 주객전도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을 공개 공모로 전환하는 중대한 결정을 사전 논의과정이나 영진위 내부의 의견조율, 혹은 사업의 지원방식 변경에 대처할 유예기간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에 한시협은 ‘시네마테크의 공모전환을 반대한다’는 영화인들의 서명이 담긴 의견서를 영진위에 전달하며 영진위와 다각도로 이 문제에 대해 접촉을 시도했다. 이에 영진위는 2월 25일(수), 공모 전환의 시행을 2010년으로 미룬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2월 27일(금)에는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의 공모 전환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전문가 간담회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공모제는 한시협 활동의 법률적인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만을 남기고 정작 공모제 강행의 중심에 서 있으며 이날 간담회를 주재하기로 한 강한섭 위원장은 어이없이도 먼저 자리를 떠났다. 이날 영진위는 2008년도 국감 결과 시정 및 처리요구사항 중 ‘공모사업 수행 시 특정단체에 편중하여 기금이 지원되지 않도록 공모사업 및 위탁사업의 전반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을 공모제 전환의 유일한 근거로 제시했을 뿐으로, 지난 10여 년간 민간의 힘으로 척박한 국내 환경을 개척해 온 시네마테크 사업에 대해 아무런 정리된 입장이나 정당한 평가도 표명하지 못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중차대한 사안이 그때까지 한 번도 영진위의 의결기구인 9인위원회에서 보고안건으로조차 정식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현재 영진위가 어떤 원칙이나 철학도 없이 위원장 개인의 의지에 따라서 좌우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 사례이다. 이날 시네마테크 지원사업 공모 전환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추궁 받은 영진위는, 2010년 이후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에 대해서 내부 논의를 거쳐 결정된 사항을 통보하겠다는 내용의 세 번째 공문을 서둘러 발송했다. 공모제를 강행하고자 하는 의욕만 앞설 뿐, 지원사업에 대한 영진위의 소신은 흔적조차 사라져 허둥대는 모습에 당혹감을 넘어 참담하기까지 하다.

 

 

한시협과 국내 시네마테크 활동의 현 주소

 

한국의 시네마테크 활동은 90년대 초반부터 자생적으로 활동하던 국내의 시네클럽들이 90년대 후반에 들어서 고전영화의 필름 상영회를 진행하며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고전영화의 필름상영회가 양적, 질적인 면에서 큰 도약을 이루면서 전국에 흩어져 있는 시네마테크 단체들은 좀 더 집중적이고 지속적으로 시네마테크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안정적인 시네마테크전용관의 설립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기존에 활동하던 전국의 15개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연합하여 2002년 1월 25일 한시협을 출범했으며, 같은 해 5월 10일에는 전국 시네마테크 단체들의 숙원인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가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서 개관하였다. 그 과정에서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사업이 영화문화 다양성을 활성화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 전용관의 임대료를 포함한 사업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2002년에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한시협은 전국적인 시네마테크 단체들을 대표하면서 국내의 시네마테크 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공공기관이라는 사명감 하에 비영리 상영방식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이를 위해 한시협은 영진위의 지원금 외에도 다양한 자체 수익사업 및 후원사업을 전개하여 재원을 조달했으며, 국내외의 많은 문화단체, 관공서 등과 부단한 네트워킹 구축을 추진하는 등, 민간 비영리 방식의 한계인 재정적인 어려움과 제도적인 공백이라는 힘겨운 여건 하에서도 활동의 공공성을 유지해 왔다. 또한 시네마테크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 운영사업 외에도 한시협은 주요사업인 지역 시네마테크네트워크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여, 전국의 시네마테크 단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순회상영, 지역인력교육, 지역자립형 사업지원 등 전국 시네마테크 인프라의 구축과 확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지난 8년 간 한 해 400편이 넘는 고전, 예술, 독립영화를 상영하며 이제는 명실상부 영화인들과 영화애호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표적인 영화관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창호, 이명세, 박찬욱, 봉준호 등의 영화감독, 황정민, 유지태, 류승범, 문소리 등의 배우, 정성일, 김영진 등의 영화평론가들 또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라는 후원조직을 결성, 매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개최하며 시네마테크를 홍보하고 또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네마테크 사업에 대한 공적인 지원은 아직도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매년 조금씩 시네마테크에 대한 영진위의 지원이 증가하긴 했지만 현재 영진위의 지원이 시네마테크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0% 선에 머물고 있다. 시네마테크 상영 활동, 특히 서울아트시네마의 경우에는 비영리 상영방식인 기획전을 중심으로 연중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인 재정난을 피하기가 불가능하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 한시협은 안정적인 재원 확보를 위해 다각도로 힘쓰고 있지만 막대한 임대료, 날로 치솟는 물가와 해외 상영료, 운송료를 감당하기가 벅찬 것이 현실이다.

 

서울의 현실이 이럴진대 지역을 포함한 다른 시네마테크 단체의 경우에는 사정이 더욱 열악하다. 각 지자체와 개봉관들의 시네마테크 활동에 대한 몰이해로 높은 대관료를 주어가며 상영관들을 전전하고, 또 열악한 재정으로 전문 활동인력의 형성이 어려운 지역이 아직도 많다는 것은 현행 시네마테크 사업에 대한 재정적, 제도적인 지원의 한계를 보여주는 반증 사례이다.

 

 

시네마테크 사업의 공모제 전환과 최근 영진위의 행보에 대한 한시협의 입장

 

그런데 왜 영진위는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금까지의 지원을 중단하고 ‘공개 공모’로 전환하겠다고 통보한 것일까? 최근 언론에 오르내리는 기사에 따르면 영진위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단체지원 사업이 한국독립영화협회, 영화인회의, 제작가협회, 영화인협회 등 소수단체에 40%가 집중 지원되고 있으므로 형평성 차원에서 단체지원 사업의 추진방식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받았고, 이를 위해 "공모사업 수행시 특정 단체에 편중하여 기금이 지원되지 않도록 공모사업 및 위탁사업의 전반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영진위는 문광부의 압력이 있고 정치인들의 지적이 있었기에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을 공모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궁색한 변명일 뿐만 아니라 영화문화를 지원하는 영진위의 위상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정치적인 외압 때문에 영진위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을 ‘공개 공모’로 전환하는 결정을 했다면 이는 영진위 스스로 정치논리에 놀아나 영화문화를 저버리는 무책임한 행동을 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영진위는 정치적인 외압에 맞서 영화문화를 옹호하기 위한 정당한 주장을 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올해 영진위가 한시협에 보여준 행동과 태도들을 볼 때, 영진위는 적절한 자기 논리도 없이 정치적인 외압에 굴복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영진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서둘러 시네마테크에 대한 현행의 지원을 중단하려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네마테크의 '공모'와 관련한 공식적인 발언이 지난 2월 9일이었고, 이후 한 달 이상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러한 '공모전환'이 영진위 내부의 공식 결정인지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제까지도 영진위는 공모제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을 뿐 어떤 개선방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한시협은 2009년도 총회를 거쳐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에 대한 영진위의 공모제 전환 움직임에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힌다.

 

한시협은 최근 영진위의 이러한 일방적인 행보가 시네마테크와의 문화적 합의를 깨는 중대사안이라 판단한다. 민간 영역에서 진행해 왔던 시네마테크 사업을 영진위가 사업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형태로 보조해 왔을 뿐인데, 지금 영진위는 마치 시네마테크 사업을 그들의 자체 사업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순수 민간영역의 활동을 영진위가 사업주체가 되어 경쟁 입찰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한시협은 전국의 12개 시네마테크 단체들의 협의체로 현재 한국의 시네마테크들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대표성을 지닌 단체이다. 그런데 영진위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사업의 정당성이 공모제를 통해서 성립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난 10여 년간의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부정하는 몰염치한 태도이다.

 

영진위는 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단지 국정감사 지적 사항이라는 것만을 이유로 공모제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영진위는 지난해 위원장의 과시욕이 화를 초래하여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추진을 좌초시킨 데 이어 이제는 겨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국내의 민간 시네마테크 활동을 고사시키려고 나섰다. 한시협은 운영예산의 80% 이상을 공적자금으로 지원하는 서구의 시네마테크처럼 영진위가 지원 규모를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싶지 않다. 영진위의 문화적인 성숙도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네마테크의 지원기관으로서의 기본 역할까지는 망각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공모제를 강행하는 것은 국내의 시네마테크 활동을 10년 전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되돌리는 행위임을 영진위는 자각해야 한다.

 

이에 한시협은 문화적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며 국내 영화진흥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강한섭 위원장을 규탄하며 지금이라도 영진위가 다음과 같이 나설 것을 촉구한다.

 

   첫째, 영진위는 정치적인 외압에 스스로 굴종할 것이 아니라 비전문적인 정치인들과 관료의 일방적 주장에 맞서 시네마테크의 영화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소신 있게 관철하라!

   둘째, 영진위는 적절한 논리도,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의 공모 전환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

   셋째,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사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적, 재정적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라!

   넷째, 영진위는 지난 해 영진위의 잘못된 시도로 좌초된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서라!

 

한시협은 이와 관련해 영진위가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개선책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전국 시네마테크 단체들은 물론 영화인들, 관객들과 연대하여 공동행동을 전개할 것이다. 아울러 한시협은 시네마테크를 정치나 자본의 논리에 따라 좌지우지하려는 지금의 상황이 영화문화의 위기국면이라 생각해 올 한 해 동안 지속적으로 이러한 문제와 관련한 포럼과 대중적인 논의, 영화인들의 결속을 이뤄내는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결의한다.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광주시네마테크, 대구시네마테크,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대전시네마테크, 문화학교서울, 서울시네마테크, 시네마테크부산, 시네필전주, 영화사진진 시네마테크사업팀,

씨네오딧세이(청주), 씨네아일랜드(제주), 퀴어아카이브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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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무엘 풀러의 <충격의 복도> 상영 후 류승완 감독과의 GV 때였어요.

이때 참 잊을 수 없는 말을 들었죠, '영화는 늘 그곳에 있다'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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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친구들영화제 웹데일리에 송고된 글입니다.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나를 성숙시키는 곳

시네마테크에 관한 단상


내게 있어 시네필이라는 말은 아직 너무나 멀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영화를 좀 열심히 본다고 누구나 시네필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영화는 물리적 시간의 흐름을 동반한다. 장편영화로 치자면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다. 어떤 영화가 10년의 이야기를 하건, 10분 안에 이루어진 일들의 이야기를 하건 간에 관객은 자신의 시간을 영화에 투자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나는 당대 내노라하는 시네필로 불리는 선배들에 비해 영화를 본 물리적 시간 자체가 짧다. 나는 아직 이십대 초반이고 세상의 유혹이라는 핑계를 대며 영화에 시간을 많이 소요하지 못한 학생일 뿐이다.


프랑수와 트뤼포는 22살 까이에 뒤 시네마에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글을 써서 당시 프랑스 영화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물론 22살의 혈기에 썼기 때문에 조금 거친 문체가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글을 읽으며 그의 열정과 용기를 하염없이 부러워한 적이 있다. 프랑스 나이로 하면 나는 이제 트뤼포와 동갑이 된다. 나는 영화에 대해, 영화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트뤼포처럼 배짱 좋게 소리칠 깜냥도 내공도 되지 않는다. 사실 고백하자면 깜냥은 고사하고 지금 쏟아지는 수많은 영상물 속에서 나를 다잡기도 어렵다.


2009년 서울에서 살아가는 내가 볼 수 있는 네모난 화면은 너무도 많다. 브라운관, 모니터, 전광판, PMP, 그리고 스크린까지. 이것은 영화를 포함한 모든 영상물을 만날 매체가 다양해진 것을 뜻한다. 수많은 매체가 쏟아내는 수많은 이미지들, 상투적으로는 이를 '이미지의 홍수'라고들 한다. 집에서 TV리모콘으로 채널만 돌리고 있어도 케이블 프로그램을 통해 홈 비디오카메라로 찍은 듯 한 작은 영상물부터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여 만든 할리우드의 현란한 CG화면까지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질적으로 차이가 큰 이미지들이 단순히 채널이라는 대등한 위계로 나에게 다가온다. 난 이따금씩 춤추고 노래하는 어린 가수들의 몸짓에 머뭇거리기도 하고 내셔널지오그래픽의 깨끗하고 화려한 화면에 매혹되기도 한다. 이렇게 쏟아지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내 마음은 아무리 다잡으려 해도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린다.


시네마테크는 이런 환경에 갇힌 내가 찾아가는 유일무이한 곳이다. 고전을 향유한다는 것, 고전 속에서 현재를 살기 위한 보는 눈을 기른다는 것. 난 그것을 시네마테크에서 보고 배웠다. 이런 말은 짐짓 진부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진리에 가깝다. 시네마테크에 가면 고민 고민하고 공을 들여 찍어 놓은 수십년 혹은 십수년전의 이미지들이 내 눈 앞에서 춤을 춘다. 동시에 내 마음에도 자막이 뜬다. “그래, 이게 영화잖아”라고. 네이트온 메신저에서 치면 파란 줄이 그어지며 뜨는 그토록 흔하고 유동적이던 ‘영화'라는 단어는 시네마테크에서는 고정적인 어떤 것이 되어 버린다. 영화에 대한 내 편협한 감정과 사랑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시네마테크 안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시네마테크에서 보았던 영화들은 언제나 나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때로는 학교에서보다 더 큰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고다르 후기작들이 던졌던 삶과 전쟁에 대한 질문을 받아들고는 깊은 한숨을 쉬며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로메르가 작품을 통해 한수 가르쳐준 연애기술은 나름 실생활에도 써먹을(?) 혹은 써먹고 싶을 만한 기술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했다. 나에게 있어 시네마테크는 끊임없는 질문으로 한 발짝씩 나아가게 하는 단연 성숙의 공간이다.


그리고 내게 또 다른 의미로 시네마테크가 중요한 것은 친구들이라는 존재 때문이다. 시네마테크에는 늘 친구들이 있다. 굳이 약속을 하지 않아도 늘 극장에 가면 거기엔 친구들이 있었다. 같은 영화를 보고 나오면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 생겼다는 생각에 말 한마디를 더 하지 않아도 이상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많은 영화를 같이 보았고 그렇게 그곳에 함께 있었던 거다.


내게 있어서는 배움터이며 안식처고 만남의 광장이기도 한 시네마테크에서 나는 올해까지 2년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웹데일리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친구들과 함께 친구들 영화제에서 일하게 된 것이 행운이라 느낀다. 이 일을 통해 새로운, 그리고 소중한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으니.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는 겨울마다 시네마테크에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이 복작거렸고 재미난 영화들이 풍성했다. 영화제에서 나를 포함한 데일리 친구들이 한 작업 중에는 주로 감독, 배우들이 자신이 추천한 영화에 관해 관객과 함께 얘기하는 시네토크를 정리하는 게 많았다. 어찌 보면 그것은 말을 글로 옮겨내는 단순한 녹취풀기가 아닌가 싶은데 그 자리에 그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보면 그건 단순한 녹취풀기, 그 이상이라는 걸 금방 알아채게 된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한번 배웠다면, 더 많이 고민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 번 더 배울 수 있는 배움의 배가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영화가 끝나 극장 밖을 나서면 별이 박혀있는 밤하늘 아래서 영화와 영화를 추천한 사람들에 대한 나름의 감상을 한마디 더 덧붙였다. 또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무슨 이야기든 더 하기 위해 종종 커피를 마시러 가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며 매 순간 영화만을 추억한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시간들이 내겐 너무나 황홀했던 시간이다. 아마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난 그 겨울의 시간들을 황홀함을 느낄 만큼 찬란했다고 기억할 것이다.


이제 봄이 되면 개강을 하고 난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이젠 어엿한 3학년이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시네마테크에 오기 시작했으니 난 학교와 시네마테크를 동시에 다니기 시작한 셈이다. 언젠가는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 딱지를 떼고 다시 학교에 갈일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네마테크는 다르다. 내가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거나 상관없이 여전히 들락거릴 것이다. 더 불어난 이미지의 홍수에 갈피를 못 잡을 때면 또 시네마테크에 와서 영화를 보고 ‘이게 영화야’라고 되뇔 것이다. 혹은 영화를 보고 붕 떠서 아쉬운 마음에 함께 영화를 본 어떤 친구에게 커피를 마시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의 위기설이 나도는 등 정말 비상식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쩔까 하는 걱정에 마음이 무겁다. 이제 불어올 봄바람이 이 무거운 마음을 가셔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바람이 이루어져 늘 바로 이 곳, 여기 시네마테크에 영화를 보러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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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는 2009년 현재, 낙원상가 4층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시네마테크 단체를 결성했고, 2002년 이후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하였습니다. 낙원동 돼지국밥 골목을 지나야 모습을 드러내는 낙원상가, 그리고 그 곳의 시네마테크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로 가득합니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다소 열악한 환경의 극장이지만, 서울아트시네마는 지난 몇 년간 영화에 관한 건강한 대화가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자리잡아왔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문화발전과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 힘쓰는 비영리 민간 단체로 구성되어있으며,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던 영화인들, 그리고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애정의 결정체입니다. 우리가 아는 수 많은 영화인들이 시네마테크를 지지하고 있으며, 당신이 아는 수 많은 얼굴들이 시네마테크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객들이 홀로 이 곳을 찾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모두 함께 같은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시네마테크입니다. 외국의 시네마테크들은 정부나 기타 단체의 철저한 지원과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시네마테크는 아직까지 민간 단체의 힘으로 일어서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그리고 많은 관객들의 소망과 희망이 서린 이 곳은 영화의 성지이자 '좀 더 나은'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우리들의 시네마테크' 팀블로그는 2009년 2월,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네마테크 공모제 전환 반대와 함께 시네마테크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을 한 곳에 담아보고자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네이버 카페 '카페 서울아트시네마'를 통해 활동하는 관객 몇 분이 우선적으로 팀블로그 활동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 2월 27일 현재, 영화진흥위원회는 공모제 전환을 1년 연기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은 '1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시네마테크, 관객들의 것인 우리들의 시네마테크는, 지금 역으로 위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오프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것과 함께, 이 곳에서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000명을 목표로 하는 서명운동이 끝난 후에도, 이 곳이 시네마테크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이 녹아있는 곳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극장을 지키기 위해 모였습니다. 어떤 다른 이유 없이, 우리의 추억, 그리고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모였습니다. 시네마테크는 관객의 것입니다. 시네마테크는 오로지 영화만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성소와 같습니다. 우리들의 시네마테크가, 다른 어떤 압력에도 구애받지 않고 온전히 '영화를 위한 신전'으로 영원히 자리잡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음 안내된 문서는 모두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http://www.cinematheque.seoul.kr)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2002년 1월, 전국 15개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연합하여 출범하였습니다. 2002년 5월 10일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를 개관하여 다양한 시네마테크프로그램을 통해 영화문화의 터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서울아트시네마를 시작으로 앞으로 각 지역까지 시네마테크전용관이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설립취지

문화유산의 올곧은 보존이 그 나라 문화발전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임은 자명하다. 영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일찍부터 영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의 올바른 방향의 발전을 고민해 온 여러 나라에서는, 시네마테크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영화를 보존하고, 자라나는 다음 세대와 그것을 공유하는 작업을 당연히도 지속해왔다. 각 국의, 혹은 각 지역의 크고 작은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박물관이자, 일반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문화공간이 되어 왔다. 그리고 영화인을 꿈꾸며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영화적 자양분을 공급하는 교육공간으로서 역할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시네마테크는 영화적 현실을 풍부하게 하는 중요한 문화적 제도로 자리잡게 되었다.

자국의 영화산업을 지켜내지 못하고 사멸시켜온 수많은 나라들과 달리 근래 한국은 적어도 산업적인 측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해 왔고, 그 결과 한 발 앞서 영화를 시작했던 나라들로부터 미래의 향방을 주목받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산업에만 치우친 이러한 발전은 영화를 편향되게 흘러가게 할 우려를 낳고 있으며, 이것은?시네마테크?라는 외래어가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억해야할 유수한 과거 한국영화들 뿐만 아니라 이미 그 가치를 인정받은 세계적인 영 화문화 유산들을 보존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개념이 아직 우리에게는 자리잡고 있지 못한 것이다. 전에 없는 성장과 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의 영화산업이 보다 내실을 기하고, 그것이 일시적인 거품으로만 존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문화적 가치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필요하다. 시네마테크라는 활동과 공간이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 우리는 생각한다.

영화문화의 다양성을 보장할 토대가 자리잡지 못한 현 상황에서 우리는 그 대안이 될 시네마테크 활동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그 활동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를 결성한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이미 각 단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시도하고 있는 시네마테크의 제반 활동을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힘쓸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영화문화를 보다 다양하고 깊이 있게 할 원동력으로서, 다양한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일반시민들에게 제공하고, 나아가 한국에서도 보다 가치 있는 영화가 생산될 수 있는 문화환경을 조성하며, 영화를 둘러싼 보다 깊이 있는 논쟁과 토론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연혁    
 
• 2002년 1월 25일 창립 총회를 통해 발족  
• 4월 11일 사단법인 인가 (문화관광부)  
• 5월 10일 서울아트시네마(시네마테크전용관) 개관식 및 개관기념 영화제 
• 2005년 4월 4일 서울아트시네마(시네마테크전용관) 낙원상가((구)허리우드 극장)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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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저작권은 네오이마주에 있습니다.



지난 1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즈음하여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는 시네마테크사업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를 꺼낸 바 있다. 중차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안이 첨예하고 민감한데다가, 사실 확인이 모호한 상황에서 먼저 움직이는 것이 이롭지 않다는 판단이 섰기에 이 내용은 의도적으로 기사화하지 않았다. 그런데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다름 아닌 시네마테크 전용관 위탁사업을 공모제로 변경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쉽게 설명하면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는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와 미디어 센터 ‘미디액트’와 더불어 영화진흥위원회의 위탁사업 수행기관 중 하나이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공간 임대료를 비롯한 기자재 구입비와 운영비는 이처럼 정부지원금으로 조달되어왔고 이것이 서울아트시네마 전체 운영비의 30%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위탁이 아닌 공모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계약 갱신을 불과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진위나 문화관광체육부가 출연한 기금으로 설립 운영되어온 기관이 아니다. 순수하게 민간이 주도하여 만들고 이어져온 민간 기관이라는 것. 다만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위탁사업의 형식을 통해 운영자금의 일부를 지원해왔을 뿐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민간이 시작해 힘들게 꾸려온 사업에 정부는 단지 위탁이라는 미명하에 운영비 일부를 지원해주었다는 것인데, 그것을 빌미로 이제 와서 그 사업의 주체를 자기들이 결정하겠다는 것이 논점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뒤에 거듭 말하겠지만, 자칫 영진위가 시도하는 공모제가 시네마테크전용관의 주체를 선정하기 위한 꽤나 정당하고 투명한 절차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확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서울아트시네마가 공모에 참여할지, 어떤 주체가 추가로 공모에 참여할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손 놓고 안이하게 결과를 기다리기에는 돌아가는 정황이 석연치 않다. 황급히 글을 쓰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래, 솔직히 고백한다. 이것은 선방이다. 상대를 넘어뜨리기 위한 피니시 블로우가 아닌 상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잽을 날리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할 이야기가 전혀 쓸모없는 기우에 불과했기를 바랄 따름이다. 진심으로 내가 별것 아닌 일에 호들갑 떤 우스운 인물이 되어버렸으면 좋겠다.


정부사업에서의 수의계약은 잡음을 만들어내기 일쑤였다. 특혜 시비와 부적격자 선정에 따른 부실문제가 뒤따랐고 여기에는 검은 돈 또는 외압이 개입되기 마련이었다. 공모입찰제로 바꾸고 공개경쟁을 통해 사업의 내실을 기하는 풍토가 확산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는 사업권자 선정 방법만 바뀌었을 뿐, 공모입찰제하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순진한 입찰자들은 자신들이 결정과정의 합법성을 증거 하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야만했다. 결국 문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제도가 아닌 제도를 운영하는 주체와 사람에 있었다. 

영진위의 시네마테크 사업권자의 공모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영진위는 “모든 위탁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라”는 문광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문광부의 주장은 이와 사뭇 다르다. “문광부는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고 지침을 내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어느 쪽의 말이 맞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제까지 민간 주도하에 운영해 온 시네마테크를 공모에 붙이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데 있다.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사업의 주체가 아니라 그 알량한 정부지원금의 대리 집행기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공모제로 전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요컨대 민간사업에 정부가 관여하여 간섭하고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서울아트시네마 측이 항변하자 영진위는 “어차피 공모할 주체가 없으니 빨리 응모할 수 록 서울아트시네마에 유리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설득하려 했다. 이 말은 마치 서울아트시네마 이외에 시네마테크전용관 위탁사업을 수행할 만한 자질과 경험을 가진 단체가 없어 보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제를 수행하는 것은 단순히 행정처리지침의 일환이요, 요식행위이니 서류만 제출하면 끝날 일이라는 것처럼 들린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영진위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특정 단체가 공모하고 심사 결과 서울아트시네마가 공모에서 탈락한다면? 결과는 간단하다. 지금의 장소에 머물 명분이 없으니 현재의 형태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만약 다른 단체가 공모한다면 어떤 곳일까? 현재로써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표면상 드러난 주체가 없는 마당에 섣부른 추측은 위험하다. 하지만 가늠되는 것이 없지도 않다. 사실 2008년 이후 영화계 일각에서는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에 대한 사업권자 교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곤 했다. 세간에서는 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를 대체할 사업자로 특정 단체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었다.

 

이쯤에서 혹자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그간 서울아트시네마가 펼쳐온 사업을 그 화려한 고전의 향연을 지금 그 어떤 단체가 순조롭게 해낼 수 있겠느냐고. 물론 나 역시 서울아트시네마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달리 보면 지극히 순진하고 위험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사업자 선정의 대상이 아닌 것을 가지고 논박하는 것은 상대의 술책에 말려드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분명이 알아야 할 것은, 시네마테크전용관은 영진위의 산하 기관도 아닐 뿐더러 공모를 통해 선정되기만 하면 운영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지난 7년간 해온 사업을 되살펴 볼 필요도 없이, 이제껏 우리들이 보아온 시네마테크는 비록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처럼 방대한 아카이브를 구성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간의 프로그램과 상영실적에 있어 시네필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무던히 애써왔다. 또한 고전 걸작의 상영에 그치지 않고 젊고 역량 있는 작가들을 소개하고 지원해왔으며 교육기관과의 연대를 통한 고품격 영화문화의 창달에도 힘써왔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을 통해서 뿌리내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은 지금도 한국영화의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때문에 오직 서울아트시네마만이 시네마테크의 주체이고 이것이 이 논란의 부질없음을 증명하는 이유가 된다. 

문화예술이란 것이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0년의 진보정권 시절 보수ㆍ우익 예술인이 상대적으로 소외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좌우 이념 논쟁을 부추기는 언론플레이로 ‘실리’를 챙기겠다는 ‘꼼수’를 부렸던 이들이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까지 노린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무엇보다 영화계에 발붙이고 있는 이들이 행할 도리가 아니다.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관객의 욕구에 부합할 만한 영화를 찍을 자신이 없으니까, 뱃속 편하게 고전영화나 틀면서 추억에 젖겠다는 건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세월까지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문화헤게모니는 그런 경로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한국영화가 걱정스럽고 한국영화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면, 빈약한 논리로 한 풀이를 도모하기 이전에 영화를 찍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모름지기 감독이란 영화로 말을 해야 하지 않나? 그럼에도 허황된 욕심이 피워내는 고약하고 불온한 냄새가 진동하니 그래서 노탐(老貪)이라고 하는 거다.


영화광이라면 저마다 자신의 영화적 고향 또는 모태로 삼은 공간이 있을 것이다. 70.80년대의 영화광들이 프랑스문화원과 독일문화원을 거점삼아 영화의 사회성을 고민했다면, 90년대의 영화광들은 문화학교서울(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터득했고, 이후 세대들은 시네코아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영화전용관을 두루 섭렵하면서 자신의 영화적 소양을 쌓아왔다. 그래서 누군가는 “나는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배웠다”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서울아트시네마는 단순한 영화관이 아니다. 사당동에서 소격동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숱한 영화지망생들이 꿈을 키워온 성소(聖所)에 다름 아닌 곳이다. 비록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는 격변의 시기일지라도 시네마테크전용관사업의 주체만큼은 특정집단의 입김과 이념의 제물로 전락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영진위의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자 공모 계획은 전면 백지화 되어야 한다.


시네마테크는 문화헤게모니의 거점이 아닌 문화유산이요 영화의 거처이고 기억의 장소이다. 이것이야말로 단순하지만 거대한 진실이다. 정녕, 문화관광체육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앙리 랑글루아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관장 직에서 해임했던 앙드레 말로의 전철을 밟겠다는 것인지, 지켜 볼 것이다.

 


 

2009.02.16
백건영(영화평론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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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저작권은 경향신문에 있습니다. 

정부의 영화정책에 대한 영화인들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이하 ‘한시협’)는 23일 시네마테크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시네마테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28일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날 서울시네마떼끄에서 상영될 예정이던 존 포드 감독의 ‘분노의 포도’ 상영은 취소됐다.

영화인들이 예정된 상영까지 취소하고 토론회를 개최하는 이유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시네마떼끄에 대한 지원을 공개 공모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서울아트시네마 등 국내 시네마떼끄들은 그동안 영화사적인 의미가 있는 영화들을 재상영하고 예술영화를 공유하는 상영공간으로 자리매김 해 왔다.

한시협은 “올 2월에 시네마테크에 대한 일부 사업비를 지원하던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이 공개 공모제로 전환될 위기에 처했다”며 “지금까지의 지원 제도로도 시네마테크 운영의 안정성이 보장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개 공모제 전환은 불안정성을 더 높이는 결과를 초래해 시네마테크를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화인들은 “2009년도 시네마테크 지원에 대한 공개 공모로의 전환 시행은 일단 유보되는 듯 보이지만 단지 시행일이 조금 미루어졌을 뿐, 당장 올해 중반이면 내년 사업 진행을 위한 시네마테크 지원사업 공개 공모의 공고가 진행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시협 측은 “지난 2008년에도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산 불용 처리로 안정적인 공간 확보를 위해 진행하던 복합상영관 추진안이 표류한 바 있다”고 비판했다.

한시협은 28일 열릴 토론회가 “영화인들과 관객, 시네마테크 관계자가 함께 참여하여 90년대 이래로 민간의 자율성과 활력으로 성장해 온 시네마테크가 직면하게 된 위기상황과 더불어 향후 대응 방향을 모색하고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28일 토론회에는 오승욱, 정윤철 감독과 영화평론가 김영진씨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한편, 영화인들은 지난 11일에도 영진위가 영화 제작지원을 상업영화와 비상업영화로 구분하는 방식으로 바꿔 독립영화 지원을 대신해 장편과 중편, 단편으로 나눠서 영화를 지원하도록 한 것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영화인들은 이로 인해 충무로에 기반을 둔 영화사들이 제작비 지원을 신청해 ‘다양성 확보’라는 본래 취지를 흔드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며 ▲정부의 지원정책 ▲독립영화 상영이 가능한 배급환경의 변화 등을 요구한 바 있다.

<경향닷컴 손봉석기자 paulsohn@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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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저작권은 경향신문에 있습니다.

‘실물보다 큰’


영화의 신(神)은 어디에 삽니까.


칼 같은 겨울 바람이 불던 10일 오후, 영화의 신전에 다녀왔습니다. 누린내 나는 돼지머리 고기집을 지나, 전기 기타가 새 주인을 기다리는 악기상을 넘어, 종로 낙원상가 4층에 올랐습니다. 한국에서 영화의 신은 이 누추한 신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2005년 이곳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한적하고 깔끔했던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건물에서 3년을 보낸 뒤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사당동 등지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한국의 젊은 영화 신도들은 그렇게 장소를 옮겨가며 앞서간 영화의 신들을 사모하고 경배해 왔습니다.

추운 평일 오후였지만, 극장에는 70여명의 관객이 모였습니다. 대부분의 관객이 혼자 온 듯 보인다는 점도 여느 극장과 다른 풍경입니다. 이들의 목적은 친교, 유희가 아닙니다. 이들은 영화의 신과의 직접 만남을 추구하는 ‘근본주의자’이자, 영화 예술의 전위를 음미하는 ‘얼리어답터’이고, 잊혀져가는 영화 유산을 기억하는 ‘고고학자’입니다.

이날 제가 만난 신은 니콜라스 레이. 그의 대표작 <실물보다 큰>(원제 Bigger Than Life)이 스크린에 투사됐습니다. 가정과 직장에 충실한 가장 에드는 희귀병으로 쓰러집니다. 의사들이 실험 중인 신약을 투약하자 에드는 병석을 털고 일어납니다. 그러나 신약에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성실했던 가장은 어느새 공포의 폭군으로 변합니다. 제작사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 20세기 폭스. 스튜디오 시스템이 허술했던 것일까요, 스튜디오 간부가 개방적인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당대 관객의 감수성이 전위적이었을까요. 이 광기어린 가족극이 1956년도에 제작됐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연중 최고 행사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갓 열린 2월초,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습니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위탁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년 간의 지원 기간이 1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죠.

지난해의 경우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진위 지원금 4억5000만원을 받았습니다. 이 돈은 공간 임대료, 운영비 등 연간 예산의 30%에 해당합니다. 영진위 측은 지난해 국감에서 비공모제의 문제점이 지적됐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고전·예술 영화를 보유하고 상영하는 시네마테크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를 보고 싶고, 영화를 나누고 싶은 청년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자발적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쌓여온 시네마테크들의 역량이 2002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로 뭉쳤고,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시네마테크에 후원하는 것은 한국의 영화문화와 예술에 투자하는 것”(유현목 감독), “우리의 영화팬들이 지난 작품들을 다시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을 때 우리 영화는 좀더 풍부해지며 탄탄한 전통을 쌓아갈 수 있을 것”(배우 안성기) 등은 시네마테크를 위한 헌사입니다.

영화를 ‘진흥’한다는 영진위는 뒤늦게 끼어들어 몇억원의 돈으로 시네마테크의 역사를 흔들려 합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이미 올해 20개 이상의 행사 계획을 세워 놓았습니다.

설령 공모를 통해 서울아트시네마가 탈락해 정체모를 누군가가 시네마테크 운영 주체로 나선다 하더라도, 영화의 신도들은 새 신전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 아니라 신전의 규모에 반해 종교를 가지는 신도가 진정한 신도입니까.

“기껏 영화일 뿐”이라고 말하는 분들께서 기억할 만한 역사의 사건이 있습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앙리 랑글루아 관장이 해임되자, 이에 반대한 장 뤽 고다르, 알렝 레네 등 당대의 혁신적인 젊은 감독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학생, 노동자가 뒤를 따랐습니다. 서구 사회의 가치관, 시스템을 송두리째 뒤흔든 68혁명의 시작입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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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서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합니다. 오프라인 서명에 참여하지 못하시거나 온라인으로 동참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 글에 댓글을 달아 온라인 서명을 진행해주시면 됩니다. 댓글의 공개 여부는 자유로 하시되, [성명/주소/메일주소]의 양식을 지켜주시면 후에 통합해 오프라인으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
 

"옛날 옛적에 시네마테크에서..."
옛날 옛적부터, 시네마테크라고 불리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처음 영화를 만났다 말하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아련한 기억 속 영화들을 되짚어보았다 말합니다. 알음알음 물어 알게 된 구석의 조그마한 상영관, 그리고 그 곳에서 상영된 수많은 영화들, 그 모든 것이 시네마테크가 아니었다면 얻을 수 없는 추억이었습니다.

“시네마테크에 대한 영화‘진흥’위원회의 일방적인 통보”
지난 2월 9일, 시네마테크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로부터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습니다. 통보의 내용은 현재까지 진행해왔던 시네마테크 전용관 지원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네마테크는 영진위로부터 전체 예산의 30%정도를 지원받고 있는데, 영진위는 새로운 내부 조정과 함께 이러한 지원을 공식 경쟁체제로 전환한다고 말합니다.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일부’의 지원을 통해, 시네마테크의 역사를 뒤바꾸고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상식 이하의 생각을 감행하려고 합니다. 수 년 동안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땀을 흘려 힘들게 지어낸 집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시네마테크는 영화애호가들이 모여 만든 민간단체이자 관객의 것이지, 정부의 것이 아닙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네마테크 공모제 전환에 반대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낸 시간들을 영화진흥위원회의 공모로 평가 받아야 한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 그들이 우리의 시네마테크를 선정할 수 있단 말인가요? 시네마테크는 우리 관객들의 성역입니다. 정부는 그런 우리들의 공간, 우리들의 추억 자체를 무시하며 그간 공들여 쌓은 탑의 머릿돌을 빼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설 자리를 잃어갑니다.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앞장서 시네마테크를 살려내야 합니다. 말 뿐인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네마테크 공모제 전환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을 모아 시네마테크를 지켜내야만 합니다.

*온라인 서명을 하고자 하시는 분은 댓글로 성명/주소/이메일 을 작성해주신 후 등록해주시면 됩니다 :) 댓글의 공개, 비공개는 자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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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오프라인 관객서명운동도 함께 진행 중입니다.
 서명운동을 하는 곳은 아트시네마 상영관 오른쪽, 회원 라운지입니다.
 많은 분들이 들러 동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성명서 앞면

 

우리는 우리의 시네마테크를 지키려 합니다

 

“옛날 옛적에 시네마테크에서...”                                                              

옛날 옛적부터, 시네마테크라고 불리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처음 영화를 만났다 말하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아련한 기억 속 영화들을 되짚어보았다 말합니다. 알음알음 물어 알게 된 구석의 조그마한 상영관, 그리고 그 곳에서 상영된 수많은 영화들, 그 모든 것이 시네마테크가 아니었다면 얻을 수 없는 추억이었습니다.

·

“시네마테크에 대한 영화‘진흥’위원회의 일방적인 통보”

지난 2월 9일, 시네마테크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로부터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습니다. 통보의 내용은 현재까지 진행해왔던 시네마테크 전용관 지원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네마테크는 영진위로부터 전체 예산의 30%정도를 지원받고 있는데, 영진위는 새로운 내부 조정과 함께 이러한 지원을 공식 경쟁체제로 전환한다고 말합니다.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일부’의 지원을 통해, 시네마테크의 역사를 뒤바꾸고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상식 이하의 생각을 감행하려고 합니다. 수 년 동안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땀을 흘려 힘들게 지어낸 집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시네마테크는 영화애호가들이 모여 만든 민간단체이자 관객의 것이지, 정부의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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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의 시네마테크 공모제 전환에 반대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낸 시간들을 영화진흥위원회의 공모로 평가 받아야 한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 그들이 우리의 시네마테크를 선정할 수 있단 말인가요? 시네마테크는 우리 관객들의 성역입니다. 정부는 그런 우리들의 공간, 우리들의 추억 자체를 무시하며 그간 공들여 쌓은 탑의 머릿돌을 빼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설 자리를 잃어갑니다.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앞장서 시네마테크를 살려내야 합니다. 말 뿐인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네마테크 공모제 전환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을 모아 시네마테크를 지켜내야만 합니다.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는 관객들

 

 

 

성명서 뒷면

 

 

왠지 낯설지 않은 이 상황, 서울아트시네마는 어떻게 될 것인가?

 

1. 1968년 -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

 

 랑스에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라는 극장이 있습니다. 1936년에 앙리 랑글루아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에릭 로메르 등이 이곳에서 영화를 보며 감독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1968년, 프랑스 드골 정부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일방적으로 앙리 랑글루아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사무국장 직에서 해임합니다. 이에 분노한 영화인들은 랑글루아의 해임에 반대해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앙리 랑글루아는 복직했으며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독립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프랑스는 ‘5월 혁명’을 겪었습니다.

 

2. 2003년 - 서울에서 있었던 일

 

국의 서울에는 활력연구소라는 미디어 센터가 있었습니다. 2002년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어렵게 만든 공간이었습니다. 우리도 잘 아는 영화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던 곳입니다. 그런데 2003년, 서울시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활력연구소에 대한 지원을 일방적으로 끊습니다. 활력연구소는 운영이 어려워졌고, 서울시는 ‘공모제’를 통해 새로운 사업자를 모집합니다. 이에 분노한 영화인들은 활력연구소의 폐관에 반대해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활력연구소는 2003년 12월 31일 폐관되었습니다.

 

3. 2009년 -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국의 서울에는 서울아트시네마라는 극장이 있습니다. 2002년 한국시네마테크 협의회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우리도 잘 아는,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당신의 친구들이 이곳에서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2009년 2월, 영화진흥위원회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일방적으로 시네마테크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제부터는 서울아트시네마도 매해 공모에 지원해서 ‘합격’해야만 지원해줄 것이라고 합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이제 어떻게 될까요.

 

 

 

  

관객 서명서

 

"다음은 서울아트시네마에 비치되어있는 서명서 양식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네마테크 사업 공모제 전환을 반대합니다.

1. 시네마테크 사업 공모제는 시네마테크 운영의 자율성을 파괴합니다.

2. 시네마테크를 ‘돈 벌어 주는’ 수익 단체로 만드는 것은 영화를 ‘진흥’시키지 못합니다.

3. 영화진흥위원회의 일방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름

주소지

이메일

서명

 

 

현재 이런 양식을 통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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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04 09:31 address edit/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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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3.05 22:53 address edit/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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