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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의 이야기

서울아트시네마의 주인은 영화인이다


*사적인 에세이며 의견입니다. 다소 감정적이고 격한 부분은 자체적으로 필터링해서 받아들이셨으면 합니다. 그저 제 분노라고 생각하시면 되구요, 단지 이 글을 읽을 당신이 그 분노에 공감하고 동참해주실 분이었으면 합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주인은 영화인이다.


 요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아스라이 잊혀졌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사실 잊고 싶었던 옛일들이다. 어린 시절. 집을 짓고 산다는 건 우리 가족의 원대한 꿈이었다. 한 때 우리 네 식구는 월세 방 한 칸 마련할 돈이 없어서 고모네 식구들과 한 지붕아래, 그것도 단칸방에서 살았다. 그나마 넓은 방이어서 두 식구 8명이 자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자식들과 아내에게 못내 미안해서 종종 사무실이나 여관방에서 잠을 주무시곤 했다. 내 유년시절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없이 살아도 집은 있어야 된다.”는 일념 하에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분이었다. 결국 당신 소유의 땅을 사서 시골에 집을 지으신 날, 당신 이름이 적힌 명패를 대문밖에 걸던 그 날의 아버지는 세상을 다 가진 남자였다.

 

 8년을 살았던 집이었다.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괭이질을 하신 자리에 기초를 닦았고, 아버지가 땀 흘려 모으신 돈으로 산 나무와 벽돌을 두 아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르고 쌓아 지은 집이었다. 삼대의 손길을 거친 삶의 보금자리인 셈이었다.

 그러나 그 집은 이제 우리 것이 아니다. IMF의 한파도 겪어내며 지켜낸 집이었지만 아버지와 동업을 하던 죽마고우에게 사기를 당했고 결국 돈에 눈이 먼 친구에게 철저히 배신당하신 아버지는 8년을 지켜온 집을 빼앗기셨다. 모든 게 풍비박산 났다. 7년을 애지중지 기르던 진돗개마저 키울 곳이 없어서 새 주인에게 떠넘겼다. 그 후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 그 때는 참 막막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세상을 정의하는 말로 ‘추방’만큼 적당한 단어가 없다. 추방을 명하는 자와 추방을 당하는 자의 관계는 곧 현 정치의 위상학이며, 에누리 없는 우리 삶이다. 애써 가꾼 삶의 터전을 앗아가는 작태들은 비일비재하다. 집을 비우라! 는 소리를 듣는 재개발 지역의 사람들. 직장을 떠나라! 는 해고통지서를 받는 비정규직 근로자들.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는 말에 삶이 허망해질 외국인 근로자들. 뿐만 아니다. 엄한 갯벌을 간척지로 만들어 철새나 해양생물들을 몰아내는 것도 일종의 추방이었으며 대운하를 만들어 수운의 목적으로 쓰겠다는 건 생태계 전체를 문명으로부터 추방하겠다는 포악한 상술일 것이다. 굳이 올해에 일어난 몇 몇 경천동지할 사건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다 알만한 일들이다. 우리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세상, 목숨을 내놓고 사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개발’(누구를 위한 무엇의 개발인지는 명시하지 않고)을 명분으로 ‘보호’(시장에 의한 보호란다)를 약속하겠으니 추방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국가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거다. 바람이 매섭다는 것과 동시에 집이 있어 좋다는 걸 느끼는 요즈음, 가진 자의 여유는 늘 누군가를 쫓아낼 수 있다는 무소불위의 권력에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아간다. 

 

 헌데 나는 그 어느 때 보다 더 막막하다.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에 관한 지원정책을 ‘공모전’으로 바꾸겠다고 통보한 사실을 접하고 나서다. 내 20대를 책임지고 있는 나의 안식처이자 나의 그림 같은 집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올해 내가 들은 이야기 중 가장 황당했던 사건은 추기경의 사망소식도 아니다. 화재가 난 망루에서 숨진 철거민들의 사건도 아니며 흉포한 살인마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고귀한 생명이 사라진 순간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내게는 서울아트시네마가 그만큼 중요하다. 이곳은 내 20대의 청승과 아양을 받아주고 있는 곳이다. 나는 오늘날 내 삶의 절반을 이곳에 의탁하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시네필들에게 그러하듯 이곳은 나의 또 다른 고향이다.

  

 영진위는 서울아트시네마에 돌이킬 수 없는 풍화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공모전을 시행할 경우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서히 마모되어 결국 재가 되어 날릴지도 모른다. 훗날 한국영화사 속에서 ‘옛날 옛적에 서울아트시네마가 있었다’ 는 식으로 신화처럼 기록된다면 끔찍할 거다. 나는 그게 서글프다. 명백하게 현존하는 영화인의 성지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90년대 한국영화의 정신적 버팀목이었으며 21세기 한국영화인의 토양이 될 곳이다. 그곳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단다.


 나는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에 통보했다는 그 문서의 구체적인 내용은 자세히 모르겠다. 그러나 몇 건의 기사들이 보도하는 이야기와 영진위에 분노하는 영화인들의 입장을 보고 있으면 쉽사리 그들의 분노에 수긍이 간다. 내가 서울아트시네마의 입장과 일부 관객 및 영화인들의 분노에 동의하는 건. 아트시네마의 주인이 명백히 영진위가 아니라 서울아트시네마라는 데에 있다. 근 10년간 서울아트시네마를 지켜오면서 동시에 이곳을 시네필의 성지로 정착시킨 영화인들의 몫이며 덩달아 나처럼 발품을 팔아가며 이곳에서 영화를 보아온 관객의 몫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영진위의 무차별적인 통보를 보고 있으면 그들이 마치 주권자인양, 통치자인양 행세하는 꼴을 보이고 있다. 느닷없는 ‘공모제’전환 통보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존폐와 직결되는 심각한 사안이다. 영진위의 논리에는 첫 삽을 뜬 사람과 주추를 올리고 대들보를 올린 집주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을 명목으로 불도저로 밀어버리려는 업자들의 행태와 유사하다. 집주인들의 사정은 조금도 들어볼 아량이 없이 막무가내다. 더 놀라운 건, 그들이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영진위’라는 사실이다. 믿었던 친구에게 뒤통수 맞는 정도가 아니라 믿었던 친구에게 칼부림을 당하는 격으로 이는 가히 쌈마이 조폭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좀 더 시네마틱하게 말하길 바란다면 인디언을 보호구역으로 내몰고 멕시코인을 남쪽으로 추방시켜버린 미국의 역사를 그린 서부극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 영화 속 역사가 배신과 기만으로 가득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영화문화 사업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에서 영화인들의 생명권과 존립을 두고서 '공모전‘이라는 논리로 서울아트시네마 지원을 시장자율에 맡기겠다는 작태는 내 상식으로는 이해불가다. 우리가 알던 영진위는 어디로 갔나? 영진위도 소위 말하는 실용주를 따를 모양인가보다. 그리고 도덕적 판단이나 윤리적 관용을 앞서 생각하기 보다는 효율을 중시하는 관료주의의 상명하복 질서를 따를 모양이다. 좀 과격하게 말하면, 그건 아우슈비츠에서나 가능하던 일 아닌가? 최고통치자의 이념과 정책에 충실했을 뿐이다, 라고 말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겠지만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은 사라진다. 돌이킬 수 없다. 후회해도 늦다. 모든 역사서는 문화가 말살되고 억압되는 시기를 폭압의 정치라고 표현했다. 제발, 그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나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좋다. 이곳은 오늘날 우리 영화의 과거이자 현재며 다가올 미래이다. 영화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 아무 영화나 보고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곳이며, 영화를 조금 본 친구들이  좀 더 열성적으로 영화문화에 빠져드는 곳이며, 영화전문가들이 넓은 혜안을 가지고 새롭게 영화를 해석하는 곳이다. 실로 이곳은 영화 문화의 실직적인 보고寶庫이자 영화인을 위한 보배寶貝다. 그러니 서울아트시네마는 경제적인 논리로 추방을 명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이곳의 주인은 모든 영화인이기 때문이다.